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철학/사상

아그네스
- 작성일
- 2017.5.15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
- 글쓴이
- 황선도 저
서해문집
어린 시절 비린내를 무척 싫어해 나는 생선을 잘 먹지 못했다. 대신 굴, 홍합, 홍어회를 좋아했다. 평생 싫어할 것 같았던 비린내가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남편과 결혼한 후 국내 여행을 다니면서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먹은 생선구이, 거제도에서 먹어본 항아리 해물탕, 여수 오동도 인근 무인도에서 갓 잡은 생선회, 대천 해수욕장 근처에서 먹은 푸짐한 조개구이 등 국내를 여행하면 어딜 가나 이들 비린내가 맞아주었고 주린 배를 채워주었다. 이제 비린내는 내게 행복한 추억을 실어다주는 매개다.
이름도 모양도 괴상한 해삼(海蔘). 우리말로 '뮈'라고 하고, 흑충(黑蟲)과 해남자(海男子) 등의 이름이 있다. <전어지(佃漁志)>에는 해삼의 효력이 인삼에 맞먹기 때문에 바다의 인삼이란 뜻의 해삼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도 "해삼은 전복, 홍합과 함께 삼화"라고 하여 높은 가치를 매겼다고 한다. 중국에는 '남삼여포'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남자에게는 해삼이 좋고, 여자에게는 전복이 좋다는 뜻이다.
동네 횟집 앞을 지날 때마다 이름이 궁금했던 해산물이 있다. 이 책을 보니 '개불'이다. 고려 말의 요승 신돈이 정력 강화제로 즐겨 먹었다고 한다. 한방에서도 성기능이 쇠약해졌을 때 권하기도 한다니 효력이 입증된 것인가. 모양이 참 이상하다고 여겼는데 아닌게 아니라 개의 불알처럼 생긴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개불상놈'이란 말은 성미가 아주 고약하거나 행실이 나쁜 사람을 일컫는 말이란다.
화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미와 사랑의 여신 비너스가 조가비에서 태어난 것을 그린 그림이다. 어떤 조가비인지 궁금했던 적이 있는데 바로 가리비다. 가리비에는 큰가리비(참가리비), 국자가리비, 비단가리비 등 전 세계적으로 300종 이상 분포한다고 한다. 제철은 12월~4월의 겨울에서 봄까지고 큰 패주에는 여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특수한 성분이 있다고 하니 비너스가 탄생한 게 우연이 아닌가 보다. 세계적인 석유회사 쉘shell의 심벌도 가리비 조개껍질이다.
고등어보다 세 배나 맛있다고 이름에 '삼'자가 붙은 물고기가 삼치다. 삼치는 성질이 급해 금방 죽는 물고기라고 한다. 그래서 경매 방식도 조금 다르다. 삼치의 신선도를 잃지 않기 위해 삼치잡이 배들이 들어오기 전에 최고가격을 써낸 사람이 전량 수매하는 방식이다. 성질 급한 삼치가 언제 저 세상으로 갈지 몰라 바닥에 늘어놓고 경매할 여유가 없는 거다. 회를 비롯해 소금구이, 조림, 찜 등으로 요리해 먹는다고 한다.
만화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니모는 클라운피시clownfish 또는 아네모네피시anemone fish라고 하는 오렌지클라운피시orange clownfish다. 빨강이나 오렌지색이 흰색과 어우러져 광대 같다고 붙은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리돔과 같은 과에 속하는 흰동가리류로 총칭한다고 한다. 몇 년 전 여름 제주에서 물회를 먹어봤는데 바로 자리돔을 썰어 만든 자리물회라는 것을 이 책을 보고 알았다. '어두육미(魚頭肉尾)' 또는 '어두일미(魚頭一味)'라는 사자성어는 머리쪽에 살이 많은 돔 또는 도미와 관련 있다. "물고기와 육고기의 몸통을 얻을 수 없었던 (가난한) 사람이 소위 부속에 해당하는 머리와 꼬리 부분을 먹으며 자위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 전 세계는 녹색혁명을 넘어 청색혁명에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수산물 공급에 대한 기대와 자원의 보고인 바다와 갯벌의 중요성으로 인한 관심이다. 지속 가능성이 위기인 시대에 슬로피시는 어업과 식량자원의 미래가 달린 국제행사다. 슬로푸드 운동이 제안하는 슬로피시는 지속 가능한 어업과 소비자의 책임 있는 수산물 소비를 중요시하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슬로피시인 죽방렴과 건간망, 독살과 석방렴, 제주의 원담이 있다. 인간과 바다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복원해 살려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리뷰는 예스24리뷰어클럽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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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