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할발대수
- 작성일
- 2016.10.27
픽업
- 글쓴이
- 더글라스 케네디 저
밝은세상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이 다 가고 아침저녁으로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지자 라디오 프로그램의 오프닝마다 요즘엔 중간이 없이 하루 아침에 계절이 바뀐다고 난리였다. 생각해 보면 분명 작년 가을에도 그런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늘 까먹어서 그렇지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뜨겁던 열정은 온데간데 없이 식어 있기 일쑤다. 소설 픽업의 단편들은 모두 파탄 직전의 상황에 눈뜬 일진이 사나운 날의 이야기다.
도박판에서 돈을 계속 잃고 손 안의 패까지 안 좋은데도 곧 만회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처럼 우리는 위험신호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가 다 잃고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잘못을 깨닫는다. 열두 편의 단편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전문직 종사자다. 남에게 사기칠 만큼 똑똑하고, 웬만한 협상에서 지지 않는 고수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들여다보지 못한다. 해외 비밀계좌의 돈, 값비싼 결혼반지 따위에 가려 모든 게 잘 돌아가고 있다고 안심한 걸까. 일에서든 사랑에서든 이미 정점을 찍고 내려온 지 오래되어 바닥에 곤두박질치기 직전에서야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나려고 발악한다. 필사적이면서 즉흥적으로.
세상만사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있는 법인데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늘 절정만을 목적지로 삼는다. 지나고 나면 찰나의 순간인데 계속 거기에 머물러 있으려 한다. 그래서 다른 삶을 꿈꾼 지 오래여도 망가진 삶을 쉽게 놓지 못하는 모양이다. 누군가는 지난 날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솔직히 인정하고 과감하게 다른 길로 갈아타지만, 다른 누군가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삶을 더 망가뜨린다. 누군가의 덫에 빠져 엉뚱한 곳에 다다랐다고 착각하지만 결국 스스로 판 무덤이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꽤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다면 이미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잘못되어 가고 있는 줄 뻔히 알면서 붙잡고만 있는다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소설 속에서처럼 가족을 내팽개치고 하던 일을 그만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선을 넘고 때를 놓치기 전에 뭐가 문제인지 살피고 분별력 있게 행동하면 된다. 탈출구를 찾으려면 눈앞이 캄캄해지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지금은 후회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아니, 후회할 때야.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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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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