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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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18.8.19
검사내전
- 글쓴이
- 김웅 저
부키
현직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가 쓴 [개인주의자 선언]과 [판사유감]을 읽고 나니, 이번에는 현직 부장검사의 책이 손에 들리게 되었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현직 판사의 글이 전혀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게 읽힌다는 점에 놀라게 되었는데, 이제는 현직 검사의 책이라니. 다음에는 변호사의 책을 읽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법연수원 성적으로는 단연 판사가 검사보다 뛰어나겠지만, 이 책 [검사내전]을 통해 만나게 되는 검사를 직업으로 가진 저자의 글은 얼마전에 읽었던 현직 판사의 글에 비해 상당히 인상적이다. 전에 읽었던 책을 떠올리자면, 김 훈의 [라면을 끓이며]가 떠오를 정도로 치밀하고 탁월한 묘사와 표현은 읽는 내내 밑줄을 치게 만든다. ‘필사라도 해서 이런 표현을 내 것으로만 만들 수 있다면’ 하는 바램이 들 정도로.
전에 상영되었던 영화 [더 킹]에서 나오는 검사들의 힘(?)과 ‘가오’는 온데간데 없고, 그저 [생활형 검사]의 사람과 세상 공부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소박한 직업인으로서의 검사를 재미있게 소개한다. 4대 권력기관에 속하는 검찰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을 깨는 일종의 폭로(?)일지도 모르는 글에서 저자의 인간적인 품격과 소신이 느껴진다. 저자에 따르면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검사의 모습과 현실 사이에는 ‘항공모함 서너 개는 교행할 수 있을’ 만한 간격이 있다고 한다. 그런 검사들의 실제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일독의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법의 수호자로서, 범죄를 단죄하는 심판자로서의 직업적 소명을 가지면서도 사람에 대한 애정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저자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진하게 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는 철학이 몸에 밴 까닭일까. 아니면 범죄로부터 정신적 물질적 신체적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모습에 동정과 연민을 느끼게 되어서일까.
저자는 검사라는 직업을 통해 많은 사건을 접하면서 특히 사기공화국이 된 우리나라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사기 피해자 뿐 아니라 죄를 짓게 된 사람들의 사연과 이야기들도 풀어 나간다. 사기를 저질러서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비해 재수(?)없이 걸려서 받는 법적 처벌이 크지 않다는 가성비의 논리가 사기범이 범람하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내용에서는 분노를 넘어 허탈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은 검사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느끼게 된 범죄의 단면과 속성을 자세히 설명한다. 국민들이 어떤 범죄에 쉽게 노출되는지를 통계적 숫자를 통해 알려주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심리와 범행동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독자들에게 그것과 연관되는 방어기제를 제공한다. 법을 집행하는 일의 특성상 범죄자와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에 있겠지만, 중립적인 관점에서 범죄자의 모습과 삶, 그리고 범죄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동시에 지켜보면서 느끼는 인간적인 고뇌를 엿보게 된다. 휴머니스트라고 해야할까? 이런 고민의 흔적에서 냉철한 이성과 판단으로 단죄하는 검찰의 모습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면서 얻게 되는 압박감과 고민을 공감하게 된다.
검사의 사생활과 검찰청 내부에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는 현실 속의 검사의 모습을 독자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재미를 자아낸다. 나름 성실하지만 일만 하는 것을 불신하고 늘 게으른 것을 동경한다는 저자 김 웅. 저자는 고백하기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없지만 싫어하는 것은 명확해서 [떼로 하는 것]은 거의 다 싫어한다면서 밥도 구내식당에서 혼자, 술도 혼술, 등산도 혼자한다는 일종의 ‘독고다이(?)’체질인 듯 하다. 그런 성향의 검사가 폐쇄적이면서도 위계질서가 명확한 검찰조직에서 좌충우돌하며 겪게 된 체험기를 들려주면서, 자신이 이룬 검찰 조직에서 대형 사고(?)를 친 전설적인 일화도 소개한다. 성장과정에서의 일화, 검찰이라는 조직내에서 생긴 에피소드는 읽는 내내 웃음과 공감을 동시에 얻게 되는 재미있는 대목들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법의 본질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검찰의 일이 많다고 하지만 결국 우리 사법 제도의 핵심이자 대들보는 법원이라고 단정한다. 아무리 큰 보름달이라도 흐린 해보다 밝을 수는 없다면서, 검찰의 업무가 형사 사건에 국한된다면 법원은 민사, 형사, 행정, 특허, 가사, 소년 사건 등을 모두 담당한다는 것이다. 법원에 대한 존중과 그 지위를 인정하는 것 같았지만,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 형님이 먼저 본을 보여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우리나라 사법 제도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법원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며 사법 제도 개혁의 핵심은 법원의 개혁이라 강조한다. 대들보 썩어 가는데 마루만 바꾼다고 새 집이 되는 건 아니라면서.
법원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한 이유로 법원의 순혈주의와 무오주의를 꼽으면서, 특히 우리나라 재벌의 횡포가 이렇게 극에 달하게 된 데에는 법조계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최근 10여년 동안 10대 재벌 그룹의 총수 중 7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실형을 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모두 집행유예로 나왔고, 더욱 놀라운 것은 재벌들 모두 법원에 가기 전에는 대부분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중병이 들었는데, 재판이 끝난 후 집행유예가 선고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멀쩡해졌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전에 상영된 영화 [내부자들]에서 휠체어 탄 재벌 총수의 모습이 떠오르게 된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법원은 앉은뱅이도 일으켜 세운 예수님과 동급이라고 돌직구를 날린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국민들 사이에서 의심이나 확증이 아닌, 당연한 것으로 체념의 단계까지 이르면 그 사회는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공정하지 않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는 반칙과 편법이 무언가를 이루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고, 강자만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정글과도 같은 사회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사회는 대중의 분노를 견디지 못할 것이고, 결국 그 사회는 위태롭고 존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저자 김웅 검사의 견해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정치적 신조를 국민앞에 약속하지 않았나 싶다. 중요한 가치이자 건전한 사회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열심히 밑줄을 친 이유는 공감하는 대목만이 아니라, 나중에 꼭 한번 참고해 써볼만한 기발한 표현과 비유, 적절한 묘사가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교본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유려한 문장들이 매우 많다. 표현의 미학을 넘어 묵직한 임팩트가 실린 저자의 글은 공감과 재미,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검사에 대한 편견과 무지를 걷어버리게 되고,생각해 볼만한 현실 속의 주제에 대한 비평적 시선을 갖게 해주며, 참신한 표현에 미소지으며 저자의 가치관에 수긍하게 되는 의미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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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