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낭만푸우
  1.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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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군중은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날이면 날마다 보병들이 간선 도로를 따라 의기양양하게 행진을 했고, 모두들 기뻐 날뛰었다. 전쟁에서 돌아오는 젊은이들은 순수하고 용감했고, 이빨이 건실하고 뺨에 장밋빛이 감돌았으며, 이 땅의 젊은 아가씨들은 숫처녀로 얼굴과 몸매가 모두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무렵 이 대도시에서는 많은 모험이 일어났고, 그중에서 몇 가지 이야기를어쩌면 한 가지 이야기일는지도 모른다다음에 적으려고 한다. (288)


1


몇 분이 지난 뒤 푸른색 실크 잠옷을 입은 필립 딘은 문을 열었고, 두 사람은 열광적이면서도 어색하게 서로 인사를 나눴다. 두 사람 모두 스물네 살 정도 나이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해에 함게 예일 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통점은 여기에서 끝이 난다. 얇은 잠옷 차림의 딘은 금발에다 얼굴이 불그스레하고 억세 보였다. 어디를 보나 그에게서는 건강함과 신체적 편안함이 흘러넘쳤다. 자주 미소를 지을 때마다 커다란 이빨이 유난히 드러났다. (290)


한때는 멋들어진 넥타이였지만 지금은 빛이 바랬으며 엄지손가락 자국으로 주름이 잡혀 있었다. 넥타이는 와이셔츠 깃의 들쭉날쭉한 단춧구멍도 제대로 가릴 수 없었다. 불과 삼 년 전만 하더라도 4학년 학생 중 가장 옷을 잘 입는 베스트드레서를 뽑는 선거에서 우연히 한 표를 얻었던 일이 생각이 났지만 이제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291)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하네. 만약 돈이 없다면 일을 해야 하고 여자를 멀리해야 하지.”


말하기는 수비지.” 고든이 눈을 가늘게 뜨며 대꾸했다. “자넨 이 세상의 돈을 모두 갖고 있으니까 말일세.”


그렇지 않네. 내 가족은 내가 쓰는 돈을 하나하나 감시한다네. 조금 여유가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낭비하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297)


자네 주위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분위기가 감돌고 있어. 말하자면 악의 분위기라고나 할까.”


걱정과 가난과 잠 못 이룬 밤의 분위기라네.” 고든이 조금 도전적인 태도로 대꾸했다. (297)


밖으로 나가려고 몸을 돌리기에 앞서 잠깐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고, 두 사람은 똑같이 무엇인가를 느끼고는 당황해서 눈길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 순간 갑자기 상대방을 증오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300)


3


같은 날 밤 9시쯤 6번 가에 있는 싸구려 식당에서 두 젊은이가 나왔다. 다같이 못생긴 데다가 영양 부족 상태였고, 가장 낮은 지능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삶에 빛깔을 주는 동물적 활기조차 지니고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최근만 해도 낯선 이국의 더러운 도시에서 이에 뜯기고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돈도 없었고 친구도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파도치는 대로 밀려다니는 부목처럼 살아왔고, 죽을 때까지도 아마 부목처럼 떠밀려 다니며 살 것이다. (306-307)


“…… 이 전쟁으로 당신들은 무슨 이득을 보았단 말입니까?” 사내가 소리치고 있었다. “,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주위를! 당신들은 무자입니까? 돈을 많이 벌었습니까? 천만의 말씀이지요. 살아서 두 다리 멀쩡하게 돌아올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운이 좋았지요. 돌아왔을 때 마누라가 돈을 주고 징집을 면한 놈과 눈이 맞아 도망친 꼴을 보지 않았다면 천만다행이지요! 그야말로 행운이란 말입니다. J. P. 모건과 존 D. 록펠러를 제외하고는 전쟁에서 눈곱만큼이라도 이득을 본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바로 이때 이 작은 유대인 사내의 연설은 적의에 찬 주먹 한 방이 수염 난 턱에 명중하고 그가 길바닥에 뒤로 나자빠지는 바람에 중단되었다.


이 빌어먹을 볼셰비키 자식 같으니라고!” 주먹을 날린 대장간 출신의 덩치 큰 병사가 소리쳤다. (310)


시민들은 하나같이 자기들도 방금 군에서 제대를 했다고 소리쳤는데, 그것이 마치 새로 생긴 스포츠와 모락 클럽의 입장권이나 되는 것처럼 떠들어댔다. (312)


4


미소를 짓는 동안 아까 느꼈던 노여움은 잠시 사라지고, 지그시 눈을 감으며 그녀는 깊숙이 기쁨의 숨을 들이마셨다. 두 팔을 옆구리로 내려서 몸매를 감싸고 있는 매끄러운 드레스를 살짝 만져보았다. 자신의 살결이 이렇게 부드럽게 느껴지고 두 팔이 이렇게 뽀얗게 느껴진 적이 일찍이 없었다.


나한테서는 향긋한 냄새가 나지.” 그녀는 그저 혼자 중얼거리고 나서 또 다른 생각을 해냈다. “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 (322-323)


그녀는 조금 지쳤고, 이제는 결혼하고 싶었다. 가득 쌓인 연애편지 뭉치며, 대여섯 장의 사진이며, 수많은 추억이며, 그녀가 느끼는 피로와 더불어 그녀는 다음에 고든을 만나면 두 사람의 관계를 새롭게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324)


5


아름다운 이디스의 파트너인 피터 히멜은 무안을 당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한번 핀잔을 받으면 상처를 받고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최근 두 달 동안 그는 이디스 브래딘과 속달로 편지를 주고받아 왔다. 속달 편지라는 한 가지 구실만으로도 감정을 전달하는 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입지가 확고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고작 키스 문제로 이디스가 왜 그런 태도를 보여야 했는지 그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업성ㅆ다. (334)


8


그저 떼거리 군중이지 뭐.” 헨리가 멍하니 대답했다. “군중이란 하나같이 소리를 지르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법이거든. (후략)” (352)


군인들은 하나같이 사회주의자들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나요?” 이디스가 오빠에게 물었다. “제 말은요, 그들은 오빠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그러는 건가요?”


헨리는 아이셰이드를 다시 착용하고 하품을 했다.


인류는 상당히 진화했지만 말이다.” 그가 건성으로 말했다. “우리들은 대부분 퇴화했지. 군인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미워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모르고 있거든. 집단행동에 익숙해져서 무엇인가 의사 표시 행위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모양이야. 그러다가 그저 우연히 우리에게 표적을 맞춘 거지. 오늘 밤 뉴욕 시 전역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있어. 너도 알겠지만 오늘이 오월제 날이잖니.” (352-353)


10


먼지가 떠 있는 빛과 커다란 가죽 의자의 너덜너덜한 조각에 눈이 멎은 지 삼십 초가 지났을까, 고든은 가까스로 옆 근처에 어떤 생명체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또 삼십 초 뒤 그는 이제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이 주얼 허드슨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로부터 삼십 분 뒤 그는 밖으로 나가 스포츠 용품점에서 리볼버 권총 한 자루를 샀다. 그러고 나서 택시를 타고 이스트 27번 도로에 있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화구를 올려놓은 테이블에 기대서서 관자놀이 바로 위에다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380)


 








피츠제럴드 단편선 1


F.스콧피츠제럴드 저/김욱동 역
민음사 | 2005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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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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