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키치
- 작성일
- 2017.3.1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 글쓴이
- 진중권 저
천년의상상
트위터에 떠도는 우스갯소리 중에 '트위터 대학 서열'이라는 게 있다. 어느 대학이 1위에 올랐을까? 현실 대학들을 모두 제치고 '구몬밀렸대', '퇴근한대', '내일입대' 등이 우열을 다투는 가운데 '집에고양이있대'가 1위에 올랐다. 진중권의 표현을 빌리면 (적어도 트위터리안 사이에서는) 바야흐로 '고양이 중심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진중권은 트위터 내 고양이 열풍의 주역이자 대표적인 '냥집사'이기도 하다. 그는 2013년의 비 오는 어느 날 거리에서 주인 없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냥줍'한다. 그가 새끼 고양이에게 지어준 이름은 '루비'. 보석 이름이나 핑클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게 아니라, 그가 존경하는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약자다.
"초보 집사들은 자기들이 우리를 데려왔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어. 하지만 우리랑 좀 지내다 보면 슬슬 너희가 우리를 ‘선택’한 게 아니라 외려 우리에게 ‘간택’당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할 거야." 진중권은 3년 반 동안 루비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가 루비를 키우는 게 아니라 루비가 그를 집사로 부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는 바로 그 깨달음의 결과물이다. 이 책은 루비가 구술한 내용을 진중권이 받아 쓴 것으로 되어 있다.
책의 내용은 고양이의 창세기부터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문학, 철학 등 다방면을 아우른다. 고양이는 신석기 시대 이전부터 인간들의 사랑을 받았다. 사이프러스 섬에서 발견된 약 9500년 전에 인간과 나란히 매장된 고양이의 유해가 발굴된 것이 그 증거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고양이 신을 모실 만큼 고양이를 신성시했고, 농부들은 농작물에 해를 입히는 쥐를 잡아주어서, 수도승들과 수녀들은 외로움을 달래주어서 고양이를 예뻐했다.
고양이는 중세에 접어들면서 위기를 맞는다. 중세 시대 유럽은 소(小) 빙하기에 접어들어 우박과 서리가 내리고 농작물의 수확이 줄어들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희생양'을 찾고자 했고, 이때 희생양으로 선택된 것이 여성과 고양이였다. 죄 없는 여성들을 이단으로 몰아 처형하는 '마녀사냥'이 횡행하는 동안 옆에서는 역시 죄 없는 고양이들을 죽이는 고양이 사냥이 벌어졌다. 마녀는 고양이를 키운다거나 검은 고양이를 보면 재수가 없다거나 하는 미신은 이때 생겼다.
흔히들 한국인은 개를 좋아하고 일본인은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옛 문헌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조선 시대 학자들 중에는 요즘의 냥집사 못지않은 애묘인이 적지 않고, 일본에는 고양이가 일정 수명 이상을 살면 요괴가 된다는 '바케네코' 설화가 지금도 남아 있다. 왼손으로는 손님을 부르고 오른손으로는 돈을 부른다고 일컬어지는 행운의 고양이 '마네키네코'는 에도 시대 이후 상인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함께 퍼진 것으로 여겨진다.
"마술사는 먼저 모닥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한 줌을 취하고 거기에 혀처럼 날름거리는 불길 한 자락을 더하고 반짝이는 수많은 별 중에서 가장 빛나는 별 두 개를 땄다. 그러고는 그것들을 두 손에 고이 모아 쥐고 ‘후’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연기는 고양이의 털이 되고 불길은 고양이의 혀가 되고, 별은 고양이의 눈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가지가 하나로 합쳐져 만들어진 것. 그것이 바로 고양이다." (본문 중에서)
저자에 따르면 고양이는 외관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삶의 방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인간을 능가한다. 고양이는 잡지 못한 쥐를 아쉬워하는 법이 없고, 훗날 잡게 될 쥐 생각에 눈앞에 있는 쥐를 놓아주는 법도 없다.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에 현혹되어 현재를 소홀히 하는 인간과 달라도 크게 다르다. 선형적 시간에 묶이지 않고 모든 순간을 동시에 현재로 취하는 존재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없다. 고로 고양이는 우월하며, 우월한 고양이를 인간은 숭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논리. '묘'하게 설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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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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