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읽기(2017년)

블루
- 작성일
- 2017.4.10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일반판)
- 글쓴이
- 스미노 요루 저
소미미디어
로맨스 소설의 허울을 뒤집어 쓴 추리소설인가 싶었다. 책을 열어 보니 아주 풋풋한 사랑이야기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비약인가. 시한부 인생을 산 소녀와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운 한 소년의 애틋한 마음을 담은 내용이다. 사실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지 않는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니. 살인마가 장기를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언뜻 본 스토리에서 로맨틱함을 엿보고는 구입했던 책이다.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야 이름이 나오는 '나'란 소년이 있다. 도서실에서 책을 정리하거나 문학 책을 즐겨읽으며 자신의 생각에 빠져사는 소년. 어느 날 병원에서 어떤 이의 노트를 발견했다. 공병(共病)문고라고 쓰여있는 일기장이었다. 노트 속에는 췌장의 기능이 좋지 않아 일 년 안에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의 내밀한 일기였다. 얼른 덮었지만 노트를 찾으러 온 소녀는 같은 반의 활달했던 아이 야마우치 사쿠라는 여자애였다. 그 때부터 사쿠라는 그에게 함께 어딘가를 가자고 하거나 함께하는 시간을 갖자고 한다.
부모님 빼고 가까운 친구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이 곧 죽는다고 말하지 못했던 사쿠라는 우연히 노트의 내용을 본 그에게는 부담없이 자신의 병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자신의 병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학교에서 '나'는 누구와 제대로 말을 나눠본 적도 없었다. 그의 17년 삶에서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학교와 집 밖에 몰랐던 그가 사쿠라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시험이 끝났을 때 사쿠라와 함께 무제한으로 주는 고깃집에서 함께 고기를 먹는가 하면, 여자애들만 우글거리는 디저트 카페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 소문은 아이들한테 금방 퍼졌으며, 반 아이들은 둘이 사귀냐고 물었고, 사쿠라와 '나'는 그저 클래스메이트 일 뿐이라고만 말했다. 어느 누가 보아도 사귀는 걸로 보이는데 말이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마음을 나누는 일. 사쿠라가 싫지 않았고, 사쿠라의 병을 알기에 그 아이가 부를 때마다 약속 장소로 나갔다. 집안에서 책만 읽던 그에게 사쿠라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를 세상밖으로 부른 것이다. 이름이 없던 소년이 내일이 없을 소녀와 함께 한 시간이었다. 알고 있던 사람이 죽을 거라고 하면 믿지 못할 것 같다. 곧 죽을 거라고 아무리 말해도 거짓말처럼 여겨질 터. 소년이 진짜 죽는거냐고 물을때 이해할만 했다.

죽음을 마주하면서 좋았던 점이라면 매일매일 살아있다고 실감하면서 살게 된거야. (68페이지)
누군가를 인정한다, 누군가를 좋아한다, 누군가를 싫어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즐겁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짜증난다, 누군가와 손을 잡는다, 누군가를 껴안는다, 누군가와 스쳐 지나간다....., 그게 산다는 거야, 나 혼자서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없어,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누군가를 싫어하는 나, 누군가와 함께하면 즐거운데 누군가와 함께하면 짜증난다고 생각하는 나, 그런 사람들과 나의 관계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산다는 것이라고 생각해. 내 마음이 있는 것은 다른 모두가 있기 때문이고, 내 몸이 있는 것은 다른 모두가 잡아주기 때문이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나는 지금 살아있어. 아직 이곳에 살아있어. (222페이지)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처럼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오늘. 이 순간. 살아있다는 것.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도. 내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죽기전에 하고 싶은 것 또한 결국 아주 소박한 것들이다. 클래스메이트라고 우겨보지만 그들은 누가 봐도 소울메이트였던 것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말은 '너를 좋아한다' 라는 말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말은 결국 '살고 싶다'라는 말이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말이다. 오늘을 산다는 것, 함께 할 친구가 있다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풋풋하면서도 애틋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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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