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학

하루
- 작성일
- 2012.4.7
옥수수와 나
- 글쓴이
- 김경욱 외 6명
문학사상
언젠가 뉴욕에서 공연보는 재미에 빠졌다고 멘션을 올린 트위터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주인은 다름 아닌 김 영하였다. SNS의 세계란 참으로 명료하면서 몽환적이란 생각을 했던 것도 바로 그 시점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한날한시 경쾌하게 쏟아낼 수 있다는 데 기술적인 명료함이 돋보이고 나와 다른 타인의 일상을 그림그리듯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몽환적이었다. 지루한 일상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찌질하게 뒹굴다가 목욕탕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밤별이나마 올려다보는 여유로 감지덕지 살아가는 삶인데 남들은 저리 사는구나 싶은 동경과 부러움이 터치하나로 교차하는 세상이다. 셀러브리티에 버금가는 인사들도 많은데 하필 김 영하를 언급한 이유는 단 하나, 그가 2012년 제36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의 일상을 잠시 들여다보며 영하작가가 그 곳에서 작품구상을 하겠구나 생각도 했었다. 독자는 작가에 대해 그런 상상을 하게 마련아닌가. 그렇게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는데 어느 날 대중의 뇌리속에 박혀있던 눈을 내리깐 그의 얼굴사진이 보였다. 왼편에 <옥수수와 나>라는 제목과 함께 그가 돌아왔다.
최근 한국소설에 목말라 있던 터라 부조리한 구성이나 밑도 끝도 없는 정신세계만 아니라면 어떤 소설이든 소화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이처럼 따끈따끈한 신간을 받아보게 되는 행운을 얻다니.... 블로그생활 밑천이 3년여 되다보니 내 글을 그나마 이해해주는(?) 애틋한 친구님이 새우깡과 함께 보내준 눈물겨운 책이다. 확실하게 읽고 재미있게 글을 정리해봐야지 하는 심정으로 꼼꼼이 읽어 보았다.
그러니까 내가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처음 만난 시기는 1991년이었다. 조 성기님의 <우리 시대의 소설가>를 시작으로 해마다 작품집을 사서 읽고 책장에 진열해 놓는 걸 즐겨했다. 2004년 김 훈님의 <화장>을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김 훈님의 이 작품, 기막혔다-나의 매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읽기는 끝이 났다.
작년 수상작까지도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올해 눈길을 끈 이유는 그간 이상문학상의 본질이 독자의 감상력을 탐하는 길이 아니었는데 올해는 그 심사를 고스란히 드러낸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김 영하라는 네임밸류가 그렇고 그가 끄집어낸 글의 소재가 그렇다.
작가 현실을 대담하게 건드리는 작법, 제임스 조이스의 서사 <율리시즈>에서 농염한 녹색마녀-고전영화속 배우 실바노 망가노의 초록빛이 생각나서-의 마력적인 쾌락에 허우적대는 율리시즈처럼 자신의 허상을 닭의 먹잇감인 옥수수로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은 작가다. 작가의 현실은 원고독촉의 압박과 끝없는 상상력을 생산해야 하는 의무감에 사로잡혀있다. 나는 옥수수이고 나를 쫒는 그들은 닭이다. 날카로운 부리로 옥수수인 나를 찍어 삼키면 끝나고 마는 숙명적 존재! 장편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시공의 이동이 단편안에서도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구성력과 현실인지 허상인지 구별이 안되는 공간,뉴욕에 있는 출판사 사장의 아파트에서의 몇날며칠 행해지는 짜릿한 밀애는 질펀한 글쓰기의 원동력이 된다. 물질이 최고의 가치인 사회분위기속에서 글생산의 에너지는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육체적 쾌락에서 나오고 거짓된 신뢰는 착각과 오인의 결과를 가져온다. 소설을 읽어보면 주변인물들과의 관계가 나오는데 이는 앞글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대상 수상작을 필두로 김 영하 작가의 단편들이 두어편 더 소개가 되고 수상작에 대한 논평과 해설이 꽤 묵직하게 페이지 할애를 하고 있다. 세밀한 설명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분명 도움은 되지만 독자는 독자의 방식대로 읽기를 하면 될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든 자유아니겠는가.
대상 작품외에 일곱편의 우수작들을 읽는 재미도 놓칠 수 없는 소설읽기의 묘미이다. 함 정임의 <저녁식사가 끝난 뒤>, 김 경욱의 <스프레이>, 하 성란의 <오후, 가로지르다>,김 숨의 <국수>,조 혜진의 <유리>,최 재훈의 <미루의 초상화>, 조 현의 <그 순간 너와 나는>-이 중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하고 벌에 쏘인 듯 강렬함을 안겨준 작품은 김 경욱님의 <스프레이>였다. 일전에 그의 소설 <위험한 독서>의 리뷰를 읽고 반드시 읽어야겠다고 속으로 무척 안달을 냈던 적이 있는데 <스프레이>를 읽고나서 이제는 그의 작품을 모조리 찾아봐야겠다는 욕망이 앞선다.
김 숨님의 <국수> 또한 아름답고 섬세한 묘사가 돋보였지만 개인적인 아쉬움이랄까, 왜 이런 소재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지..... 우수작들의 대부분은 다양한 관계의 부재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소통과 관계가 화두인 시대에 연결고리를 찾는 인간의 몸놀림에 갈증이 인다. 이 목마름을 해소하는 길은 무얼까, 한 권의 책, 그래서 오늘도 다른 날처럼 한 줄의 글을 읽고 한 페이지나마 어렵사리 넘기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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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