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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글쓴이
김현희 저
생각비행
평균
별점8.9 (9)

제목도 도발적이지만, 첫 페이지부터 팔뚝의 잔털이 일어설 만큼 소름 돋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현직 교사 중에서도 신규 말고, 한 3~4년차쯤부터 10년차쯤 되는 계층이라면 더욱. 그리고 학교 현장의 관료화와 경직화에 염증을 느끼는 교사들이라면 누구나 격하게 공감할 수 있는 솔직하고 도발적인 내용들이 담겨있다. 사실 상식적으로 나쁜 일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도발적으로 느껴진다면, 학교 현장은 근본적인 교육의 의미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다는 것인지.

 

"몇 년 동안 같은 학교에서 근무한 동료 교사 한 명은 뭐든지 아는 체를 하고, 쉼 없이 자기 이야기만 하고, 모든 일에 참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p13)"

 

첫 장을 펴자마자 '으잉? 날 보고 썼나?' 하는 생각이 드는 차에 <내 옆에는 왜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라는 책을 인용하면서 '이상한 사람 질량 보존의 법칙'을 언급한다. 내가 올 1월에 하도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제목만 보고 탁 꽂혀 읽었던 책이다. 어떠한 조직이나 단체든 이상한 사람이 섞여 있는데 그 책에는 이상한 사람들의 유형과 그에 맞는 대처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읽어도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는 건, 상대가 그대론데 내가 혼자 애써봐야 자위말고 뭐 더 이상 될까 하는 불신 때문이었을까, 그 사람들에 대한 파악과 대처가 미흡해서였을까. 나도 뭐 대단한 사람 아니고 평범한 동료 교사로서 특정한 선생님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지만, 거기서 나의 괴로움과 마음의 부채가 끊기지 않았던 것은 '비극은 일정 비율의 이상한 사람이 '교사'라는 것, 그리고 학생들이 이들 앞에 무방비 상태로 일정 기간 포로가 된다는 데서 발생한다.'(p14)라는 데서 온다.

 

우리나라의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아주 큰 권력을 갖고 있다. 체벌이 금지되면서 전통적으로 아이들을 '통제'하는 수단이 없어졌기 때문에 교권이 추락되니 어쩌니 하지만, 아이들에게 손 한 번 대지 않고도 존경받고 서로 존중하는 교사들이 훨씬 많다. 체벌 위에 세운 교권은 그 매가 없어졌을 때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에 교육은 그에 기대서는 안 된다. 마치 긴 생머리가 좋아 그 여인을 사귀었다가 생머리를 자르니 더이상 널 좋아할 이유가 없어졌다며 이별을 통보하는 무정한 남자와 같다. 특히 고등학교의 경우 인문계에서는 대학에 진학하는 데에, 전문계에서는 취업을 하는 데에 각종 시험과 생활기록부 작성, 추천 등으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부모와 교사를 동일시 여기는 관점, 군대 문화의 잔재, 폐쇄적인 학교 문화 속에 계속 공고화되어 왔다. 덕분에 누구나 우리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교육부라는 기관에서는 수많은 정책들을 교육 현장에 쏟아붓지만 정작 그 효과는 미미하다. 제목을 보자면 그럼 이 경직성, 비효율성, 억압성의 책임은 모두 이상한 교사들에게 있는가.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는 10년차 초등 교사인 저자가 그간 현장에서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이 이상한 학교 현장을 개선해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이 교사의 권력에 관한 이야기였다. 청년 실업 백만의 시대에 안정적으로 신분이 보장되고 높은 연금에 비교적 괜찮은 연봉, 그리고 방학의 존재까지. 게다가 맨날 가르치는 거나 가르치고 업무 강도는 일반 기업에 비해 덜해서 교사는 여러모로 여기저기서 까인다. 하지만 교실 안에서만큼은 굉장한 권력을 행사한다. 눈빛, 손짓 하나로 수십 명의 학생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진로와 미래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연차를 거듭할수록 내가 자신있게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에게 예전처럼 강력히 권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학생부에서 일하다보면 이런 딜레마를 수도 없이 겪게 된다. 머리 색깔이 공부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교실에서 라면을 먹으면 냄새가 나서 공부에 방해가 되는데, 그것을 잘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 그게 안된다면 자체적으로 규칙을 만들거나 자정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민주적이지 않은지. 복도에서 교사와 마주쳤을 때 교사가 먼저 인사를 하면 학생은 싸가지없는 놈이 되는건지. 나는 종이 치고 커피 한 잔 따라서 느지막이 교실로 걸어가지만 나보다 늦게 들어온 녀석은 지각이 되는건지. 그럼 기준은 수업종인지 내 도착시간인지. 학교에서 먹고 자는 아이들에게는 헌법이나 탄핵같은 거대한 가치판단보다도 생활 속에서 매일 부닥치는 이런 사소해보이는 일들이 훨씬 큰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데 대해 내게는 '저 선생님은 사람이 너무 좋다. 너무 여려서 아이들을 잘 못 잡는다.'와 같은 반응들이 전해진다. 진짜... 나만 불편한가? 내게 그런 말을 하는 모든 선생님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그 사람들 중에 교사의 '권력'에 취해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권력을 가지게 된 인간의 몸에서는 테스토스테론과 도파민 분비가 촉진된다. 이는 사람을 긍정적, 도전적이게 할 뿐 아니라 인지 능력과 자신감을 높여준다. 즉 권력은 사람을 더 똑똑하고 공격적이게 만든다. 권력을 행사하여 성취감과 승리감을 느끼는 사람의 뇌에서 벌어지는 신경 화학작용은 환경에 대한 통제감을 갖게 해 삶에 대한 행복감, 만족감을 높이고 스트레스로부터 사람을 보호한다. 권력의 긍정적 영향이다. 그러나 권력이 뇌에 늘 긍정적인 영향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의 뇌 속에는 그만큼 많은 도파민이 발생하는데, 다량의 도파민과 테스토스테론은 사람의 공감 능력을 약화시킨다. 목표 달성에 매진하고 실패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특성이 지나치게 강화되면 사람은 최종 목표에만 집중하게 되어 터널처럼 좁은 시야를 갖게 된다. 권력 사용의 기회에 계속해서 노출된 사람은 자기애가 커지면서 오만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평소 우리가 '사회에서 힘 좀 쓴다는 사람들은 다들 왜 저러지?'하고 느끼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안 로버트슨은 승리와 권력에는 중독성이 있어서 사람의 뇌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p26~27)

 

학교에서 내가 들은 말 중에 가장 폭력적인 말은 '그건 아니지.' '혹은 이게 맞지.'라는 말이다.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 풀이가 아니라, 학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와 같은 가치 판단의 문제 상황에서 들었을 때 그 말은 대안이나 공감이 아니라 억압으로 다가온다. 나보다 경험이 많아서, 교직 경력이 길어서, 비슷한 상황을 이미 경험해 봐서 자기의 생각이 정답인 양 말하는 것을 보면 역겨움이 일다가도 측은하기도 하다. '저 사람의 세계는 저기까지구나. 다른 사람이 들어갈 곳이 없구나. 교실 속에 멈췄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교사는 아직 미성숙한 학생들을 지도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합의에 따라 정당하게 부여받은 권한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권력에 도취된다는 것이고, 그 도취의 결과가 공감 능력의 약화라면, 진짜 심각한 문제다. 이 책이 의미를 갖는다면, 내가 교실 속에서 권력에 도취되어 있지는 않은지 혹은 그를 인지조차 못했는지 교사들에게 반성하게 만드는 지점에서일 것이다.

 

권력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교권을 추락시키고 학교가 신뢰를 잃게 만든 여러 가지 일들을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그릇된 권위에 순종하는 보통의 사람들-여기서 한나 아렌트가 언급했던 '악의 평범성'까지 등장한다.-, 전문성도 학생에 대한 존중도 없으면서 일방적인 존경심만을 요구하는 사람, 학교의 모든 것을 수치화, 대상화, 객관화시키는 교육 관료들, 투명하지 않은 학교 운영, 학부모와의 소통 단절, '지식'에 대한 개념 규정 없는 지식 교육에 대한 비판의 프레임, 교육 현장과 유리된 교사 양성 커리큘럼, 국가 주도 인성교육의 허상......

 

열거하자니 무슨 부패와 무능의 집합소같다. 하지만 원점으로 돌아가면 교육 현장이 그리고 교사들이 지향해야 할 지점은 명확하다. 그와 관련된 부분을 인용해본다.

 

막스 베버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구분했다. 신념윤리란 개인이 그 행위의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고 행하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근본주의적인 태도다. 책임윤리는 행위자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를 전체 구조와 맥락에서 고민하는 판단력과 태도다. 자기 행위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한, 그 행위의 책임을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원인에게 떠넘기지 않는다. 베버는 이 두 가지의 윤리의 균형을 발견하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절대적 신념윤리만을 가진 지도자가 현실 세계에서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강하게 피력했다.(p234)

 

권위에 도취된 신념윤리 대신 대상이 처한 전체 구조와 맥락 속에서의 교육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인. 어려운 말이지만, 원래 한 사람을 대한다는 게 쉬울리가 없지 않은가. 그것이 아직 미숙한 학생들이라면 더욱. 학교에 있는 모든 선생님들과 사이가 나쁘지만 내게만은 90도로 인사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담임이 감싸고 돈다고, 그러니까 저 모양이라고, 담임이나 학생이나 하는 짓이 똑같다고 다른 학생들 앞에서 흉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아이가 그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이혼한 부모, 그들과의 껄끄러운 관계, 성적으로 인한 낙인, 차별, 부정적 기대 등 온갖 것이 혼재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이제 출발이다. 잘못에 집중해 강력한 벌을 주고 우리의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야 할 것이 아니라 두 번도 용서하고,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고, 내 품안에서만이 아니라 언젠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한 번은 꽃을 피우고 말리라고 용기를 주고 믿어주고 변함없이 대해줘야 할 뿐이다. 여기에 '학교 규정은 규정이다. 잘못한 건 모두 네 책임이니까 네가 다 책임지는 게 맞다.'고 강요하는 것은 합리성 뒤에 숨은 폭력이다. 교사는 학생들의 삶의 중요한 시기에 필요한 도움을 주고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할 사람이지 같잖게 벌점 몇 점 따위로 사람을 수치화하는 학교 규정 따위의 문지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이런 생각 또한 학교 체제에 대한 도발일지 모른다. 내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나 역시도 비뚤어진 권력에 도취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은 동료들과의 토론에 목마르다. 책을 읽고 나니 더욱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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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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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7. 18.

    @이유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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