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에세이

금비
- 작성일
- 2017.1.6
숨결이 바람 될 때 (100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 글쓴이
- 폴 칼라니티 저
흐름출판
『숨결이 바람 될 때』, "When breath becomes air"를 직역했는데도, 제목이 마치 원래 우리말로 지은 것처럼 자연스럽고 은유적이다. 작년 하반기에 꽤 긴 시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있었던 책이다. 출판사가 낯설다. [흐름출판]의 책은 처음 만났다. 대형출판사의 자회사인지도 모르겠다.
에세이를 읽고 나서의 대부분 느낌이, '아, 나랑 비슷한 사람도 있구나.' 또는 '이런 삶도 있구나' 정도의 인간적인 위안을 얻는 정도였다. 사유의 깊이보다는 개인의 철학이나 삶의 방식에 대한 접근이 묘한 편안함을 주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에세이를 읽는 비율이 늘게 된 이유이다. 그런데 『숨결이 바람 될 때』는 기존의 에세이가 주는 느낌에서 벗어나 있다. 맛도, 색깔도 다르다. 다른 층위의 세계를 다녀온 기분이다.
저자 폴 칼라니티는 의사이다. 흔히 주변에서 보던 그런 의사가 아니라는 정도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미 독자들은 감지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의사라면 책 자체를 내지 않았을테니까. 미국은 미국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은 책의 초반부를 차지한 폴의 석사 과정까지의 삶의 궤적때문이었다. 폴의 삶을 살짝 보자면, 전형적인 미국인인 아버지와 인도계 어머니의 독특한 만남과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야반도주하여 살림을 꾸렸고, 사막 속의 도시 킹맨에서의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교육열만큼은 한국 어머니 못지 않았던 폴의 어머니 덕분에 폴은 우수한 성적으로 스탠퍼드 대학의 영문학과에 진학한다.(내가 보기엔 폴의 영재성이 기반 되었지만) 지금부터 한국의 교육시스템에선 일어나기 힘든 폴의 이력을 보자면, 영문학 학사, 석사 과정을 밟았던 폴이 결국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여 의사가 되었다. 먹고 사니즘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문학에서 해결할 수 없었던 결핍을 뇌과학을 통해 채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이 지식의 전당, 학문의 전당이라 불리는 근본 목적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가 폴 칼라니티의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이 아닐까 싶다. (자꾸 한국과 비교하게 되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다.)
폴은 레지던트 과정 6년차, 이제 1년만 더 채우면 골라서 갈 수 있는 교수 자리가 있다. 이미 그는 의학과 신경과학을 접목한 연구까지 수료한 인재였기 때문에 주 100시간 근무에 대한 보상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랬기에 2013년, 레지던트 6년차에 내려진 폐암 선고는 절정을 향해 달려가던 폴의 인생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폴은 레지던트 과정을 겪으면서 문학에서 끊임없이 물었던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52쪽)에 대한 그림을 완성해줄 마지막 퍼즐을 만들 수 있었다. 도덕과 과학이, 영적인 것과 생리적인 것의 어떻게 교차하는가에 대한 답을 풀어갈 수 있었다. 죽음에 가까운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나는 공간, 그것도 치명적인 생사를 가늠하는 분야라 할 수 있는 신경외과에서, 폴은 수많은 죽음들을 접하면서 피상적인 남의 일이 아닌 내 곁의 죽음, 그리고 나의 죽음일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 과정을 묘사한 그의 글들이 묵직하고 울림이 있다. 생생한 경험이라면 아무리 글자로 만나는 타인의 삶일지라도 내 안으로 깊숙히 들어와 한자리 차지하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더 나아가 폴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되면서 겪는 죽음에 임하는 태도는 단지 내 안에 어느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지나 내 몸과 정신의 예민한 부분들을 놓치지 않고 움찔대게 만든다. 문학에 대한 사랑,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 동시에 폭발하면서 폴의 시한부 생도 '원래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는 레지던트 과정을 모두 이수하였고 그동안 미뤄온 아이도 갖게 된 것이다. 그는 발병 전에 이미 의사로서의 윤리관이 곧게 선 사람이었다. 환자나 환자의 가족에게 우월적 지위에 취하여 가지기 쉬운 기계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내'가, 또는 '내 친구, 내 가족'도 환자가 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문학적 사색과 과학적 탐색을 통해 체득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없이 나약해질 수 있는 상황의 폴을 일으켜 준 사람이, 폴이 별탈없이 의사로 살아갔다면 그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할만한 주치의를 만났다는 것이다. 폐암전문의 에마가 그랬다.
"모든 사람은 유한성에 굴복한다."(233쪽). 그의 병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암 발병 이후부터 틈만 만면 글을 썼던 폴은 결국 이 글을 끝맺지 못했다. 그의 미완성된 글의 마지막 부분은 딸 케이디에게 하는 말이나 다름없는 내용이었다.
이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다.
그 메시지는 간단하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234쪽)
그가 어떤 힘으로 저 문장을 끝맺었을지, 그가 어떤 얼굴로 혼신의 힘을 다 했을지, 그림이 그려진다. 8개월된 딸 케이디와 12년간 사랑했던 아내 푸시를 남겨두고 그는 모든 연명치료를 거부한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책이 더욱 감동을 준 이유는 에필로그에 실린 폴의 아내 루시의 글 때문이다. 루시는 폴의 죽음 이후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폴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비교적 담담히 썼다.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성큼성큼 나아간 폴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가득 담은 송사(送辭)이다. 폴은 죽었지만 루시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거의 매순간 그가 사무치게 그립지만, 우리가 여전히 함께 만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262쪽)라고.
누가 그 아빠에 그 엄마 아니랄까봐 루시 역시 일기장에 케이디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좋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어. 하지만 사람들이 지금 아빠를 칭찬하는 말들은 전부 사실이란다. 아빠는 정말 그렇게 훌륭하고 용감한 사람이었어" (263쪽) 루시는 딸에게 그치지 않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자신있게 말한다. 당신의 삶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그리고 평생 죽음에 대해, 죽음에 진실되게 마주하는 것에 대해 고민했지만 결국 해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뱉은 마지막 문장은 압권이다.
"나는 그의 아내이자 목격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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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