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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risbon
- 작성일
- 2017.3.29
지식인의 옷장
- 글쓴이
- 임성민 저
웨일북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나는 옷을 잘 못입는다. 그래서 겉치레 '따위'라고 스스로 자위하고 외면해보기도 하지만, 사실 옷'따위'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때론 중요한 첫인상을 결정짓기도 하고, 때론 스스로 위축되기도 하고... 그래서 겉으로는 아닌 척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옷차림을 훔쳐보고, 유행을 슬쩍 체크해보고, 쇼윈도를 기웃거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옷에 대해 조근조근 말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사근사근 말해주고 싶'다는 작가의 말을 읽으며 왠지 반가워서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흠... <지식인의 옷장>이라니, 책제목도 나의 얄팍한 허영심에 딱 맞지 않는가. 뭘 알아야 면장을 해먹는다는 케케묵은 말도 있으니, 일단 '지식'으로서 패션을 배워볼까, 패션을 문자로 배워서 과연 얼마나 효용이 있을까...
1부인 옷장, 가까이 가기를 읽으면서는 뭔가 '패션'이라는 것에 대해 감을 잡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패션이란 결국 겁먹을만큼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패션이 추구하는 이미지는 결국 판타지, 즉 이상을 현실로 끌고와 향유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패션의 타깃은 실제 소비자가 아닌, 구매자가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이미지가 되는 셈이다.
"타인의 평가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면 패션에 관심을 가져라." (57쪽) 마치 패션지상주의자의 격언처럼 들리지만 한편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가장 손쉽게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을 드러내보일 수 있는 장치가 어쩌면 패션일지도 모른다.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이라도 실행할 수 있는 '나 자신 깨우기'로 새로운 패션을 시도해 보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 하지만 막상은 또다시 내 옷장 속에 이미 있는 것들과 비슷한 새 옷, 결국 새 옷이 아닌 옷을 사게 되겠지만..
"사람들은 익숙한 대상에서 호감을 느끼지만 낯선 대상에서도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편안함과 새로움이 적절하게 섞일 때 매력이 극대화된다." (81쪽) 패션에 대한 조언이 이렇듯 때론 인생에 대한 조언을 포괄하고, 인생에 대한 조언이 때론 패션에 대한 조언에도 적용되는 듯하다. 패션도 사람사는 일이고 공유하는 문화인 이상 결국 적용되는 룰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알고 싶다면 그 대상에 대한 역사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일텐데, 이 책은 1950년대 이후 옷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이 章에서는 비키니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60년대 처음 비키니 수영복이 선보였는데, "당시 남태평양의 비키니 섬에서 진행된 미국의 핵폭탄 실험만큼 충격적이라는 의미로 비키니라는 이름이 붙었다." (97쪽)고 한다. 처음에는 그렇게도 큰 충격이었지만 불과 수십년만에 그 충격이 일상 속에 완전히 숨어버렸으니, 패션의 역사만으로도 사람의 생각(가치)은 끊임없이 그리고 생각보다 빠르게 변한다는 세상의 이치를 배울수 있구나, 싶었다.
'패션은 반항이다'라는 章에는 하위문화가 특유의 감성과 취향이 포함된 그들만의 패션에서 점차 정형화되어 하나의 스타일이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쓰여 있다. 역시나 모든 혁신은 결국 변두리에서 시작된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해주기도 했다. 특히 이모키즈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정리하자면 중2병을 서양에서 부르는 이름인 이모키즈는 emotional 과 kids의 합성어로, 뭔가 우울해보이는 것이 자랑인 그들 특유의 문화가 반영된 패션으로 표현된다. 블랙을 선호하고, 마른 스타일을 추구하고, 스모키 메이크업에 피어싱, 징이 박힌 벨트 등등. 뭔가 아키하바라에서 마주칠것만 같다.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패션은 애티튜드다, 라고 선언하고 있다.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만 않는다면 기본적으로 자신을 만족시키는 선택이어야 한다고, 자신에 대해 파악하고 무엇이 어울리는지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감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요즘 머리가 자꾸 빠져서 짧게 잘랐는데요."라고 말하기보다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새로운 스타일로 컷트해 봤어요."라고 말해보자는 것이다, 자신감있게.
패션계의 전설 중 한 명인 코코 샤넬은 "패션은 건축과 같다: 비율이 핵심이다"라고 했다는데 이상적이고 조화로운 비율로 '보이도록'하는 패션팁처럼 실제적인 부분들도 뒷부분에 소개되어 있지만 이 책 전체가 그런 내용들은 아니다. 패션이라는 코드를 통해 본 인문,사회심리 같은 것에 오히려 초점이 있는 책이었다. 새로운 패션 용어들을 알게되고, 그를 통해 사회현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 하나를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타인의 관심을 쿨하게 받고 명쾌하게 자신만의 패션을 만들어가라는 것인데... 나로 말하자면, 뭔가 멘탈의 힘이 필요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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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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