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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조는병아리
  1. 인문학으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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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기술
글쓴이
이반 이스쿠이에르두 저/김영선 역
심심
평균
별점8.9 (28)
봄볕조는병아리

 망각은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그렇지 않아도 까마귀 고기를 섭취하는 것도 아닌데 날이 갈수록 자꾸만 기억력을 볼 때마다 받는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자존감이 상처 입는 것을 넘어 이제는 자괴감이 들 정도다. 하기사 살면서 망각이란 것 때문에 얼마나 성가신 일이 많았던가? 시험 공부할 때도 그렇고, 직장에서 일을 할 때는 물론이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일들에 있어서도 망각의 농간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않아도 되었을 불편들을 참으로 수없이 많이 겪었다. 그런 불편 속에서 마구 허우적거리는 시간이 잦다보니 절로 소망하게 된다. 누군가 부디 이 망각을 영원히 없애줄 방법을 찾아주기를. 

 

그런데 여기에 반기를 들고 찾아온 이가 있다. 그가 바로 브라질 태생의 신경생물학자 '이반 이스쿠이에르두'란 사람이다. 그는 주로 기억과 관련된 뇌 활동을 연구하는데 이 쪽 방면에서 세계적으로 꽤나 저명한 학자다. 그런 그가 단호히 말한다. '기억만큼 망각도 중요하다. 우리의 뇌는 존재의 지속을 보다 잘 하기 위해 일부러 망각의 과정을 거치는데 그것이 바로 망각의 기술이다.'라고.


 '망각의 기술'은 바로 그런 것을 소상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기억과 관련한 뇌 과학의 권위자인만큼 책의 분량이 작더라도 내용이 장난이 아니다. 우리의 뇌에서 기억이라는 게 어떻게 이뤄지는가에서 부터 시작하는데 기억과 연관된 뇌의 해부학적 지식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반 이스쿠이에르두에 따르면 우리들이 흔히 기억이라 부르는 것은 '서술기억'인데, 이것은 의미, 이해, 개념을 기반으로 하는 지식에 대한 기억인 '의미기억'과 일화에 대한 일화 기억(혹은 자전 기억)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기억엔 이것만 있지 않으며 자전거를 탈 때와 같이 굳이 머리를 쓰지 않아도 몸이 먼저 기억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처럼 감각 또는 운동 기능에 대한 기억을 '절차 기억'이라고 한다. 또한 여기에 더하여 남의 전화번호를 외워놓고 전화를 한 뒤 곧 잊어버리는 것처럼 특정 상황에 국한하여 잠시 기억하는 것도 있는데 이를 '작업 기억'도 있다. 우리의 기억은 이렇게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기억들은 모두 뇌의 특정 공간에 저장되는데, 기억한다는 것은 마치 캐비넷에서 필요한 파일을 꺼내듯, 이 공간에 저장된 기억을 인출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망각 또한 엄밀한 의미에서는 기억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저장된 기억을 인출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 망각이란 저장된 기억에 대한 접근을 막는 것인데, 우리 뇌에선 주로 네 가지 방법을 통해 망각을 실행한다. 우리 뇌에서 기억의 인출은 기억을 맡고 있는 뉴런 세포에 '점화'라는 자극을 통해 이뤄지므로 망각의 실행은 보다 정확히 말하면 기억을 인출할 때 사용하는 자극에 대한 반응을 억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억제의 방법으로 우리 뇌가 사용하는 것이 바로 습관화, 소거, 차별화 그리고 억압이다. 뇌는 이 네 가지 방식을 통하여 우리 뇌에서 기억이 차지하는 용량이 과잉 되지 않도록 조절하는데, 그래서 이반 이스쿠이에르두는 '망각의 기술'이라 칭하는 것이다.


 뇌는 우리에게 이익이 되도록 우리 의지의 그 어떤 개입도 없이 단독으로 이 기술을 행한다.(p. 55)


 우리는 지금까지 망각이 그저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현상인 줄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알고 보면 그것은 이렇게 지극히 계산적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뇌가 우리에게 이익이 되도록 일부러 망각을 실행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뇌는 왜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사람의 용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뇌도, 에너지도. 사람에게 주어진 한정적인 자원을 보다 중요한 일에 쓰기 위해 기억 역시 조절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자원 관리의 일환이다. 이를테면 '습관화'를 보자. 모든 포유류에겐 지향 반응이라는 게 있다. 쉽게 말해 어디선가 소리가 들리면 그 쪽으로 저절로 고개가 돌아가는 반응이다. 당신이 어둔 밤길을 홀로 걷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더구나 낯선 곳을 말이다. 그런 곳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리면 얼른 고개가 그 쪽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것이 지향 반응이다. 모든 생물이 다 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당신이 익숙한 길을 대낮에 걷고 있다면 그런 소리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바로 두뇌가 새로운 자극을 적절히 통제하기 때문이다. 그 자극으로 인해 뉴런이 점화되지 않도록 억제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습관화'다. 하도 익숙해 자극에 대한 기억력을 일정 정도 낮추어 두는 것. 같은 골목이라 하더라도 동네 골목과 낯선 외국의 골목은 아주 다르게 다가온다. 낯선 외국의 골목에 대해선 우리 두뇌가 '습관화'가 안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습관화'는 우리가 세상을 좀 더 마음 편하게 돌아다니도록 도와준다. 망각이 하는 일이 바로 이와 같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선택과 집중에 뒤따르는 부산물인 것이다. 우리 두뇌가 보다 중요한 정보에 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그렇지 않은 정보들은 그 우선 순위의 정보들을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 지우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세세하게 설명을 하니, 망각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었다. 224페이지에 부담 없는 분량이지만, 얻는 것은 꽤나 많은, 기억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더하여 이 책엔 어떻게 하면 기억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도 나와있다. 이 책에서 가장 추천하며, 또한 유일한 방법은 바로 '읽기'다. 

 

 기억 훈련은 시냅스를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고, 최고의 기억 훈련법은 '읽기'다.(p. 134)

 기억을 훈련해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읽고, 읽고, 또 읽는 것이다.(p. 138)


 이는 실제로 증명되기도 했는데, 다른 것보다 읽기가 요구되는 직업을 가진 고령자가 확실히 기억력 상실이 적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치매가 두렵다면 지금부터 많이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는 뜻이다. 부지런히 읽자. 그것은 곧 내 몸에 좋은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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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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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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