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카테고리

목생화
- 작성일
- 2008.5.20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1
- 글쓴이
- 이민진 저
이미지박스(ImageBOX)
며칠 전 한 모임에서 아이들에게 성에 관한 그림책 선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어떤 이가 이런 질문을 뜬금없이 내놓았다. 아이들에게 성기를 얘기할 때 우리말인 ‘보지’, ‘자지’를 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순수한 우리말이 있음에도 음경(陰莖)이나 음문(陰門)등의 한자어를 쓰고 우리말은 왜 비속하다하여 터부시해야하는가가 질문자의 의견이었다. 우리는 언어의 발전과 변천까지 들먹이면서 대중적으로 비속하다하여 꺼리는 말은 아이들에게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같다 라는게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질문자의 의도에도 일리가 있기에 뒷맛은 영 개운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유교적 사회에 살면서 지나치게 성을 음지에 놓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우리말이 성에 관한 비속어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는 것이 아니냐는 말로 옮겨갔다. 점잖은 척하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좋은 그림책에 대한 찬양(?)을 위한 모임이라서 그런지 ‘성’에 대한 담론은 그리 길게 꼬리를 물지 못했다.
웬? 性이야기
이 책은 그동안 오래된 궤짝 같은 고리타분한 책들 속에 묻혀 있던 내게 나의 성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 표지부터가 도발적이다. 동양적인 듯하면서도 서양적 이미지가 풍부한 한 여성이 검은색 나이트드레스를 입고 붉은 색 창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독자를 날카롭게 쳐다보고 있다. 담배가 청소년에게 해롭다는 이유로 TV에서 담배광고는 물론 드라마에서 담배 피는 장면까지 심의에 걸려 삭제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임을 감안할 때 역시 과감하다. 케이시의 독자적이며 자기 생각이 뚜렷한 자유로운 영혼과 함께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이지적 모습이 담겨있다.
케이시는 미국의 한인 1.5세대이다. 이십대를 도전과 좌절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케이시는 세탁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는 이민부모의 밑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나오지만 마땅한 취업도 하지 못하고 부모가 원하는 로스쿨에도 진학하지 않는다. 백인 남자친구인 제이와 동거하다가 은우와 결혼에 대한 확신 없는 동거를 하고 직장 동료인 휴와도 성관계를 갖는다. 제이를 만나기 이전에도 많은 남성을 만났으며 낙태하기도 했다. 그녀의 친구 엘라는 모든 면에서 모범생의 전형이지만 부와 출세에 대한 야망이 큰 남자와 결혼했다가 실패한다. 케이시의 어머니 리아는 소녀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근대 한국여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으나 자기감정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한 남자와의 성관계로 아이를 갖고 유산을 하게 된다. 갈등과 모순 속에서 그들은 진실하려고 노력한다. 누구도 비난받을 수 없다. 그것이 저자 이민진의 의도였지 싶다. 가장 솔직한 것이 가장 진실하며 그 진실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힘을 준다. 그런 힘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다소 이야기에 긴장감이 떨어지는 느낌도 있었으나 그녀가 표현하는 한줄 한줄에 확실한 자기 정체성이 있었다.
나의 십대 그리고 이십대는 어떠했던가? 가난한 부모를 탓한 적은 없었다. 지방의 보잘 것 없는 대학이었지만 장학금이 없었다면 학위를 따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다녔던 대학 4년은 내 인생에 아무 쓸모없는 졸업장만을 안겨주었다. 뚜렷이 내가 가야할 길도 막막하기만 했었다. 미봉책에 불과했던 내 인생은 지금도 투덜거리며 걸어가고 있다. 그 투덜거림은 생활이라는 이름 속에서 아주 가끔으로 변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이만하면 경제적 어려움은 해결했잖아! 그래도 이정도면 사회적 인정도 있고 안정적이잖아! 라며 위로하지만 아직도 내 가슴은 잉걸불처럼 꺼지지 않는 ‘꿈’이라는 것이 있어 먹먹하다. 그 꿈은 꿀 때마다 아프다. 꿈의 실현을 위해 구체적 계획도 없다. 늘 갈증만 느낄 뿐이다. 케이시 한은 자신의 꿈을 찾아간다. 분명 또 다른 좌절과 아픔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경제적이라든가 사회적 인정을 들먹이며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훌훌 벗어버린 성정체성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책은 나를 이해시키기보다 타인을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때론, 나를 합리화시키기보다 남을 인정하는데 더 인색해지기 쉬운 것이 인간의 마음이며 내 마음이기도 했다. 내 아이에게 좋은 그림책을 읽어주고 선물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 이해하는 마음으로 선택권을 양도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중요한 일이리라. 그런 의미에서도 케이시 한과 엘라 그리고 리아의 삶 속에 얽혀지는 갈등구조는 내 인생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 하는 좋은 모델들이었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