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라지꽃(Book)

책읽는낭만푸우
- 작성일
- 2023.5.28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 글쓴이
- 폴 오스터 저
열린책들
30대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작가 중 한 명이 폴 오스터였다.
이미 전생처럼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지만, 아주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서른에 발병해서 3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할 때, 내가 중심을 잃지 않게 해준 작가다.
의사는 나한테 더이상의 사회생활은 불가능하니 돈 많은 남자 만나서 유한 부인으로 살라는 말로, 사회적 사망 선고를 내렸다. 나는 세상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주는 불안감도 컸다. 죽음 혹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게릴라처럼 불쑥불쑥 일상생활에 엄습했다.
이런 건 겪어본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리 설명해줘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거라 자세한 설명이라는 게 무의미하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어느연유로인지 『달의 궁전』을 읽게 됐고, 그 이후로 폴 오스터의 작품들을 섭렵하게 됐다. 폴 오스터를 통해 소설을 읽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폴 오스터는 내게 은인이다. 내가 죽음의 시커먼 심연에 빠져 익사하지 않도록 해줬으니 그 또한 고마운 일이다.
아무튼 폴 오스터는 30대에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한 작가가 되었다. 얼마나 좋아했냐 하면 'Complete Works of Paul Auster'로 출간된 책들을 원서로 모두 소장하고 있을 정도다. 아마 폴 오스터를 아주 좋아하지 않는 독자라면 모를 수도 있는데, 폴 오스터는 애초에 시인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그 말인즉슨 폴 오스터의 시집도 있다는 의미인데, 그 시집 역시 원서로 소장하고 있다.
이 정도면 내가 이 작가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Talking to Strangers: Selected Essays, Prefaces, and Other Writings, 1967-2017』의 번역본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1967년부터 2017년 사이 폴 오스터가 쓴 산문들 중 선별한 글들을 모은 책인데, 이 선별 작업을 폴 오스터가 직접했다. 그러니깐 본인 스스로 어떤 기준에 의해서건 그 시기를 대표한다거나, 본인이 잘 썼다고 생각되는 글들을 고른 것이니, 어떤 식으로든 폴 오스터와 그의 작품을 가장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다.
흥미로운 점은 번역자가 네 명이나 된다는 것인데, 내 생각에는, 넷이서 나눠서 번역을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존에 여러 책에 수록된 각각의 글들의 번역자가 이 들이라는 의미인 것 같다. 즉, 이 책을 위해 따로 번역을 한 게 아니라, 이미 번역되었던 글들을 모아놓는 작업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부분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아예 이 참에 한 번역가가 공들여 번역을 했으면 어땠을까. 그렇지만 이건 또 이것대로 글들이 가진 시간의 퇴적을 느낄 수 있으니 꼭 나쁘지만은 않지만, 폴 오스터 정도의 작가라면, 그리고 한 출판사에서 지속적으로 책들을 출간한다면, 한 번역자에게 꾸준히 맡기는 게 최상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이미 한 번은 읽은 적이 있는 글들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다분히 소장욕 때문이다. 가령, 여기저기 흩어진 사진들을 인화해서 앨범에 담는 작업과 유사하달까. 흩어진 기억들을 하나의 유형물 안에 담아 놓는 작업. 그래서 더 이상 기억이 흩어지지 않도록, 행여 옅어진다면 다시 꺼내볼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라 생각했고, 그 자체만으로도 이 책을 구입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더해 이 책을 구입하면 폴 오스터의 사인이 들어간 머그잔을 준다. 비록 친필 사인은 아니라 해도, 나같은 독자에겐 나름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으니까(어쩌다 보니 이번 리뷰에선 '충분히' 혹은 '충분하다'는 표현을 많이 쓰게 된다. 그게 폴 오스터가 내게 지니는 의미다. '의미'란 단어도 참 많이 쓰게 된다. 이 역시 같은이유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30대엔 마치 아빠의 젊은 시절을 따라가듯 책을 읽었다면(실제로 폴 오스터는 우리 아빠와 동갑이다), 이제는 마치 내 예전 이야기처럼 읽게 된다. 그만큼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의미겠지.
개인적으로는 「타자기를 치켜세움」이 가장(여전히) 좋았다. 이 글은 단행본으로도 갖고 있는데, 어찌보면 가장 폴 오스터답지 않은 글이면서도(매우 낭만적이다!), 폴 오스터라는 사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1962년에 만들어진 타자기를 지인에게 중고로 사서 1974년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사용하는 사람이 바로 폴 오스터다(그런데 다른 한 편으론 역시 독일제품이 우수하다는 걸 입증하기도 한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고장나거나 망가지지 않았다는 거니까). 이렇게 한결같은 사람이기에, 그의 충성스러운 독자로 사는 일이 부끄럽지 않다. 그 점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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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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