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하루
- 작성일
- 2011.2.8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 글쓴이
- 서진 저
푸른숲
사라 스튜어트의 동화책 <Library>는 황새가 아이를 물어다 준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우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하루 24시간을 책과 지내는 아이가 된다. 방안이 온통 책으로 쌓여서 발디딜 틈도 없었지만 엘리자베스는 행복했다. 책과 함께 자라나는 아이가 어느새 여인이 되고 남들 다하는 데이트에도 별 관심이 없이 책사랑에 한평생을 지내다가 늙어 죽음이 가까워오는 시점에 도서관을 지어 자신의 책을 기증하는 그런 동화이다.
자칭 북원더러라고 하는 작가 서진의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를 읽자니 사라 스튜어트의 수채화같은 동화가, 언젠가 한번쯤 스쳐갔을 자신의 책으로 만들어진 도서관이 생각이 났다. 서진은 뉴욕의 맨하탄에 위치한 서점가를 방랑하며 자신의 소설 <도서관을 태우다>를 쓰고자 한다. 소설의 제목과 다르게 그의 행동은 상반적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꽤나 매혹적인 방랑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수첩에 서점여행의 여정을 정리하며 맨하탄의 51개 서점에 대한 정보를 늘어놓는다. 서점의 위치, 주소, 사진, 서점 주인과의 간단한 대화등, 그리고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인 Only three books (if books in the world will vanish)에 대한 만남을 가진 서점가 사람들의 북셀렉팅이 등장한다. 환경이 다른 사람들의 북셀렉팅은 큰 공감을 형성하기에는 힘든 구석이 있었지만 다양한 책세상에 참신한 생각으로도 보인다. 읽는 자에게도 던지는 질문인지라 책을 읽는 내내 3권의 남기고 싶은 책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도 해봤다.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선정하지 못했다. 읽고 싶은 책들이 세상에 널려있고 열독한다 하더라도 다 읽지 못할 그런 책들인데 3권만 남기기에는 억울한 기분이 들어서일까.
여행서같았는데 제니스라는 미스테리한 여성이 등장하면서 서점가 방랑기와 픽션의 세계가 동시에 접목된다. 작가의 상상속 스토리텔링이 뉴욕이라는 공간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며 역사성을 지닌 도시의 파괴에 남아날 재간이 없었던 고서들의 보금자리였던 고대도서관의 이미지도 괜시리 투영된다. 물론 나만의 상상이다.
작가가 만난 사람들과의 인터뷰와 제니스와의 깊어가는 대화들은 웬지 정서적인 면에서 공유하기 힘들었다. 영어식 사고로 정리된 문장들에 직접 읽어보지 못한 책들과의 공감은 아무래도 무리수이지 싶다. 가벼움이 대세인 듯 작가의 상상속 체험은 그렇게 진행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사 주신 세계문학전집, 세계위인전집, 세계백과사전류는 내게 학교 다니는 일외에도 책을 읽고 책과 뒹굴고 책을 안고 잘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결같이 종이책과 함께 살아온 세대였고 지금도 종이책이 좋다. 전자북의 위력은 내게는 머나먼 세상 일인 줄 알았는데 아이들의 학교 시스템이 모두 전자북의 기능으로 돌아서고 종이로 하는 일은 컴퓨터에서 출력하는 일과 복사하는 일이 전부가 된 세대와 부딪히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페이지를 넘기는 일보다 손가락 하나로 터치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이다. 가지고 다니기도 불편한 사전을 가방과 보조가방에 넣고 다니던 세대였는데 이제는 전자사전이나 프로그래밍된 브리태니커, 콜린즈영영사전등이 손가방 하나에 가볍게 들어간다. 사고의 틀까지 전자화되고 말이 먹히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한 가정에서도 이러한데 조직내 세대간 격차는 실로 놀라울 것이 당연하다.
어쨋든 나는 종이책이 사라지는데 반대한다. 오프라인 서점들의 수가 줄어들고 자본의 힘을 쓰지 못하는 영세서점들의 몰락이 안타깝지만 종이냄새나는 책들은 영원히 살아남아야 한다. 아마도 앞으로의 대세는 전자북이 될 것을 의심치 않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가슴을 설레이며 한장 한장 페이지 넘기는 유희행위를 어찌 포기하란 말인가. 서점가를 방랑하기 좋아하는 나도 북원더러에 가깝다. 사는 일보다 보는 일이 더 흥겨운 나는 분명 북원더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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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