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사회

파란자전거
- 작성일
- 2017.9.23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 글쓴이
- 진중권 저
천년의상상
무척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고양이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고양이가 언제부터 인간과 함께 했는지를 살피는' 고양이 역사학'을 시작으로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를 다룬 '고양이의 문학', 철학자들이 고양이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쓴 '고양이의 철학' 까지.
저자는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 '냥줍'을 통해 집사로 간택되었고, 별수없이 고양이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인간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나 고양이 중심적인 사고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라고 밝힌다. 설마 고양이 한 마리 키운다고 해서 삶의 방향까지 달라질까 싶지만, 이미 sns를 통해 많은 집사들이 이 과정을 겪고 있거나 겪었다는 내용을 고백하고 있기에 저자의 말에 수긍이 갔다.
가령, 내가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 중에 고양이 방송이 있다. 거기에 나오는 '아리'라는 고양이는 주인의 손을 무는 것으로 지금 현재 17만명의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는 스타다. 구독자들의 댓글을 보면 대개 고양이를 열렬히 응원하면서 고양이를 더 열심히 섬기라는 말로 집사를 압박한다. 집사는 댓글을 보며 '악마들'이라고 절규하지만 집사 역시 고양이의 추종자에 불과하다. 다른 채널에서 고양이를 '귀여운 아기'로 등장시키는데 반해 이곳에서는 고양이에게 사람보다 더 주인 같은 이미지를 부각시켜 구독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 이 채널에서는 이미 고양이 중심적 세계가 형성된 것이다.
키우고 있는 고양이 '루비'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한 저자가 고양이에게 바치는 선물이 이 책인데 내용은 그다지 달콤하지 못하다. 사이프러스 섬에서 발견된 고양이 뼈를 통해 신석기 시대부터 고양이가 인간과 함께 생활했고, 지금 집고양이로 살고 있는 모든 고양이들의 조상이 '근동 들고양이'라는 정보는 흥미롭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신성시 했으며 그리스, 로마로 확산 된 고양이는 유럽까지 진출한다. 고독한 수도자의 유일한 친구노릇을 한 것도 고양이고 무슬림들이 사랑한 반려동물도 고양이였다.
그러나 중세에 접어들면서 고양이들의 수난시대가 찾아온다. 마녀사냥이 벌어지던 중세에서 고양이는 우리 사회의 '빨갱이'처럼 사용되었고, 잔인한 학살이 수세기동안 이어진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가서야 비로소 고양이에게 덧씌어진 가면이 벗겨지면서 지금과 같은 반려동물의 자리를 차지할수 있었다고하는데 고양이의 수난을 읽는 일이 힘 들었다.
'고양이의 문학'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장화신은 고양이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웃음 고양이,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의 고양이 등이 거론된다. 많은 내용들 중에서 내 마음을 끄는 것은 시 한 편이었다. 중세 아일랜드 수도승이 썼다는 시를 그대로 옮겨 본다. 서로 상대를 인정해주며 살았을 수도승과 고양이의 관계가 무척 따뜻해보여서 오래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다.
판거 밴
나와 내 고양이 판거 밴,
우리는 비슷한 일을 하지
쥐를 쫓는 것은 그의 기쁨이고
나는 밤새 앉아 낱말을 쫒네
세인의 칭송보다 훨씬 좋은 것은
책과 팬을 들고 앉아 있는 것
판거는 나를 성가시게 하지 않고
자기의 단순한 기술을 연마하네
얼마나 기쁜 일인가
작은 방에 함께 앉아
각자 제 일을 하며 우리는
정신의 즐거움을 느끼네
때로 길 잃은 쥐가
영웅 판거에게 걸리듯이
때로 나의 열정적 사유도
그 망 속에서 의미를 잡아내네
그가 둥글고 날카로운 눈길을
벽으로 던지면
나는 알량한 나의 지혜를
지식의 벽으로 던지네
쥐가 구멍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오, 판거는 얼마나 기뻐하는가!
씨름하던 문제를 풀었을 때
나 또한 얼마나 기뻐하는가!
그렇게 평화롭게 제 일을 해나가네
판거 밴, 내 고양이와 나는.
우리의 기술에서 우리는 행복을 느끼네
나는 나의 행복, 그는 그의 행복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 연습으로
판거는 제 소임을 완수해나가고
나 역시 밤낮으로 지혜를 구하며
어둠을 빛으로 바꾸어 놓지.
'고양이의 철학'은 이 책에서 가장 진지한 부분이다. 이 장에서 저자는 왜 인간 중심으로 모든 걸 생각해야만 하는지,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를 묻고 있다. 과연 인간 만이 영혼을 지녔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지? 저자가 하고 싶은 핵심은 아래의 내용 같다. 나 역시 반려동물과 함께하면서 나날이 깨닫고 있는 내용이다.
이성이나 언어보다 중요한 것은 동물도 우리랑 똑같이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인간중심주의와 이성중심주의가 무너진다. 근대 철학을 지탱해 온 이 두 기둥이 무너지면서 비로소 동물은 고통 받을 수 있는 생명체로서 처음으로 고통받지 않을 '권리'를 갖게 된다.287쪽
저자가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누리게 되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무거운 책이었다. 언론에 노출된 저자의 이미지처럼 무척이나 자부심 강하게 쓴 내용들이 그 무거움을 많이 덜어주었다. 집사에게 최선을 다해 자신을 보살피게 하고 이렇게 책까지 쓰게 하는 것이 고양이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니 고양이가 더 매력있게 느껴진다. 고양이 집사라면 고양이의 역사와 문학 철학 정도는 알고 있어야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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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