샨티샨티
  1. 독자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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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
글쓴이
민병일 저
문학판
평균
별점9.1 (9)
샨티샨티

  무한 경쟁시대에 바쁘게 움직이며 살아야만 잘 살고 있는 것이라 여기며 앞만 보고 질주하는 사이 영혼은 피폐해져 가고 마음은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말라만 간다. 가보지 않은 곳을 찾는 일들을 즐기는 자신과 맞닥뜨릴 때면 채울 수 없는 방랑벽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를 타고 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미답의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고, 세상의 빛을 삼켜버리기라도 하듯 사위가 깜깜할 때 어디선가 새어나오는 불빛에 안도하듯 창을 매개로 사유하는 인문학적 성찰은 그림과 선율 속에 녹아 있다.


  숨 가쁘게 살아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방전은 가속화되어 충전을 필요로 할 때면 조계산이 품은 송광사로 향한다. 순천 터미널에서 내려 11번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1시간 남짓 달리면 송광사 입구에 다다른다. 초입부터 개울물 흐르는 소리는 묵은 때를 씻어주며 세속에서의 번뇌와 근심은 내려놓고 지난시간 애썼다고 달래준다. 송광사 경내로 들어가기 전 갈림길에서 불일암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오른다. 열반에 드시기 전 법정 스님은 지독한 수행자로 살면서 영혼을 울리는 법음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 장학생을 후원하는 등 사회를 맑고 향기롭게 바꾸어가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관심 갖지 않는 밑바닥 인생들의 삶에 관심을 보인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그림은 따스한 눈길로 세상을 보는 창이다.


  창에 비친 사물의 본질과 나의 내면이 융해되어 가보지 않은 곳에 가 있는 듯 착각 하게 만드는 진기한 경험은 심미안을 길러준다. 시인이 쓴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말에 부합하는 비유와 심연 속 공명은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한다. 균질의 시간을 거슬러 자기만의 방식으로 선택한 길 위에서 만난 현지인들의 일상은 시공간을 초월한 공명을 선물하여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길을 걸으면서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고, 부는 바람에 애틋한 그리움을 담아 사연을 적어 보내던 시절로 회귀하였다. 고독한 방랑자로 걷는 고요한 여정은 다양한 창에 깃든 우주를 발견하고 나에게로 가는 여로다.


   바이칼 호숫가 리스트뱐카 마을의 창, 초원의 방랑자자로 잃어버린 야성을 찾던 몽골 초원, 희망의 파랑새를 찾아 떠났던 사북 탄광촌, 모차르트 왕국인 잘츠부르크의 콘서트홀의 창에서 행복은 가까이에 있음을 발견했다. 풍요로운 호수 바이칼 호숫가 마을에서 본 창 속의 작은 창은 인간의 영혼을 비치는 은유의 창으로 원시의 생명력을 담고 있는 태고의 우주를 만나게 해준다. 지붕 위를 나는 남자나 연인들을 화폭에 담은 마르크 샤갈 그림 속 창문의 다양성은 창을 통해 드나드는 영혼을 배려한 관습을 따른 것이라니 러시아인들의 영혼설을 알게 한다. 홋카이도 산골 빈집을 에워싸는 설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창은 적막함 속에 깃든 우주의 영혼이 바람 타고 내려오는 소리를 들려준다.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창가를 수놓은 알람브라 궁전의 아지메세스의 방은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전통의 면면을 떠올리게 한다.


   순천만의 동쪽 끄트머리인 순천시 해룡면 상내리에 위치한 와온 해변을 찾아 다시는 못 올 세상으로 떠난 선배 고 박완서 작가를 애틋하게 그리는 모습은 생전의 두터운 정을 가늠케 한다. 꽃 피는 봄에 다시 오자던 약속은 물거품처럼 스러져 갔고 살아있는 자는 그곳을 다시 찾아 떠난 이들을 불러내어 한자리에 앉히는 카를로스의 시간으로 회귀하며 사는 인생의 헛헛함을 위무하는 일몰이 아름다운 해변이다. 구례군 토지면의 운조루는 2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대를 이어 가문의 전통을 유지하며 편리함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기계문명 시대와는 거리를 두고 잃어버린 시간을 돌려주는 공간이다. 뒤란에 있는 장독대에 담긴 된장, 고추장, 동김치 등을 정성스레 담던 어머니의 손길을 저장하는 곳간 같은 곳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잘 되던 일이 돌연한 길로 들어서 희망조차 품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아는 사람들에게 말해봤자 소용없는 일임을 깨달았을 때는 말없이 객체를 맞아 주는 자연이 있어 고마운 일이라 여길 때가 있다. 도둑맞은 시간에 헛헛하여 길 위에 섰을 때 우연히 만나는 이들과 몇 마디 나눈 게 힘이 될 때가 있음을 발견한다. 여행은 일상에서 일깨우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해주는 보물을 담고 있는 우주이다. 올 때까지 고도를 기다리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처럼........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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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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