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16.11.22
꿈꾸는 책들의 도시
- 글쓴이
- 발터 뫼어스 저
들녘
책은 인류의 지금을 있게 한 가장 큰 도구이다. 책으로 인류는 지식을 뒤의 세대에 온전히 전달할 수 있었으며, 그렇게 전달받은 지식으로 더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매 세대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생략하고, 앞선 지식을 압축으로 다음 세대에 전달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진 것은, 적어도 지구상에서는 인간 밖에 없다. 그만큼 책은 어마어마한 발명품이다.
그러나, 혹은 그래서 책은 위험하다. 책은 전복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하며, 혹은 남을 지배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종이로 된 책은 보기에 무기력해 보이지만,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 힘 때문에 논란이 대상이 되고, 정복의 대상이 된다. 또한 책은 무기력해 보이기만 할 뿐 아니라 실제로도 무기력하기도 하다. 책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자각은 매 시대마다 있었다. 무기력하면서도 강력한 도구. 그게 책이다. 그래서 매력적이기도 하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실용적인 책이거나, 과제로 읽는 책 등 어떤 목적에 이용되는 책도 그렇지만, 그저 읽는 책들(나 같이 읽어야 하기 때문에, 읽어왔기 때문에 읽는 책들)은 어떤 힘도 부릴 수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마냥 무기력할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존재하고 있고, 존재하고 있어 고마운 것들이다.
책들로 묻혀 있는 책들의 도시에 가면 어떨까? 그런 곳은 천국일까? 지옥일까?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의미를 지닌 곳일까?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적어도 책들의 도시가 천국만은 아니란 것을 보여준다. 지금껏 쓰여진, 혹은 만들어진 책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도시로의 여행은 모험이었다. 대부시인의 유언을 따라, 또는 감동적인 책의 저자를 찾아 떠난 여행이었지만, 그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글쓰기의 참뜻을 찾는 여행이며, 책들에 감춰진 의미를 찾는 여행이었으며, 책을 펴내고 읽는 행위 뒤에 숨어 있는 추악한 조종을 밝히는 여행이었다.
부르하임이라는 책들의 도시 아래에는 또 다른 거대하고도 은밀한 지하세계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 지하 세계야말로 진짜 책들의 도시였다. 그곳에서 한 작가의 책을 모조리 암기하고 있는 부흐링족을 만나고, 여행의 계기가 된 완벽한 문장의 저자이자 비극의 주인공 그림자 제왕인 호문콜로스(그는 이 책에서 나오는 유일한 인간이다. 그래서 호문콜로스다)를 만난다. 글쓰기를 새로 배우고, 삶과 책과 글쓰기가 일체가 되는 오름을 얻게 된다. 궁극의 세계다.
뚱뚱한 공룡, 차모니아의 소설가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는 책의 말미에서 “이제는 더 이상 설명할 것이 없다. 여기에서 이야기는 끝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정작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책은 지금까지 끊기지 않았으며, 따라서 책을 향한, 책을 통한 여행과 모험은 끝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책들의 도시는 존재하고 있으며, 부흐링족이 사는 지하 세계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책들은 꿈꾼다. 책들이 꾸는 꿈은 인류가 꾸는 꿈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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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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