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라지꽃(Book)

책읽는낭만푸우
- 작성일
- 2010.10.14
퀴즈쇼
- 글쓴이
- 김영하 저
문학동네
사실 이건 리뷰라기보다는 메모에 가깝다.
실은 리뷰를 쓰기 위해 몇몇 생각과 글들을 모아 놓은 건데,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이걸 다시 글로 만든다는 게 좀 '뻘쭘해졌다.'
하지만 뭐... 리뷰의 형식이라는 것도 다양할 수 있는 거니깐.
왜 이런 부분을 옮겨 적었는지, 그리고 왜 이런 단어들을 나열했는지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깐 어찌 보면 이건... 내가 내는 '퀴즈'인 셈이다. ^^
***
"요즘 그런 생각을 해. 인간이라는 그 어려운 퀴즈에 지쳐서 사람들은 퀴즈쇼를 보는 것 같아. 거긴 그래도 답이 있잖아."
"그런데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
"나도 마찬가지야. 누가 자기 자신을 알겠어?"
"자기 자신도 모르는 우리가 언제쯤 서로에 대해 알게 될까?"
"글쎄, 그게 과연 가능하긴 할까?"
도시인, 현대인, 젊음, 20대, 미래, 전망
퀴즈쇼
구보씨
사색, 관찰
세태 분석
무겁지 않게 유쾌하게
때론 직접적으로, 때론 간접적으로
"사람들이 왜 퀴즈쇼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음...... 지적 호기심 같은 거 아닐까요?"
그는 피고인의 청구를 기각하는 재판관처럼 엄숙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인간은 잔인한 존재입니다. 그들은 남이 죽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겁니다. 퀴즈쇼는 로마 시대의 검투 같은 겁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나와서 마음속으로 피를 흘리고, 사람들은 그걸 보며 안도하는 겁니다. 자기 대신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말이죠."
나도 맞장구를 쳤다. 사실 어른들은 우리 세대가 책도 안 읽고 무능하며 컴퓨터 게임만 한다는 식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그건 완전 착각이다. 정작 책도 안 읽고 무능하고 외국어도 못하면서 이렇다 할 취미도 없는 사람들은 그날 면접장에 앉아서 나를 내려다보면 면접관들이지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80년대에 태어나 컬러TV와 프로야구를 벗삼아 자랐고 풍요의 90년대에 학교를 다녔다. 대학생 때는 어학연수나 배낭여행을 다녀왔고 2002년 월드컵에 우리나라가 4강까지 올라가는 걸 목격했다. 우리는 외국인에게 주눅들어보지 않은, 다른 나라 광고판에서 우리나라 배우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첫 세대다. 역사상 그 어느 세대보다도 다양한 교육을 받았고 문화적으로 세련되었고 타고난 코스모폴리탄으로 자라났다.
도스가 윈도가 되고 보석글이 아래한글이 되고 유닉스 기반의 PC통신이 인터넷으로 발전해가는 것을 몸으로 겪었고 그 모든 운영체제 프로그램을 대부분 능숙하게 다룰 수가 있었다. 예전이라면 전문 사진사나 찍을 법한 사진도 우리는 몇십만원짜리 카메라로 척척 찍고 과거엔 방송국에서나 하던 동영상의 촬영과 편집도 간단하게 해치울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우리 윗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에서 자라났고 이전 세대에 비하자면 거의 슈퍼맨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후진국에서 태어나 개발도상국의 젊은이로 자랐고 선진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겐 직업이 없다. 이게 말이 돼?
"(전략) 세상은 죽이는 스터프들,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가득 차 있는데 왜 우리 주머니에는 그걸 살 돈이 없는 거야? 일 인당 국민소득 이만 달러라더니, 다 어디로 간 거야? 우리가 왜 이렇게 사는지 알아? 내 생각엔 우리가 너무 얌전해서 그래. 노땅들이 무서워하질 않잖아. 생각해봐. 386은 손에 화염병을 들고 있었다구. 겁 많은 노땅들이 얼마나 무서웠겠어. 우리를 무서워해야 일자리도 주고 월급도 올려주고 그러는 건데, 이놈의 대기업들은 채용은 안 하고 대학에 건물만 지어주고 앉아 있잖아. 누가 건물 필요하대?
"너무 지나친 기대에 대한 일종의 피로가 있는 것 같아. 어려서부터 너무 많은 기대를 받아왔잖아. 부모, 선생, 광고, 정치인 심지어 서태지까지 우리한테 '네 멋대로 해라'고, 원하는 걸 가지라고, 그렇게 부추겼잖아. 피아노 조금만 잘 치면 음악 하라고 하고, 글 좀 잘 쓰면 작가 되라고 하고, 영어 좀 잘하면 외교관 되라고 하고...... 언제나 온 세상이 회전목마처럼 돌아가면서 끊임없이 물었던 것 같아. 네가 원하는게 뭐냐고. 뭐든 하나만 잘하면 된다고. 그런데 그 '하나'를 잘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야? 결국 사람들을 자꾸 실망시키고, 그러다보니 언젠가부터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돼버린 것 같아. 그리구......"
"궁금한 게 있어. 너는 왜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말해? 사실은 다 책에서 본 것들이면서...... 아니야?"
"글쎄, 내가 잘못 봤을지도 모르지만, 너는 달팽이처럼, 지식이라는 딱딱한 껍데기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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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