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nbi
  1. 책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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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글쓴이
류시화 저
더숲
평균
별점8.9 (143)
eunbi

내 시는 음악도 아니고 악기도 아니다

내 시는 나 자신이 부서지면서 내는 소리
(242쪽)


 



모든 것 속에 당신이 있으나 

그 어떤 것도 당신과 같지 않네 (243쪽)


 



새들을 허공에 날아가게 하라

너의 새는 돌아올 것이니
(243~244쪽)


 



천 개의 욕망 모두 목숨을 걸 가치가 있으니

그중 많은 것을 이루었으나 난 여전히 더 많은 것을 원하네 (246쪽)







단 두 줄! 이행시입니다만 마음을 휘젓습니다. 촌철살인의 통찰이 담겨 있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위 시들은 19세기 인도 델리에서 활동한 시인 갈리브의 시라고 합니다. '모든 것 속에 당신이 있으나 / 그 어떤 것도 당신과 같지 않네'도 대단하지만 저는 '새들을 허공에 날아가게 하라 / 너의 새는 돌아올 것이니' 이 시에 순간 감탄사가 터졌습니다. 시공간적 이미지가 삶의 심상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불경의 한 구절 같습니다. 이렇게 책을 통해 마음을 휘젓는 감흥을 느낄 때, 그 감흥에서 알지 못했던 배움으로 이어질 때, 그 책의 작가를 다시 보게 됩니다. 



 



갈리브의 시는 류시화의 책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마지막 꼭지 글인 「우리가 찾는 것이 우리를 찾고 있다」 편에 나옵니다. 나날의 삶 속에서 표식을 발견하는 것이 영성(靈性)이라며,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표식들을 따라가면 언젠가는 해답에 이른다는 내용입니다. 예기치 않은 표식들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며, 가슴이 그 번갯불 같은 표식들과 접촉하도록 허락할 때 새로운 운명이 열린다고 거의 결론처럼 쓰여 있습니다. 번갯불까지는 아니지만 살아본 여정을 돌아보면 정말 그랬다는 공감의 확인이랄까,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문장 속에서 삶의 생각거리를 건져 올립니다. 어떤 특정 종교에 깃대지 않으면서도 묵중한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류시화 개인의 인생 여정이 때론 처연하기도 하지만, 그 고난의 자유로움에서 이런 깊이 있는 글이 나오나 봅니다. 마치 점층법처럼 뒤로 갈수록 울림이 커집니다. 실상 저는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저자의 경험이 깊게 우러난 좋은 글에서 나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는, 그런 의미가 담긴 수필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익은 글은 그냥 치기(稚氣)일 뿐입니다. 이 책은 그렇지 않다는 걸 지금 말하고 싶은 겁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205쪽)





삶이 우리를 밖으로부터 안으로 불러들이는 방법이 '상처'가 아닐까? 상처없이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고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으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영혼은 스스로 고난이 필요한 시기를 아는 듯하다. 우리의 삶이 상처보다 크다는 것도. (43쪽)







티베트어에 '센파'라는 단어가 있는데 대개 '집착'으로 번역을 하지만, 정확히는 물고기가 낚싯바늘에 걸리듯 '붙잡히는 것' 혹은 '생각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를 '가려운 곳을 긁는 고통'에 비유하는데요. 가려우면 긁게 되고, 긁을수록 더 가려워져서 어느 순간 가려움이 고통으로 변한다는 거지요. 이미 일어난 불행한 일이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두 번째 화살을 쏘는 거라는 비유도 멋집니다. 고통의 대부분은 실제의 사건 자체보다 그것에 대한 감정적 반응으로 더 커진다는 걸 실감하기 때문입니다. 



 



실은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 편으로 읽은 후기의 처음을 열거라 생각했었습니다. 살다 보니 '우리는 모든 계절을 품고 한 계절씩 여행하는 순례자들'이란 문장이 바로 삶의 본 의미와 통한다는 걸 느꼈으니까요. '한 시기의 모습으로 타인의 존재 전체, 혹은 삶 전부를 판단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범하는 오류'임을 전하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제 친구 중에 고교 시절엔 중간 정도의 실력으로 공전에 진학했는데, 전문자격증을 여러 개 취득한 후 4년제 편입, 학사장교, 공기업 취업, 박사 학위 취득 등 끊임없이 한 단계씩 성장하여 친구 중 누구보다 잘나가고 있으니까요. 



 



새는 날아서 어디로 가게 될지 몰라도」의 다음 말은 뭘까요? '나는 법을 배운다'입니다. 목걸이를 팔려 온 아이에게 '지금 금값이 내려갔으니 팔지 않는 게 좋다, 나중에 팔면 더 이익이다.'라며, 대신 자신의 보석 가게 일을 도와달라는 이야기로 시작하는데요. 훌륭한 보석 감정가가 된 후 자신의 목걸이를 감정하니 금이 아니라 저급한 도금이었다는 겁니다. '경험을 통해 스스로 가짜와 진짜를 알아보는 눈을 갖는 것은 어떤 조언보다 값지다.'라는 ‘경험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살다 보면 이보다 더한 철학도 별로 없더군요. 경험은 문제 해결의 밑바탕이니까요.



 





숲에서 진박새가 야생비둘기에게 말했다.

"눈송이 하나의 무게가 얼마인지 알아?''

야생비둘기가 말했다.

"무게가 거의 없어."

전박새가 말했다.

"그럼 내가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나 해주지. 내가 전나무 둥치 바로 옆 가지에 앉아 있었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 많이 오는 것도 아니고, 심한 눈보라도 아니었어. 전혀 격렬하지도 않았고 마치 꿈속처럼 내렸어. 나는 달리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앉은 가지 위에 내려앉는 눈송이들의 숫자를 세었어. 정확하게 3,741,952개였어. 네 말대로라면 무게가 거의 없는 그다음 번째 눈송이가 내려앉는 순간 나뭇가지가 부러졌어."

지금 내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생각의 눈송이들이 소리 없이 쌓이고 있는가. 생각만큼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없다. 마음은 한 개의 해답을 찾으면 금방 천 개의 문제를 만들어 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작가이다. 마음이 자기와 전쟁을 벌이지 않을 때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30쪽)





어느 현자가 시골을 여행하고 있을 때 한 여인이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왔다. 아픈 아이가 있어서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현자가 그녀의 집으로 향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현자는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때 사람들 속에서 한 남자가 소리쳤다.

“병원 약도 듣지 않는데 당신의 기도가 효과가 있겠소?”

현자가 남자에게 버럭했다.

“넌 기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잖아! 바보 같은 놈!”

그 말에 남자가 분개하며 얼굴이 붉게 변했다. 그가 욕설을 퍼부으려는 찰나, 현자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 말 한마디가 그대를 그토록 흥분시킨다면, 내가 하는 기도도 치료의 힘을 갖고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현자는 그날 두 사람을 치유로 인도했다. (36쪽)







우리가 구차하게 의존하는 것, 시도와 모험을 가로막는 것을 제거해야만 낡은 삶을 뒤엎을 수 있다는 사실도 공감합니다. "안전하게 살아가려고 마음먹는 순간 삶은 우리를 절벽으로 밀어뜨린다. 파도가 후려친다면,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라는 말과,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라는 말도 의미가 남다릅니다. 살다 보면 질곡에서 헤매기도 하니까요. 무엇을 보는가 아니라 어떻게 보는가, 무엇을 듣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듣는가, 무엇을 느끼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느끼는가가 우리의 삶을 만들어나간다는 걸 기억해야겠습니다.



 



명상에 대한 작가의 접근도 참 좋습니다. 겉으론 사마디에 든 듯하지만, '지금 내가 뭘 하고 있지?' 하는 의구심,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조바심, 의지가 약한 자신에 대한 책망, 혹은 다 거짓이 아닐까 하는 의심, 정신이 이상해질지도 모른다는 망상까지 들었다는 온갖 생각이 들었다는 유명 명상 전문가들의 경험담은 와닿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과의 싸움'을 이기고 세계적인 명상 전문가가 되는 비법은? 생각과 회의와 의심과 싸우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거랍니다. "수행이 잘되든 안되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명상하려고 하는 의지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적어가려니 끝이 없고, 이 정도에서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이 책은 직장 독서동아리 추천 책이었는데, 아주 만족스러운 책 읽기가 되었습니다. 읽다 보면 모든 흐름이 삶의 긍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도 "나는 너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좋아." 이런 말을 듣고 싶습니다. 진정성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진심 어린 마음을 나누는 그런 사람…. 고정된 '나'가 아니라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 그러려면 '나는 누구인가?'의 물음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이 물음은 '나는 무엇이 아닌가?'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오늘 한번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지만 우리 자신이 얼마나 오래된 영혼인지 모른다. 영혼을 돌본다는 것은 자신의 내적 삶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영혼을 가진 육체가 아니라 육체를 가진 영혼임을 아는 것이다.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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