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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2 (완결개정판)
글쓴이
진중권 저
휴머니스트
평균
별점9 (21)
하루

고등학교 미술시간은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입시준비로 여념이 없는 나날이었고 예체능 시간마저 사라지려는 시기에 일주일에 딱 두 시간 주어진 그 과목이 좋았던 이유는 내 운동화나 내 손가락을 사물삼아 스케치하는 일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따금 미술이론 강의를 준비하셨던 점잖은 미술 선생님, 그 분의 인상은 지금도 기억속에 남아있다. 운동장을 향해 열린 창문을 통해서 들어온 빛이 교탁위에 올려진 정물에 비춰진 밝고 어두운 부분에 대해서 내 도화지를 손질해주셨던 분이셨고 가끔씩 음악을 덧붙여 그림도 설명해 주셨는데 그게 자세히 뭔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런 강의를 듣는 것이 좋기만 했다. 왜 이해하지도 공감도 안되지만 그런 이론이 있다는 사실에, 그런 안목을 길러가는 과정이 점수와 상관없이 반가웠던 것이다.
마네, 모네는 인상파 화가라는데 그림그리면서 인상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었나, 그게 아니고 빛의 흐름에 따라 고정된 사물 형태의 색상에 변화를 주는 화풍이라는 걸, 세잔느의 생 빅트와르산은 삼각형의 모습으로 기억에 남고, 마티스는 야수파라는데 그가 야수같은 그림을 그린 걸까, 그런 의문점도 가졌었다. 피카소는 왜 추상주의라고 하는지, 아 이건 그림보면 바로 추상적이잖아하고 느끼니깐, 그럼 추상이란 말은 무엇인지..등등 의문투성이 전문용어와 해독할 수 없는 화풍에 그저 주입식으로 외워야만 했던 그런 일들도 있었다. 이는 미술책에 나오는 그림을 통해서 잠깐 동안 가져본 웃지 못할 학습의 방법이었지만 그게 그렇게 기억이 난다.
개인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나의 경우는 언어적 접근을 통해서 본질의 기본을 이해하는 습관이 있다. 이도 자주 활용하는 연습을 해봐야 추측이 가능하므로 오차 범위를 좁히려면 오류를 무릎쓰고라도 충분히 시도해보아야 한다. 하이데거가 말하길, Sich ins Werk setzen (지히 인스 베르크 제첸). 한 마디로 아주 간단한 말이다. 작품안에 그 자체가 있다라는 말이다. 그걸 있어 보이게 옮기다 보니 이해하기 참 어려운 말이 되버렸다. 이렇게...."예술의 본질은 존재의 진리가 작품속에 정립되는데에 있다."

미술은 시각예술이지만 눈이 있다고 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데 그 맹점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이해가 쉬워진다는 말은 그래서 진리이다. 미술사학의 세계를 역사적인 흐름으로, 미학적 관점이 어떻게 수학적인 이성과 철학적인 논리로 정립되어가는지를 완벽한 재미와 양질의 지식으로 잘 포장해서 독자에게 던져주는 <미학 오디세이> 2권은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통해서 철저히 계산되고 이성적으로 확고한 철학에 기반을 둔 그의 메시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대상의 고정된 색을 타파하고 그 틀에서 해방을 주장한 마티스는 인상주의와 고전주의의 모호한 시점에서 방랑하던 세잔느와 다르게 여인의 콧날에 푸른색을 칠함으로써 색의 마술사로 등극했다. 그가 살던 시대는 그의 방식을 인간의 시점이 아닌 일종의 이탈이라 여기곤  야수적인 이미지를 갖춘 야수파라 막 불렀던 것이다. 그러던 그 시기를 지나 피카소라는 화가는 대상의 색은 말할 것도 없이 형태마저 변형시키고 해방시켜 본래 자리에 있어야 할 눈코입이 한결같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 가 달려있는 이른바 입체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는 지금 봐도 피카소를 잘 모른다. 그냥 다들 그렇게 본다고 하니깐 따라하는 것이다. 뒤샹의 변기처럼...

노르웨이 오슬로에는 뭉크 미술관이 있다.
그 곳에 가면 뭉크의 우울한 정신적 심리가 가득한 그림들이 유리창에 갇혀 찾아온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호앙 미로의 마요카 해안사진과 같은 뭉크 자신을 찍은 다양한 사진들이 많았는데 그 이유를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Objet trouvé (오브제 트루베 ), 발견된 사물이라는 의미로 사진속의 대상보기를 이르는 말이다. 그 안에서 나는 어떤 미적인 것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단지 그 안에 있는 사물만을 포착한 묘한 느낌과 자신의 벌거벗은 미운 몸뚱아리까지 이걸 작품화한 뭉크의 정신상태가 정말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역시 한 가지 진리는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만큼 이해한다이다.
사람들은 바흐를 좋아한다고 곧잘 말한다. 바흐 음악이 우리에게 친근한 걸까?
나에게 바흐를 설명하라고 하라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아직 미비한 상태라 주저하는 중이다. 왜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 부르는지 이도 참 학습과정이 우습기 그지 없다. 우선 바흐 사진을 보면 짧은 단발의 가발이 생각나서 남자같고 바흐라고 발음하는 것이 딱딱하고 엄격하게 느껴져서 아버지라 한다고 외웠다. 이런...
그럼 헨델은 왜 음악의 어머니일까? 같은 방식으로 외우면 그 문제의 정답은 쉽게 얻을 수 있다. 구불거리는 긴 가발과 헨델하면 부드럽게 발음되는 그 말도 안되는 단순한 방식이 나에게 정답을 주고 괜찮은 점수를 주었다. 그렇게 학습하면서 음악 한번 안들어보고 외우느라 젊은 시절 다 보내고 말았다. 너무 아까운 시간들이다.
바흐 음악은 엄격한 형식에 입각한다. 하나의 동기가 있고 그 동기를 기준으로 다른 동기가 덧붙여진다. 어디로 나아갈 지 모르게 움직이고 발전하는 이상한 음률이 대위법이라는 서로가 반대되는 형식을 통해서 상승하고 끝없이 펼쳐지는 세계, 그것이 그의 푸가가 되고 캐논이 된다. 쉽게 얘기하면 밀가루 반죽에 전혀 내용이 다른 쌀가루 반죽을 붙였는데 맛좋은 케잌이 되는 것이다. 그게 우리 귀에 무한히 상승하는 음률의 캐논으로 들린다.
그럼 헨델은 ?
음악을 들어보시라. 그의 아름답고 현란하고 화려한 <수상 음악>을... 그럼 해결된다.

칸딘스키의 그림을 보면 음악이 들린다고 하는데 무슨 이런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색채, 형태, 주제등을 완전히 배제한 현대미술의 세계는 엄청난 감각과 개인의 지식을 요구한다. 그림을 통해서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던 고전주의 화풍은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그림만 봐도 그 속에 담긴 뜻을 추측할 수 있었다. 이는 글을 몰랐던 시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한 방법이었을까 추측해 본다. 고대의 암포라처럼말이다. 현대의 작품들은 그 색과 형태가 가진 아름다움으로만 채워진다. 칸딘스키의 알다가도 모를 형태를 보면 그 미적 정보가 음악을 가르킨다고 하는데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나로서는 와인에 오징어포를 안주삼아 먹는 기분이 든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그 동안 만났던 작품들이 이 책을 읽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니 그렇게 보고 지나쳤던 수많은 작품들을 이제서야 조금씩 알아가고 설명할 수 없는 그 느낌을 내게 안겨주었다. 끝없이 샘솟는 미학의 원천에 한 걸음 뗀 셈이니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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