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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여름의 빌라
글쓴이
백수린 저
문학동네
평균
별점8.6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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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초반에 그녀는 계단에서 헛발을 디뎌 굴러떨어질 것만 같은 두려움에 자주 휩싸였고 또 그만큼 자주 계단 앞에 걸어가는 사람을 그녀가 밀어 넘어뜨릴 것만 같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 폭설, 126p



 



그럼에도 이런 겨울 오후에, 각설탕을 사탕처럼 입안에서 굴리면서 아무짝에 쓸모없는 각설탕 탑을 쌓는 일에 아이처럼 열중하는 늙은 남자의 정수리 위로 부드러운 햇살이 어른거리는 걸 보고 있노라면 할머니는 삶에 대한 갈망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또다시 차오르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 199p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습게도 느닷없이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들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주는 즐거움. 계획이 어그러진 순간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기쁨. 다 잃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한여름의 유성처럼 떨어져내리던 행복의 찰나들. 그리고 할머니는 일어나서 브뤼니에 씨와 함께 탑 위에 각설탕 하나를 더 쌓았다. 하나를 더. 또 하나를 더. 그러다 탑이 무너질 떄까지. 각설탕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할머니와 브뤼니에 씨가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릴 때까지. / 201p



 





 



하고 싶은 말을 분명히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고 닿고 싶은 마음의 크기와 그 모양이 단 1%라도 훼손되지 않고 그쪽으로 그대로 온전히 옮겨갈 수 있도록. 전하고 싶은 그것이 사랑이라면 그 바람은 더더욱 간절했다. 기대와는 정반대로 내 마음이 전혀 다른 색깔로 닿는다거나 아예 닿지도 않고 튕겨져 나온 일이 더 많았지만. 그래서 요즘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말과 글로 분명히 담아내는 사람들이 부럽다. 당신이 하는 말이 분명하게 나에게 들어올 때면 나 역시 그 힘을 받아 정확하고 솔직한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절로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백수린 작가가 <여름의 빌라>에서 하고 싶은 말은 명확했던 것 같다. 8개의 단편은 모두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탄생했지만 결국 작가가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같은 선상에 놓여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목도하고 있듯이 이해는 오해로, 사랑은 혐오로 너무 쉽게 상해버리고, 그런 생각들을 하면 어둡고 차가운 방에 홀로 남겨진 듯 슬프고 또 무서워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살기 위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이해와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고, 이 소설들 역시 그런 믿음 속에서 썼을 것이다. 나에게는 성급한 판단을 유보한 채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직시하고 찬찬히 기록하는 것이 사랑의 방식이므로.



/ 작가의 말




 



책에는 완벽하게 아름다웠던 관계가 속절없이 망가지거나, 이미 망가져버린 관계를 뒤늦게 마주하기도 하고, 관계로 인해 '내'가 망가지기도 하는 등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와 그 결이 조금 비슷했던 것 같기도 하다.) 책을 덮고 보니 특이하게 느껴졌던 점은 망가짐의 끝을 마주하는 인물들의 마음이 마냥 '슬픔'으로만 가득차지는 않았고, 그래서 그 인물이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여주는 결말 역시 '그리움'만으로 남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황예인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끝나버린 인간관계를 두고 회피"하는 것이 이토록 쉬운 이 시대에서, 인간관계에서의 단절과 이별이 주는 고통이 "드넓었던 나의 세계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순식간에 줄어들어버리는 것"과 같을지라도, 책 속의 인물들은 거기서 머물지 않고 마치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는 듯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가고자 하는 결연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공교롭게도 책을 읽는 동안의 나는 소설 속 인물처럼 관계로 인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겪고 있던 와중이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은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되기는커녕 눈덩이처럼 부풀어 올라 나를 무너지게 했다. 마냥 슬펐다기보다, '이게 뭔데 나를 무너지기 해."라는 절망이 더 힘들었다. 경험을 통해 깨우치고 성장하는 것이 인간이지만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 앞에서 당장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까진 안됐었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피하거나 안주하는 대신 슬픔에서 잠시 머물다 끝내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바람이자 분투라는 것. 그 여름 시끌벅적했던 나의 고군분투 속에서 백수린의 소설은 스스로의 힘만으로 부족했던 위로와 용기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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