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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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와 수잔
글쓴이
오스틴 라이트 저/박산호 역
오픈하우스
평균
별점8.6 (46)
지니

어떤 소설이 시시하다면, 당신의 삶이 시시하기 때문이고, 어떤 소설이 끔찍하게 느껴지면 당신의 삶 역시 끔찍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떤 소설은 누군가의 삶을 구원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소설은 누군가의 뺨을 후려쳐서 절망에 이르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삶이라는 문학, 혹은 문학이라는 삶은 서로 떼어놓고는 절대 이야기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따라서 모든 비평은 일종의 자서전이다. 당신이 어떤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당신의 외면하고 싶었던 삶의 그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여기, 한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는 한 여자가 있다. 소설과 삶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나 매혹적으로 스토리를 그려내고 있는 이야기를 나는 만난 적이 없다.





그녀는 지금의 이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 불안은 그 원인에 비해 터무니없이 심각하다. 그녀는 이 소설 속 토니의 이야기가 에드워드를 그녀의 마음속에서 부활시켰다는 점을 제외하고도,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그녀에게 또 다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토니의 이야기 어딘가에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게 뭔지 혹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집안일을 하는 동안 기억을 뒤져 그걸 찾아보려고 애썼다.




수잔은 전남편 에드워드로부터 20년 만에 처음으로 연락을 받는다. 자신이 소설을 하나 썼는데 읽어봐 주지 않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오래 전 글쓰기 초보였던 에드워드가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이 두 사람 사이에 생긴 불화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걸 떠올린 수잔은 어쩐지 내키지 않는다. 당시 수잔은 의도했던 것보다 더 가혹하게 그의 글을 비평했었기에, 그녀는 이제 와서 소설을 읽고 뭐가 부족한지 말해달라는 그의 연락에 과거가 떠올라 불쾌했지만, 그를 의심하고 거부하기 민만해서 책을 보내라고 말한다.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제목을 가진 그 소설은 한 가족이 겪게 되는 무시무시하고도 끔찍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다.



소설 속 토니는 대학 교수로 아내와 딸과 함께 휴가로 여름 별장에 가는 길이었다. 늦게 출발한데다 타이어까지 가느라 더 지체돼서 한밤까지 운전을 하는 중이었는데, 딸이 숙소를 찾지 말고 그냥 밤새 달리라는 제안에 평소의 습관들을 내팽개치고 한밤의 질주를 하기로 한다. 그런데 시비를 거는 한 자동차를 만나 가벼운 사고가 생기고, 차에 탄 남자들의 막무가내식 행동에 휘말려 토니는 아내와 딸과 서로 다른 차에 탄 채로 남자들에게 이끌려 가게 된다. 그렇게 가족들을 갈라놓은 그들은 토니를 외딴 숲에 내던지듯 홀로 남겨두고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그 장소로 돌아와 숨어 있는 토니에게 아내와 딸을 핑계로 나오라고 소리치지만, 공포로 인해 나서지 못한다. 토니는 자신의 비겁함을 저주하고 후회하지만, 그 후로 아내와 딸을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고 만다. 그 이후로 토니의 삶에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매우 가차없고, 잔인하게 진행된다.





토니의 세계는 수잔의 세계와 닮았다. 그 한가운데에 있는 폭력만 빼면. 그런데 그 폭력 때문에 둘의 이야기는 전적으로 다르다. 이런 불운을 목격하도록 유도돼서 내가 얻는 게 뭘까? 수잔은 궁금했다. 이 소설은 토니의 인생과 내 인생 사이의 차이를 확대시키는 걸까, 아니면 우리 둘을 합치는 걸까? 이건 날 위협하는 걸까, 아니면 달래주는 걸까?


그런 질문들이 그녀의 머리를 스쳐갔지만 잠시 독서를 중단했는데도 아무 답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 작품은 전남편이 보낸 소설을 읽는 '현재'의 수잔과 극중극인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의 이야기, 그리고 수잔의 회상으로 드러나는 에드워드와 수잔의 '과거'이야기로 진행된다. 이 작품의 제목이 에드워드와 수잔이 아니라 토니와 수잔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전남편 에드워드는 극중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수잔에 의해 언급되기만 하므로, 그는 이 작품에서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에드워드는 (그가 20년만에 연락을 하기 전까지) 수잔의 삶에서 이미 사라져 버린 존재였고, 그가 거의 일방적으로 그녀로 하여금 읽도록 만드는 소설이야말로 그가 오래 전 그녀로 인해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한 자신만의 복수였는데, 그것 또한 매우 일방적이고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사실 굉장히 에둘러서 말하는 과거의 지나간 분노이지만, 현재의 그녀를 불안에 떨게 할 만큼의 임팩트 있는 복수 혹은 응징이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수잔은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를 읽으며 극중 주인공 토니가 처한 상황에 대해 감정이입하고 상황에 몰입하게 되면서, 과거의 에드워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그것을 보낸 이유를 찾으려던 그녀는 오히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균열들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다. 영문학 교수라는 꿈과 문학에 대한 야망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그저 파트타임으로 강의를 나가는 주부라는 현실과 외과 의사 남편 덕에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지만 그는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난 상태고, 그녀는 화가 나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못하고 가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그저 가정이라는 허상을 위태롭게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녹터널 애니멀스' 속의 평범하지만 비겁했던, 정의롭지 못하고 비열했던 토니와 별다를 바 없이 말이다. 수잔의 현실보다 토니의 허구가 훨씬 더 생생하게 펼쳐지면서, 극중 소설이 과거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매우 난폭한 상징이라는 것이 부각되어 이야기는 겹겹의 페이스트리 처럼 견고하게 쌓여 단단하게 흘러간다.



시각적으로도 뛰어난 톰 포드 감독의 영화는 아마도 이들이 서로에게 행하는 우아한 복수와 지키지 못한 사랑에 관해 포인트를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오스틴 라이트의 원작에서 소설과 삶에 관한 매우 아름답고도 매혹적인 지점들을 더 많이 보았다. 하나의 작품에서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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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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