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의 소리

샨티샨티
- 작성일
- 2017.6.6
5년 만에 신혼여행
- 글쓴이
- 장강명 저
한겨레출판
사랑하던 남녀가 결혼한 뒤 부부로 살면서 어느 한쪽의 희생 없이 원만한 가정생활이 이뤄지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양성 평등을 넘어 평등 부부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이들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평등한 부부로 지내기 쉽지 않음을 방증하는 일일 것이다. 생리적 욕구 충족에서부터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실현하려는 반려자의 동기부여는 상대의 이해와 사랑을 전제로 한다. 결혼 후 자식이 태어나면 어느 한쪽의 양육 부담은 더욱 커져 갈등은 심화되어 사랑보다는 증오의 싹이 발아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맞벌이 부부로 일하면서 자녀를 양육하며 사회생활을 잘하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도 자식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은 부모로 살면서 짐 지고 가야 할 숙제로 자리한다.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나 시민권을 획득하여 그곳에 정착하고 싶었지만 현지 적응 역시 힘들었음을 드러낸 <<한국이 싫어서>>속 주인공이 저자의 아내 HJ이었음을 고백하며 부부의 신혼여행 보따리를 펼쳐 보인다. 9학기 째 대학을 다니면서 학회 행사 진행을 맡아 HJ의 관심을 끌어서인지 둘은 학과 선후배로 만나 여느 연인들이 밟는 수순을 건너뛰기도 하면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배우자의 부모 눈에 들기는커녕 눈살을 찌푸리고 결혼을 달가워하지 않는 어른들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신문 하단의 모서리에 낸 결혼 광고로 식을 대신하고 부부가 되어 그들만의 생활 수칙을 지키며 유교적 관행에서 이탈한 생활을 이었다. 명절 때는 며느리를 보기 싫어하는 시어른을 찾지 않고 친정으로 가서 식구들과
함께 지내는 HJ의 곁에는 든든한 후원인인 저자가 있어 가능했다.
정관 수술로 아이를 갖지 않는데 합의한 부부는 부모로 살면서 겪어야 할 희로애락과는 거리를 두고 부부 중심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 골몰하였다. 신속함과 정확성을 생명으로 하는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전업 작가로 돌아선 저자는 익숙한 길을 벗어나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위험부담을 안고 글을 쓰는 일에 주력하였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새로운 꿈을 실현하려는 열정은 실천적인 집필로 이어졌다. 직장 생활하는 아내가 출근하면 구상한 글을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여 책을 출간한 뒤 독자들의 반응을 살피는 일은 조바심 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문학계의 동향과 시류를 읽어내는 힘이 있어서인지 큰상을 수상하면서 작가 장강명의 입지를 굳혀 나갔다.
결혼 5년 만에 3박 5일 일정으로 보라카이로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가 여행 전에 준비한 여행 이야기, 현지 리조트에 머물며 겪은 일들을 진솔하게 표현하여 공감을 더한다. 잔잔한 에메랄드 빛 바다와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모래, 즐거운 해양스포츠가 어우러진 보라카이는 휴양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낙조를 보기 위해 서해를 찾는 것처럼 화이트 비치에서 해가 지는 풍경을 보며 지금껏 바쁘게 살아내느라 여유롭게 해가 지는 풍경을 볼 생각을 못한 채 지나왔던 시간을 반추한다. 한낮의 바닷가는 조각조각 난 사유지였고, 최소한의 장비로 수익을 올리는 부동산으로 자리하는 필리핀의 관광 사업의 일면을 가늠한다.
큰돈 들이지 않고 마시고 싶은 맥주에 싱싱한 해산물을 곁들이고 해변의 그늘 아래서 책을 읽으며 여유를 부리는 일은 분주한 일상에서 비껴났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보라카이의 호텔을 베이스캠프로 삼고 D몰을 집 앞마당처럼 들락거리며 필요에 따라 음식을 맛보고 술을 마시며 여행자의 욕구를 충족한다. 망고 주스 한 잔을 앞에 두고 책을 읽으며 뒹굴며 여유를 부리는 즐거움 역시 일상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일 중 하나다. 책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더라도 각자 책을 읽으며 사유의 폭을 확장해 가는 부부의 모습에서 이해 증진을 위한 실천을 읽어 내린다. 책 속의 다양한 생활상이 관계지향적인 삶을 끌어주는 원동력으로 자리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가늠키 어렵고 어떤 행복과 불행을 알 수 없지만 생각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독자성을 인정해주는 부부의 배려는 보라카이 신혼 여행기에서도 드러난다. 여행에서 좋았던 부분을 공유하며 다음 여행 계획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부부의 모습에서 행복을 읽는다. 2014년 11월 이후로 결코 다투지 않고 서로 사랑하다 같은 날 이 세상을 떠나는 상상 속에 작가는 평안함을 찾으며 일상으로 회귀하였다.
26년 째 부부의 연을 맺고 사는 50대 부부는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서로를 향해 세우던 날이 무뎌졌다. 그동안 성질 달래며 살아내느라 힘든 시간은 나잇살만큼 쌓여 세상을 보고 수용하는 폭이 넓어졌다. 피곤하다더니 눕자마자 곯아떨어진 남편의 주름진 이마를 들여다보며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영영 볼 수 없는 그대를 좀 더 이해하며 살자고 다짐한다. 가치관과 성향이 달라 합치된 의견을 보일 때가 많지는 않지만 이 또한 자신을 키우는 동력이라 여기며 가치를 부여한다. 해야 할 일들을 방기하지 않고 묵묵히 행하는 일에서 두터운 정을 가늠하며 애정의 깊이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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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