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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글쓴이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저
열린책들
평균
별점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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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는 이 중편소설 『분신』이 자기 최고작이라 생각했지만(물론 그땐 그의 첫 소설 『가난한 사람들』에 이은 겨우 두 번째 작품이었지만), 동시대 비평가들과 독자들은 『분신』을 난해한 작품이라며 외면했다(도스토옙스키에게 비관적이었던 나보코프는 『분신』만을 높게 평가했지만).

 

'분열된 의식' 내지 '도플갱어'라는 주제는 현대에 들어서도 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도스토옙스키는 골랴드낀이라는 이름의 소설 속 주인공을 내세워 인간 무의식의 심연을, 분신으로 인해 점점 사회에서 고립되고 파멸하는 이의 내면을 지진계처럼 세밀하게 묘사한다.

 

골랴드낀은 내성적인 성격에다 주위의 눈치를 보는 인물인데,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욕망이 당시 러시아 관료제라는, 욕망같이 지극히 사적일 수밖에 없는 감정을 철저히 탄압하고 봉쇄하는 거대한 벽 앞에 소심하게 멈춰 서 있는 상태이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특히 이처럼 관등으로 인간 등급이 매겨지는 관료제라는 특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집단 내에서 이 관료제와 사회질서에 편입돼 순응하게 마련이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 골랴드낀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나 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관계는 지속되지 않는다. 골랴드낀 내면에 숨겨진 분신이 돌출되기 때문에.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욕망, 상위계급에 대한 환상, 관료제라는 억압된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엇갈린 욕구 같은 것들이 분출돼 현시된 제2의 골랴드낀은 처음엔 골랴드낀의 직장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골랴드낀 주변 사람들을 사로잡으며, 심지어는 골랴드낀 본인의 내면으로까지 침잠하면서 그를 파멸로 몰아넣는다. 당시의 금기였던 사회질서, 즉 관료제를 넘어서길 바랐던 골랴드낀 씨에게 그의 분신은 이 모든 걸 대신해 주길 바랐던 하나의 구원자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 것마냥 보였다. 허나 당시의 금기, 즉 관료제에 대한 질서를 깬 대가는 혹독했다. 결국 골랴드낀은 마지막에 들어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것으로 끝난다. 이 결말은 마치 하나의 계시처럼 보인다. 도스토옙스키 시대에 만연했던, 관료제에 대한 질식과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정신세계의 혼돈은 한 소심한 인간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데 충분히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짤막한 소설 『분신』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 인간의 내적 심연을 탐사하는 흥미로운 심리소설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당시 러시아 사회의 정치적 문제ㅡ한 명의 인간보다는 하나의 집단을 더 중시했던 시대가 불러온 개인의 몰락을 주제로 삼은ㅡ를 다룬 비극으로 읽히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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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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