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보요 술꾼이었다

정은정공식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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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18.6.26
마이쩡은 계속 배가 아프다고 한다. 기숙사 음식이 거친 편이라며. 그건 나 닮지 말지. 쌀밥에 미역국, 계란찜으로 밥상을 차렸다. 나 먹자고 상추 겉절이도 잔뜩 무쳤다.
아버지가 상추를 한 박스 손질해서 오셨다. 공공으로 분양 받은 텃밭을 거의 혼자 맡아서 하시는 것 같다. 새까맣게 '끄슬러서' 오셨다. 노인정 할머니들께는 싸움 나지 않게 일일이 120장을 세어서 나눠주시고 그 중에서 골라오셨다.
아니, 농사 짓지 말라고 대도시에 사시라 했더니 이게 어찌된 일이여.
흙 묻은 상추는 씻기도 어려워 줄기 윗순을 잡아 바짝바짝 끊어왔다며 잘 씻어서 먹으면 된다고. 꼭 고기를 몇처름 얹어 먹어라. 에미야. 삼겹살 먹으면 난 설사하는데 . 된살 위주로 얹어 먹어. 엄마 닮아서 그렇다. 비계처름 비어내 버리고. 첨부터 된살만 달라고 해서 먹어.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지, 매일 그렇게 토깽이처럼 먹으면 못 써.
아버지, 밖에선 고기여서 집에서라도 이렇게 먹으려고 하는거예요. 잘 먹고 돌아다녀요.
글 쓰기 고되고 돌아다니기 고되면 못하겠다 해라. 몸 아프면서까지는 하지말으. 너무 꺼실해졌어.
현관에서 신발도 안 벗고 그냥 가신다는 걸 잡아서 참외 깎아 드리고, 용돈 대충 찔러 드렸다. 큰언니네서 삼겹살 드시고 그래도 집에서 쉬고 있다니 얼굴이나 보고 간다며 오셨다. 아마 피곤을 뚫고 건너와서 고기 몇처름 얹어 먹길 기다리셨을 텐데 그 소원을 알고도 못 들어드렸다.
"농민으로 사시다 대도시에 나와 노동자로 사셨어요. 결국 다시 농민이 되셨지만. 학교 공부가 길지 않으신 아버지가 읽으셔서 이해하지 못하면 딸의 첫 책인데 많이 속상하실 것 같아서요. 아버지가 이해하 실 수 있도록 썼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다 시더라고요. 그럼 됐다고 생각했어요."
대충 그런 말을 흘리던 토요일 오후에 아버지 상추 두 박스 들고 오셨다가 그냥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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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