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terature

책읽는낭만푸우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1.6.5
태어난 날과 죽은 날 중 어떤 게 더 중요할까. 누군가를 기억해야 한다면 태어난 날과 죽은 날 중 어느 쪽이어야 할까. 나는 묘비에 적힌 두 개의 날짜를 볼 때마다 그 질문을 떠올렸다. 뚱보 130과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형, 나는 죽은 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째서?”
“죽는 순간 한 사람의 인생이 완벽하게 마무리지어진 거잖아. 역사도 그때 완성되는 거고.”
“태어난 것도 역사지.”
“태어난 걸로는 역사가 이뤄지지 않죠. 죽어야 완성되니까.”
“생일을 기억하는 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전체적으로 기억하는 것 같지 않냐?”
“오늘이 1월 20일이라 쳐요. 오늘은 존 러스킨이 죽은 날이에요. 페데리꼬 펠리니가 태어난 날이기도 하고요. 어떤 게 더 중요해요?”
“페데리꼬 펠리니.”
“왜?”
“더 유명하잖아.”
“장난치지 말고요. 누군가 죽었다고 하면 귓가에서 웅장한 종소리 같은 게 들리는 것 같지 않아요?”
“아기 울음소리밖에 안 들리는데?”
“에잇, 그만해요.”
뚱보 130의 말을 생각해보았다. 누군가 죽었을 때 역사가 완성된다는 것은 맞는 말 같았다. 모든 진실은 죽음 후에 드러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래도 태어난 날을 기억하는 게 좋았다. 죽은 날의 기억은 슬픔일 뿐이었다. 하지만 태어난 날을 기억하면 슬픔과 기쁨이 한데 뒤섞이기 때문에 그런대로 참을 만했다. 묘지기행을 하다 보면 태어난 날은 적혀 있지만 죽은 날이 적혀 있지 않은 묘비를 볼 때가 있었다. 행방불명된 사람이거나 행방불명되었다가 뒤늦게 시체로 발견된 사람의 묘지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별은 그려져 있지만 십자가는 없는 묘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중혁 저 |
제목 때문에 책장 열기가 조금 두려웠어요. 좀비들이 출현하는 악몽을 꿀까봐서요. 겨우 펼친 이 책에서 제 선입견을 무너뜨리는 좀비들을 만났어요. 무섭기는커녕 안쓰러운 좀비들이라니.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죽음을 몸에 품고 있지요. 설혹 세포의 노화가 아주 더디게 진척되는 하이랜더 증후군에 걸렸다 하더라도 죽음만은 피할 수 없어요. 태어난 날과 죽은 날, 그 날의 경중을 가리는 일은 결국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따지는 것과 다름없는 일 아닐까요. 중요한 것은 그 두 날짜 사이를 긋는 선, 그가 살아온 날의 궤적이겠지요.
문학집배원 이혜경의 문장배달 - 01/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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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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