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날來

싱긋
- 작성일
- 2017.10.20
5년 만에 신혼여행
- 글쓴이
- 장강명 저
한겨레출판
우리의 삶은 바다가 아닌 뭍 위에 있다. (189)
한동안 장강명의 소설을 몰아 읽다 약간 꼬인 마음으로 ‘이제 산문!’이라며 읽기를 미루었다. 일년 만에 만난 그는 내게 직격탄을 날렸다. 성실하게 살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믿었던 나는 심하게 흔들리며 왜 즐겁게 사는 법을 모를까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의 직언대로 내가 행복하고 즐거운 게 먼저다. 그래야 사랑하는 사람도 돌볼 수 있다. <5년 만에 신혼여행>은 기대 이상으로 재미났다. 동갑내기 작가임에도 인생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개척하는 남다른 점에 그만 오빠라고 부르고 싶었다! 그가 지금까지 쓴 책 중 딱 절반 정도 읽었다. <그믐>에서의 우주볼의 이미지는 쉽게 가시지 않고 지금도 생생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작가는 <호모도미난스>로 받은 상금으로 5년 만에 늦은 신혼여행을 떠난다. 보라카이로. 남의 3박 5일 신혼여행담을 이렇게 신나게 읽을 줄 몰랐다. 그는 정색하겠지만 에세이를 읽으며 알랭 드 보통과 닮은 점이 보였다. 작년에 읽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과 패키지로 엮어 판매해도 좋을 듯하다. 신혼여행지의 기록이 연애와 결혼, 삶을 너무나 맛깔나게 요리해낸다. 작가의 자기 앎과 분석이 돋보인다. 작가가 자기식의 표현과 용어로 이론화하는 삶의 공식들이 참 좋았다.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그는 강단에 서도 유능함을 입증 받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무라카미 하루키, 김영하, 장강명의 여행과 예술, 사랑을 테마로 책을 기획해도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내밀한 사생활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 발동일지 모르겠지만 성공할 주제임에 틀림없다.
나는 허구에 대해서 생각했다. 때로는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해방이라는 명목으로, 때로는 삶의 의미라는 구실을 내세워 다가오는 허구들. 나는 그 허구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쉴 새 없이 허구를 만들어내고 그 허구 속에서만 살 수 있는 존재다... 어떤 허구에는 다른 허구로 맞서고, 어떤 허구에는 타협하며, 어떤 허구는 이용하고, 어떤 허구에는 의존할 수밖에 없다. (237)
저자의 360도 펼쳐진 너른 시야와 트인 생각이 놀라웠다. 정확하고 날카로운 말 뒤에 한번쯤 자신이 한 말을 곱씹어보는 그림이(생각 많음이) 그려져 센 표현 뒤로 의외로 순한 인상이 감돌았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독성 있는 그의 소설을 즐겨 찾는다는데 그의 철학을 접한 이들이 이끌 변화에 내심 마음이 들떴다. 한국의 결혼 문화가 문제점이 많다는 건 알지만, 그리고 가정의 구성이 반드시 아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면서도 대체로 함구하며 살아왔다. 그런 내게 그의 분명한 계획과 실천과 주장은 그 자체로 파격적이었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 잊게 되고 관성에 젖기 쉬운 나이에 그는 자신의 사상을 삶과 일치시키는데 주력한다. 책이 대박 나서 유명해지거나 부자가 된다 해도 자신의 중심과 가치를 쉬이 저버리지 않을 것 같다. 물론 타고난 명석함이 그를 뒷받침해주고 있지만 스스로를 낮춰, 불편한 곳으로 내려가는 사람은 흔치 않다. 자신의 주관과 개성대로 사는 그의 시원함이 보라카이 해변보다 더 맑고 투명하게 시선을 압도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맞는 파트너를 알아보고 기다리고 더 사랑하려는 그가 멋졌다.
그러자 나는 이 여행이 인생에 대한 비유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정의 중반을 넘기고서야 어떻게 하면 시간을 의미 있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시작하면 진짜 잘할 수 있는데, 생각하며. (197)
중년에 삶을 당차게 포맷해 인생을 다시 쓰는 그의 활기와 의지는 사람을 사로잡는다. 그것이 그에게 받은 첫인상이었다. 그게 연이 되어 그의 소설을 읽어나갔다. 어느 정도 인기와 인지도를 얻었을 때 그가 작품으로만 사회 문제를 공론화하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음에 물음표가 생겼었다. 마침 알고 있었다는 듯 문학상 수상금으로 비주류 문학 증진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장강명은 영리하고 소탈한 작가다. 복잡하지만 꽤 명쾌하다.
나는 삶의 방향성과 의미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그가 부럽다. 그냥 추상적으로 혼자만의 소심한 생각에 그치던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게 한다. 그의 산문체는 '언제나 좋은'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를 품고 있다. 유연하고 당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있다. “인간은 자기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는 순간부터 어른이 된다. 그러지 못하는 인간은 영원히 애완동물이다(37).” 애완 인간에 뜨끔해하면서도 몸 사리며 조심하라고 말하지 않아 좋았다. 나이 핑계나 엄살 그만 부리고 그의 청년 정신에 물들자.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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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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