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키치
- 작성일
- 2017.2.20
토니와 수잔
- 글쓴이
- 오스틴 라이트 저/박산호 역
오픈하우스
오스틴 라이트의 <토니와 수잔>은 톰 포드가 만든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의 원작 소설이다. <녹터널 애니멀스>는 안 봤지만, 마침 <토니와 수잔>을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2주에 걸쳐 자세하게 소개했기에 방송을 다 듣고 나서 소설을 읽었다.
소설은 액자식 구성이다. 촉망받는 의사와 재혼해 세 아이를 둔 수잔은 전남편 에드워드로부터 소포를 받는다. 소포를 열어보니 에드워드가 쓴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소설의 원고가 담겨 있다. 그들이 부부였을 때 작가 지망생이던 에드워드에게 냉혹한 비평을 쏟아내곤 했던 수잔은 에드워드가 쓴 소설을 읽기가 꺼려진다. 어쩔 수 없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수잔. 소설에는 토니와 아내 로라, 딸 헬렌이 나온다. 세 사람은 차를 타고 한밤의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괴한들을 맞닥뜨리고 무시무시한 일을 겪는다. 수잔은 에드워드의 소설에 매혹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에드워드가 무슨 의도로 이 소설을 자신에게 보냈는지 의아하다.
이 소설은 흔한 스릴러 소설처럼 보인다. 에드워드가 보낸 소설을 읽으면서 에드워드의 의도를 파악하려 애쓰는 수잔은 스릴러 소설 속 탐정 또는 형사 같고, 수잔에게 25년 묵은 복수를 실행하는 에드워드는 사람을 실제로 죽이지 않았을 뿐 극악무도한 살인귀 같다.
이 소설은 넓게 보면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 대한 거대한 비유다. 독자인 수잔은 작가인 에드워드를 평가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다. 에드워드가 초보 작가였을 때는 거침없는 비난을 퍼부었고, 이십여 년이 흘러 '녹터널 애니멀스' 원고를 받아든 지금도 에드워드의 글솜씨가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할 겸 소설을 읽다가 그야말로 뒤통수를 맞는다. 작가인 에드워드에게 수잔의 평가는 절대적이다. 오죽하면 처절하게 배신을 당하고 이혼한 지 이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수잔에게 복수할 생각을 했을까. 결국 수잔은 에드워드에게 크게 한 방 먹지만, 한 방 먹은 기분이 그저 씁쓸하지만은 않다. 그 덕분에 수잔은 힘든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었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현실로부터 도망쳤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생각해보기. 이것이야말로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자 독자가 작가에게 기대하는 최선이 아닌가.
소설을 읽는 내내 수잔이 뭐라고 자기를 변호할지 궁금했다. 아니, 수잔이 어떻게든 자기 이야기를 하길 바랐다. 수잔이 에드워드를 배신한 것은 맞지만 수잔으로서는 에드워드를 떠날 만한 충분한 사유가 있었다. 에드워드에게 수잔이 재앙이었듯, 수잔에게도 에드워드는 재앙이었다. 부디 수잔이 자신의 시점으로 쓴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제목은 '다이어널 애니멀스(diurnal animals, 주행성 동물)'쯤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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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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