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동 청소년

포스트모던
- 작성일
- 2017.1.15
누구나 떨어진다
- 글쓴이
- 제임스 프렐러 저
미래인
누구나 떨어진다 | 제임스 프렐러 저 | 서애경 역
미래인 | 2016-12
일명 '왕따 게임'은 누구나 자신이 가장 깊숙하게 소속된 집단 내에서 접하기 마련이다. 문득 사건의 주범은 피해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풍문이 떠올랐다 이내 사라진다. 이런 생각은 제임스 프렐러의 <누구나 떨어진다>(미래인,2016)를 읽는 내내 반복적으로 내 머릿속을 들락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 속 인물들의 이야기 역시 이런 구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왕따의 대상이었던 '모건 말렌'은 죽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히면 자살하게 된다. 따라서 모건 말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경에 대한 규명으로부터 이 소설은 출발한다. 그것은 주인공 '샘 프록터'를 화자로 내세운 '일기 형식'을 취한다. 눈치 빠른 독자는 '일기 형식'에서 벌써 짐작했을 것이다. 주인공에게 자기 고백적인 글을 쓰도록 유도한 까닭에 대해서 말이다. 이는 가해자로 하여금 진정한 자기반성과 뉘우침 그리고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서 작가의 따뜻한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설정이다.
이렇듯 친절한 플롯은 샘 프록터의 일기장을 통해서 '왕따 게임'에 가담하여 모건 말렌의 소셜미디어 페이지에 무차별적으로 악플을 달고, 그 모든 가담자들을 선동했던 주범이 누구인지 찾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만든다. 놀랍게도 가해자 측 주범은 '아테나 루이킨'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테나 루이킨은 완벽하게 빼어난 외모로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반면, 모건 말렌은 이와 정반대의 인물이다. 그럼에도 둘은 한때 우정을 나눈 사이였다. 적어도 모건 말렌이 아테나 루이킨의 남자 친구를 몰래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둘의 우정은 와장창 깨졌고 급기야 이름 앞에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수식어를 하나씩 달게 된다. 여기에 또 한 사람, 샘 프록터는 철저하게 이중생활을 즐기면서 모건 말렌의 죽음을 방관한다. 모건 말렌의 유일한 친구였던 샘 프록터는 학교 밖에서만 모건 말렌을 친구로 생각했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다른 친구들의 눈치를 보느라, 모건 말렌을 철저하게 따돌리며 외면한다.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상당히 비열하고 비겁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모건 말렌과 어울리는 모습을 다른 친구들에게 들킬까 봐 노심초사하는 관계를 어찌 진실한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네가 곤란해지는 건 싫어.”언젠가 모건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그 순간은 모건의 말이 맞았다. 나는 모건과 함께 있는 모습을 들켜서 곤란해졌다. 그리고 모건은 틀림없이 큰 상처를 받았을 거다. 하지만 모건이 알지 못했던 건 나를 위한 말이 아니라 모건 자신을 위한 말을 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내 불안감과 우둔함 탓이었다. 내가 좀 더 자신감만 있었더라도 모건 앞에 친구로 서 있을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다른 애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워 숨어버렸다. (본문 166쪽)
그런 가운데 모건 말렌은 자신을 왕따 시켰던 친구들 곁을 홀연히 떠나버린다. 모건 말렌만 사라지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테나 루이킨과 친구들의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왕따 게임을 이끌었던 주범을 찾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게 된다. 그 결과 모건 말렌을 죽음으로 몰아낸 주범이 아테나 루이킨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러니까 모건 말렌이 급수탑 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지기 2주 전, 모건의 소셜미디어 페이지에 '그냥 죽어라! 죽어! 죽으라고! 그래도 누구 하나 신경 안 쓸걸!' (본문 9쪽) 이라고, 글을 올린 사람이 아테나 루이킨이라는 사실에 모두 실망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예쁘고 교양 있는 아이로 소문이 자자했던 아테나 루이킨이었기 때문이다.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이유로 이토록 끔찍하고 악랄한 글을 올리도록 주도한 인물이 아테나 루이킨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왕따 게임의 모든 비밀이 탄로난다. 이때 가해자의 편에서 함께했던 친구들은 아테나 루이킨으로부터 서둘러 발을 빼고 등을 돌리게 된다. 그리고 모함의 화살을 쉴 새 없이 날리기 시작한다. 이에 더 이상 견디기 힘들게 된 아테나 루이킨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다.
주지하다시피 왕따 게임은 결국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채 막을 내린다. 안타깝고 씁쓸하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주인공 샘 프록터의 불안장애와 죄책감이 해소되었다는 점이다. 모건 말렌이 유일하게 믿었던 친구였기에 샘 프록터의 심리상태는 그만큼 더 복잡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소설 속 인물들의 언행은 마치 바닷물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밀물과 썰물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처럼 가해자의 주범인 아테나 루이킨을 따라 움직였다. 단지, 아테나 루이킨의 외모에 반해서 뚜렷한 목표의식이나 주관도 없이 그저 몰려다녔던 것에 불과하다. 한 마디로 주범은 딱 한 명이고 나머지는 바람잡이 허수였던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소중한 친구의 목숨을 감쪽같이 거둬버리는 일에 가담하고 마음속에 범죄자라는 낙인을 스스로 찍게 된 것이다. 이런 행동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시급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은 미국의 학교폭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왕따 문제와 전혀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2017. 01. 15. ⓒ 심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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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