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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
글쓴이
민병일 저
문학판
평균
별점9.1 (9)
희망직장인

돌연히 창이 저절로 열린다.

나는 커다란 동포 속에서 창 앞의 호두나무 곁에 앉아 있는 하얀 늑대 여러 마리를 응시한다. 거기에 예닐곱 마리의 늑대가 있다.

- 자크 랑시에르의 「창을 통한 진리」중에서 -

 

시인으로 등단해 활동하고 있는 저자 민병일의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문학단 출간)는 저자가 그 동안  탄광촌, 일본의 설국, 몽골 초원, 잘츠부르크 등 세상 곳곳을 여행하며 사색한 내용 등을 단순한 시야가 아닌 창을 통해 마주하는 다양한 풍경 들을 담아 인문학 산책을 이어간다. 우리는 누구나 한번쯤 홀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고 나만의 시간을 통해 지금의 나를 되돌아 보고자 꿈꾸는 것 같다. 혼자만의 여행, 아니 계획되지 않은 낯선곳에서의 시간은 휴식을 안겨주는 그 이상을 넘어 좀 더 풍요로운 마음을 안겨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경험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이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바람이 데려간 여행길에서 내가 본 것은 창이 아니라 바람이었다. 바람은 내게 방랑자가 되라고 했다. 때로는 보헤미안처럼, 때로는 집시처럼, 마음을 가볍게 하고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을 즐기라고 했다. 바람이 부는 대로 길을 걸었다. 코카서스인의 피가 흐르는 집시처럼 유랑에 올라 시베리아 바이칼에서 몽골 초원으로, 함부르크 초가집과 홋카이도 산골, 그리고 동해에서 남녘 끝까지, 바다 건너 제주 섬까지 바람이 되어 떠돌았다. 길 속에 길이 열리고 길 위로 날이 저물어 별이 뜨고, 어느 날은 초승달이 뜨고, 눈이 내렸다. 길 위에 창이 있었다. 창이라는 사물에 숨겨진 삶과 허무, 삶이 창에 남긴 질감, 창이라는 형태가 말하고 있는 예술적인 것을 인문적으로 사유하고 싶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

 

어떤 장면에서는 마음을 고요하게 해주는 장면의 사진을 접하게 되고, 또 어떤 곳에서는 미술작품을 만나기도 하는 여행, 그 길위에서는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하지만 소소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이 함께 합니다. 들에 핀 꽃도 볼 수 있지만 세상 풍파를 오랜 세월동안 이고 살아온 할머니도 만나게 된다. 너무도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그리고 나아닌 그 누구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현대인 모습을 벗어나 오래된, 변하지 않는 때 묻은 곳으로부터 얻는 위안은 어쩌면 덤이 아닐까 합니다.

 

「부안 곰소 마을 인근 이발소에는 20년 넘게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이발소 주인이 세상을 뜨자 그의 아내는 가게 문을 닫은 뒤 소식이 끊겼다. 이발소에 넘쳐나던 동네 사람들 이야기는 봉인되고, 먼지만 켜켜이 쌓인 건물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다. 이발소 명물인 1960년대식 의자는 등받이가 뒤로 젖혀진 채 누워 있다. 엿장수한테 거저 가져가라고 해도 손사래를 칠 이 의자는 긴 잠에 빠진 거인 같다. 잠든 거인의 몸은 뻘건 녹의 더께로 덮여 건드려도 꿈쩍하지 않았다. 옛날 이발소 의자는 의자의 왕 같아 보였다. 궁둥이가 닿는 데는 누런 소가죽이 덮여 있다. 케케묵은 이 구닥다리 의자가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이발소 문이 20년째 잠겨 있던 덕에 잠든 박물관 역할을 톡톡히 해왔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

 

이 책의 제목인 '황야의 이리'는 헤르만 헤세의 시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창들을 순례하던 중 '눈 덮인 황야에서 노루를 꿈꾸며 홀로 울부짖는' 이리의 모습을 보았노라고 합니다.


책을 보는 사람의 내면에는 '황야의 이리'가 살고 있다. 내면이라는 황야를 달리는 이리는 갈기를 휘날리며 꿈을 찾는다. 눈 덮인 떡갈나무 숲을 지나면 오롯한 꿈이 모습을 드러낼까, 해거름 이는 강물에 닿으면 꿈을 찾을까. 이리는 오늘도 활자가 새겨진 책 속의 황야를 질주한다. (...) 눈 덮인 황야를 달리는 여자는 고독한 활자의 숲에서 무엇을 찾고 있을까. 책의 행간을 순례하는 여자의 눈빛은 설원에서 본 이리의 눈망울을 닮았다. 노루를 찾아 토끼를 찾아 들판을 달리는 이리처럼, 여자는 활자 냄새를 맡으며 무엇인가 찾고 있다. 』- 본문 중에서 -

마음이 있는 곳에 발길을 옮기는 여정을 따라 사색을 즐기는 여유, 그 시간속에는 나와 또다른 이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다만 그곳에는 욕망이나 사심이 없는 온전히 따뜻한 생각만이 담겨 있는 듯 하다. 저자의 한줄 한줄 문장을 곱씹어 볼 수록 내 마음에 담아보고 싶은 심정이다. 글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한장한장의 사진이나 그림은 어쩌면 보너스가 아닐까 한다. 왜 나는 저런 사진한장 남겨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똑같은 풍경을 그저 지나치고 만 것일까? 그래서 더욱 안타깝지만 고마운 풍경이 아닐수 없다. 아침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창가에 앉아 커피향 가득한 차 한잔을 두고 마음으로 읽으면 좋을 듯한 책이 아닐까 합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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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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