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사진
quartz2
  1. Review

이미지

도서명 표기
경성의 건축가들
글쓴이
김소연 저
루아크
평균
별점8.4 (9)
quartz2

천재 아니면 바보, 친일 아니면 반일. 

세상에 단 두 가지만 존재하면 명쾌하고도 쉬울 것 같아서일까. 난 가끔씩 극단적인 이분법을 세상에 적용해보려는 시도를 하곤 한다. 그리고 그 때마다 예외라 일컬어질 법한 존재들과 마주하곤 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것만 같은 사람들, 그들의 입체적 삶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믿는다. 실상 나도 나를 잘 모르면서 어찌 남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단 말인가!

과거 어느 시점을 살다간 사람들의 삶을 만날 때면 이러한 어려움은 가중된다. 오늘날을 벗어나 그들의 시대로도 한 번 즈음 가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후대에 지탄받을 줄 정녕 몰랐던 걸까. 당장에의 이익에만 급급할 정도로 미래를 바라보는 눈을 지니지 못했던 것일까. 이미 죽은 이로부터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는 건 당연한 일. 결국 그들의 삶을 해석하는 일은 살아있는 우리의 몫이다. 

저자가 주목한 건 건축이었다. 사실 일제 강점기에 대해서는 왜곡된 시선이라 할지라도 적잖은 책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근데 건축 분야에 대해서는 내 스스로가 관심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이제껏 읽어본 책이 없지 싶다. 일제가 주장하는 대로 우리 자신에게 발전을 위한 역량이 부재했던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근대로 나아가려는 모든 움직임이 일제에 의해 꺾인 마당이었기에 그와 같은 주장이 성립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이 시기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당시의 변화 또한 우리 사회의 일부로서 우린 받아들이고 이해해야만 했다.

건축은 도시의 인상에 변화를 가져다 준다. 초가집만이 즐비했던 식민지 경성에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건물이 들어섰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을지가 궁금하다. 우리의 것을 철저히 부정하는 시기답게, 오로지 외부의 것을 복사하려 든 것만 같은 건물들도 있었을 것이요, 우리를 지배한 일제의 것과 꼭 닮은 형태의 건물들도 꽤 등장했을 것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가 탱자가 되듯 기존의 틀 안에 속하지 않는 형태의 건물들도 생겨났다. 전통적인 한옥 지붕을 씌웠으나 내부는 서구의 것을 본딴 형태의 건물들은 어디서도 보기 힘든 경성만의 것이었다. 

이와 같은 건물들이 등장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 중에는 물론 일본인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패권을 거머줬으며, 자유자재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식민지에서 펼칠 수 있었다. 아주 드물게 조선인 건축가들도 있기는 했는데, 성장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온갖 차별조치는 그들이 성인이 된 이후로도 지속됐다. 
오늘날 많은 건축물들은 차가운 재질을 사용해 만들어졌다. 튼튼하기 때문인 듯한데, 대신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듯해 아쉬움이 크다. 허나 나는 개별 건축물이 지닌 특성에 깃든 사람의 향기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 독서를 하며 나는 건축물이 지닌 특성에 건축가의 삶과 사상이 반영될 수도 있음을 배웠다. 비슷한 시대를 살다 갔지만 박길룡과 강윤, 이천승 등이 남긴 건축물은 그들의 상이한 인생만큼이나 달랐다. 출세까지는 아닐지라도 당시 조선인들이 건축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으려면 조선총독부에 적을 두는 등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래서 나름 이름을 남긴 건축가들은 하나같이 조선총독부 소속을 자랑 아닌 자랑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전통을 부정하는 것이 곧 진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이라 믿었던 이들은 자연스레 우리의 건축 양식을 해체하는 일에 앞장섰다. 이천승 같은 이의 경우, 아예 출세의 길을 좇아 만주국으로 향하기도 했다. 다수의 친일파가 광복이후 어떠한 죗값도 치르지 않았듯 이천승의 이력 또한 딱히 문제 삼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그의 경험은 모든 것이 파괴된 경성을 다시금 일으킬 도시계획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야 만다. 식민지 시절 도시형 한옥 건축일에 떠밀려 참여했던 장기인이 써 내려간 인생은 이와는 또 달랐다. 그는 모든 이들이 부정한 우리 것에 매달렸고, 유난히도 일본식 용어가 많이 쓰이는 건축 분야에 우리말을 도입하기 위해 애썼다. 그가 처음으로 사용했다던 '배흘림기둥'이라는 단어가 오늘 따라 실로 푸근하게 다가왔다. 어여쁜 우리말을 사용할 수 있어서 우리의 삶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가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부디 많은 이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앞서기도 했다.

이 시대를 살다간 건축가들은 어떠한 시선을 하고 바라보는 게 옳을까. 자신의 의지를 좇기에는 시대가 참으로 혼탁했다. 시인 이상이 남긴 누구도 쉬이 이해치 못할 작품들 또한 뒤틀린 시대의 반영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건물을 설계하고 쌓아 올릴 수 있었던 그들은 행운아였던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축적되는 울분을 대다수는 토로치 못한 채 이름없는 삶을 살다 갔으니까. 우리의 근대는 그런 시기였다. 바라는 건 많은데 충족되는 건 없는 욕구불만의 시대, 달라져야 한다는 의욕은 넘치나 현실의 뒷받침을 기대해선 안 되는 서글픔의 시대...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04.26

댓글 0

빈 데이터 이미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quartz2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25.5.9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5.9
    첨부된 사진
    20
  2.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20
  3. 작성일
    2025.5.4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5.4
    첨부된 사진
    20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07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8
    좋아요
    댓글
    67
    작성일
    2025.5.8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27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