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게스
- 작성일
- 2017.2.13
빵굽는 타자기
- 글쓴이
- 폴 오스터 저
열린책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멋진 경험을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치자. 욕망을 충족할만큼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돈을 많이 벌면 그 돈을 '제대로' 쓸 시간은 줄어드는 거다. 돈이 쌓여 있으면 뭘하나, 돈을 쓸 시간이 없는데. 그래서 바쁜 사회엔 유흥점들이 판을 치는 거다.
반대로 나만의 시간을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위해서 쓰겠다고 결심했다고 치자. 이번엔 돈이 없을 것이다. 뭔가를 '제대로' 할 수 있을만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는 건 돈을 버는데 그 시간을 쓰지 않았다는 소리인데, 이 경우 요행이 따르지 않는 한 인생을 즐길만한 돈은 없다.
시간은 무한하지 않으며 아무리 큰 돈이 주어져도 시간을 살 수는 없다. 그러므로 시간을 돈과 바꾸는 건 손해보는 짓이다. 돈의 경우 요행이 따르거나 구조적으로 합법적으로 남을 약탈하는 방법으로 차고 넘칠만큼 벌 수 있기 때문인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그 요행은 일부 극소수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에 그들의 요행을 위해 나머지 불운한 자들은 자신의 모든 시간을 요행을 가진 자들을 위해 일하면서도 돈은 충분치 않게 번다. 이것이 폴의 오판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소설가가 되어, 넉넉히 먹고 살며 여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소설 밖으로 나온 이후의 긴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 오판마저도 잘한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생은 짧고, 그의 무명의 작가로서의 고생은 길었다.
젊은 날, 돈 대신 자유로운 시간을 선택한 그는 그 자유가 글을 쓰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일로 먹고 살기는 힘들었다. 먹고 살만큼 글을 쓰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너무 많은 글을 써야 하고, 그렇게 글을 쓰는 일이 더 이상은 즐거운 일이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일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한국에서도 외국 어느 곳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그걸 어디가서 개탄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교수들의 월급이 일용 노동자들의 월 급여만큼 짠 곳도 있다. 조용남이 자신의 이름으로 몇억에 팔 그림을 대신 그린 예술가는 딱 먹고 숨쉴수 있을만큼만의 돈을 벌기 위해 하루 종일 밤을 새며 그림을 그린 듯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길을 선택하여 사는 것의 그 상세한 실체를 경험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폴 오스터의 실제 경험인지 소설적으로 많이 극적인 부분이 가미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먹고 사는 일이 충족되어야 하고, 먹고 사는 일을 좋아하는 일을 해서 충당하기에는 좋아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 아닌 피곤한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가장 중요한 시기의 시간들은 서서히 내 삶에서 빠져나가고 남는 것이 무엇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다시 잃어버린 시간을 돌아보는 동안, 그 동안에도 삶은 계속되기에 계속 먹고 살아야 하고 시간을 잃어버려야 한다.
원제는 뭐라더라..조금 다른데, 한국책 제목이 빵굽는 타자기. 타자를 쳐서 빵을 구워 먹고 사는 이야기.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 폴 오스터의 이런 류의 이야기는 이상하게 힐링이 되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치열하게 먹고 사는 이야기임에도, 그는 사회 질서에 저항한다. 처참히 무너지고 깨지고 부서지고 비참해지지만, 그럼에도 남아있는 그 무언가. 타협하지 않고 버티는 어떤 힘 같은 것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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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