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 인문교양

지나고
- 작성일
- 2019.9.25
죽음의 에티켓
- 글쓴이
- 롤란트 슐츠 저
스노우폭스북스

그림은 점점 선명한 색을 잃는다. 마치 우리의 삶처럼.

목차만 봐도 죽음으로 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PART 1 어쩔 수 없이 우리 모두 죽어가고 있습니다
PART 2 마침내 죽음이 왔습니다
PART 3 살아남은 사람은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PART 4 모두를 위한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롤란트 슐츠는 2014년 독일 의회에서 벌어졌던 안락사 토론에 크게 매료되었다고 한다. 죽음에 대해 알고자 관련 책들을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전 알고 싶었습니다.
인간이 죽으면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죽음은 언제 시작되는가?
죽음의 길은 어떤 경과로 진행되는가?
그리고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p. 245)
『내 머릿속 원숭이 죽이기』의 대니 그레고리처럼 스스로 구한다.『죽음의 에티켓』에는 그 과정이 담겨 있다.

사망과의 민원 개방 시간이 끝날 때마다 호적부 공무원 O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시작합니다. 한 해의 모든 생년월일, 결혼, 사망 건들이 순차적으로 기입되고 번호대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O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를 취해 놓았을까요? 그녀는 웃음을 터트립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안 죽어요.” (p. 177)
공무원 O 역시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날은 오늘이나 내일이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멀게 생각한다. 두려움 때문이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평생 자신이 반드시 죽는다는 걸 부인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로 생각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말이죠.
사실 죽음은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그건 언제나 다른 사람의 죽음일 뿐, 단 한 번도 당신의 죽음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당신은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확실한 죽음을 보지 않고 회피해 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죽어간다는 사실 말입니다. (p. 12)
『죽음의 에티켓』은 멀리 있는 죽음을 가까이에 자리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이제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서두르지는 마세요.
그냥 생각해 보세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건 뭔가요?
나와 다른 이들에게 어떤 소원이 이뤄져야 할까요?
어떤 준비를 해야 하죠?
그래요.
하지만 이것만은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죽음 이전의 시간과 죽음 뒤의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요. (p. 37)

현재의 죽음은 비상시에는 인권도 포기합니다. 하지만 죽음은 오래된 것입니다. 애초부터 죽음은 모든 생명체에게 닥치는 운명입니다.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 신뢰하는 것은 죽음이 인간에게 불가피한 운명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느 편이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당신이 죽음을 한 번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선행 조치를 취하느냐는 자유입니다. 이건 당시느이 죽음이니까요.
그러나 당신 자신에게만 속한 죽음은 아닙니다. 나중에 장례업체 사람들이 당신 시신을 모시러 오면, 그들은 세 가지를 알고자 할 것입니다.
화장을 하나? 아니면 매장을 할 건가?
당신의 재나 시신을 어디에 묻을 것인가?
당신에게 특별한 소원이 있는가? (p. 40)
이에 대한 답변을 생각하다 보면 죽음이 목전에 있는 것 같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 하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불현듯 법의학자 유성호의『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삶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꼭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죽음으로 삶을 묻는 이유다. (p. 246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죽음의 에티켓』은 살아남은 사람의 입장에서도 죽음을 조명해 더욱 친숙하게 한다. ‘환자처분서’ 같은 직역에 간혹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점은 아쉽다. 뇌가 무게로 치면 3만 파운드로 나오는 등 오타도 많다. 그러나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롤란트 슐츠의 메시지는 오롯이 전하고 있는 듯하다. 웰빙에 이어 웰다잉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지 오래다. 이를 위해 자신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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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