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책 리뷰

feloveisel
- 작성일
- 2021.1.5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
- 글쓴이
- 아론 바스타니 저
황소걸음
* 1
우리는 점차 희소성이 사라져 가는 세계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살아온 삶에서는 '희소성'이 곧 '가격'이었고, 희소성을 '선점'하는 자가 배불리 살 수 있었다.
지금도 없는 희소성을 만들어 값어치를 부여하고, 값을 지불할 매개로 만드는 것이 상업현실이지만, 과거에는 무척 비싼 값이 매겨졌던 많은 재화나 서비스들의 상당 부분이 이제는 공유재나 저렴한 자원이 되었고, 이 경향성은 심화될 것이다. 가장 간단한 예로, 사람의 노동력도 기계로 대체되는 양상이니, 이 또한 공유재로 바뀌는 것이다.
혹자는 벌써 우리가 3차 대혁명의 시기에 진입한 지 오래로 한참 지나는 중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그 끝이 아닌 초기로, 태동의 조짐들이 보이는 시점이라 보는 것이 더 적절할 듯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변화가 생길지를 생각해 보라. 까마득하지 않은가?)
책의 제목에 포함된 '공산주의'라는 단어는 과거 참혹한 전쟁과 냉전시대를 겪지 않은 나에게도 입에 담기 조심스러운 단어다.
하지만, 그러한 데에는 '공산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려 하며 보기보다, 과거의 실패한 잔해물, 일부 과격한 정치색을 전체 골조로 이해하거나 현 세대에 맞는 이론으로 심화시키려는 노력보다 무조건 잘못된 딱지를 붙이는 경향성이 더 압도적으로 존재하는 이유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담긴 '공산주의적' 견해들은 절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전 세계로 연결된 인간을 하나로서, 인권으로서 생각하면서 동시에 지금의 무차별한 정보재가 자본주의의 기본 전제(생산되는 모든 것에는 가격이 부여된다)를 무너뜨리는 세상이 자연스레 변해온 시점에서, 앞으로의 인류가 무너지지 않을 방향에 대한 전 지구적인 선구안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면서도 그 무엇보다 "자본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 자신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절체절명의 위기 위에서 살아남을 길을 모색하고 대안을 제시하려고 쓴 책이기 때문이다.
* 2
냉전 시절에 미국과 소련이라는 절대적인 세계가 무력충돌하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1894년 갑작스러운 경제성장으로 인구가 4배 성장한 런던을 뒤덮은 말똥 문제는 1912년, 고작 18년 만에 엔진이 달린 운송수단이 등장하면서 척결되었다. 우리는 세상의 변화를 예측할 수 없지만, 적어도 과거의 전례로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은 배웠으니 지금의 징조들을 몇 배 앞서 해석할 수 있는 혜안을 발휘해야 한다.
지금 인류는 해마다 지구 1.6개분에 이르는 자원을 소모하지만, 인구는 한계점을 찍기 전까지는 몇십 억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의 트럼프 지지군(백인 남성)의 극단적인 절망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전 세계적으로 제조업계는 무너지고 있으며, 한 예로 네덜란드 기업 필립스의 드라흐턴 공장에서는 이미 로봇 팔 128개가 사람을 대신해 열심히 일하는 중이다. 이 경향은 앞으로 가속화되면 되었지, 절대 둔화되거나 역행하지 않을 것이다. 책에서 예시하듯, 자본가는 더 뛰어난 효율 생산성(투자비용의 하락)을 원하는 동시에 그렇게 생산될 재화를 소비할 소비자를 필요로 하는데, 전 세계적인 빈부 격차와 제조업 실직, 기계로 인한 실직 등은 인간의 구매능력을 상실시킨다. 즉, 자본주의의 욕망이 결국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는 조건을 만들어 가는 것으로, 이와 관련한 마르크스의 이른 혜안은 놀랍다.
- "사회적 개인의 발달에 필요한 두 측면인 생산력과 사회적 관계는 자본에는 단순한 수단으로 보이며, 자본이 그 제한된 토대에서 생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생산력과 사회적 관계는 이 토대를 완전히 파괴하기 위한 물질적 조건이다." - 마르크스
* 3
이 책은 자원 고갈, 인구 고령화, 기후 위기, 기술 발전(자동화), 빈부 격차의 5가지 전지구적 위기상황을 상세히 조명하지만, 이러한 돌이킬 수 없는 위기가 찾아오는 만큼 인류의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 그 기술을 실현시키는 데 필요한 제반비용도 상당히 낮아진 상태다. 즉, 도망칠 구멍은 있다. 하지만 책이 내내 강조하듯 '잘' 도망쳐야 한다.
2004년 모하비사막에서 열린 무인 자동차 경주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차는 전체 코스의 5%밖에 달리지 못했지만, 고작 6년 뒤 구글은 자율 주행 자동차로 '22만 5,000km'를 주행했다. 1980년 1GB의 정보를 저장하는 데 들었던 비용이 20만 달러였다면, 2013년에는 0.03달러로 떨어졌다. '비약적'이라는 수식으로도 모자라다.
책에서는 말한다.
- "유일한 문제는 이 풍요가 보상 시스템을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본주의에서 뭔가 만들기로 돼 있는 것은 이 보상 시스템, 즉 이윤 때문인데 말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생각해 보지 못한 무한한 영역이 자유로운 공유재로서 기능해 가듯, 이제는 정보의 집산을 필요한 듯이 기획해 제공하는 형태의 산업들이 새로 생겨나고, 기존의 자원이 될 수 없던 우주의 광물을 채굴할 수 있는 기술들이 진일보함에 따라, 이미 있던 것이 무료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없어도, 없는 것들이 새로 개발되며 다시 자체적인 '희소성'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 책은 그 변화 앞에서 우리가 그동안 이뤄내지 못한 공정한 세상을 어떠한 준비로 미리 설계할 수 있을지를 모의하는 책이다. 그래서 참, 혁명적이지만 한편으론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다. 결국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제안들을 새겨듣지 않는다면 지구는 버티지 못할 것이다. 공평을 논하다 생뚱 맞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은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당장 지구의 기온을 유지하기 위해서, 2050년까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소 85%가량 줄여야 하고, 이는 2020년부터 부유한 국가들이 매년 배출량을 8% 줄여야 도달 가능한 수치다. 그리하여, 이 책의 저자가 최종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①더 이상의 자연의 풍요를 거스르는 일에 희소성을 부여하는 일에 대한 '정치적 감시'와 ②녹색성장을 바탕으로 한 빈민국과 강대국의 이질적인 격차가 사라지는 '삶의 보편적인 최소한의 기본권 및 자율성'의 확보다.
* 4
인류의 역사가 과오의 정반합을 통해 조금씩 깨우치고 전체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완결 없는 과정이어야 한다면,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조금 더 혁신적으로 설계하는 데 필요한 모든 이미지와 1차적인 정보를 데이터화할 수 있다.
책에서는 "우리가 직면한 도전과 우리 손에 쥐어진 도구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정치의 길잡이가 될 지도를 그리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히는데, "이 책에서 사용하는 '공산주의'라는 단어의 뜻은 정확히 다음과 같다. 생계를 위한 직업이 사라지고, 풍요가 희소성을 대신하고, 노동과 여가가 하나로 합쳐지는 사회", "마르크스는 이를 기술의 변화에 따른 부수적인 사건이라고 봤다. 즉 생산력이 발전할수록 노동과 여가가 하나가 되는 새로운 사회가 탄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 책이 감동적인 이유는, 공산주의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대체해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는 개념인 '녹색성장'은 단순히 "지구가 죽어서 사람도 죽게 생겼으니 이제라도 정신 차리자"는 흔하디흔한 모토격의 주장이 전혀 아니다. '녹색성장'은 그 단어의 바탕이 그렇듯이, 세상에 태어난 모두가 적어도 삶의 기본권(물, 빛, 호흡)을 충족하는 에너지자율의 바탕 위에서 그간 폭력과 종속으로 이루어진 경제적 노예관계를 단절하고, 한쪽이 지나친 풍요를 누릴 때 한쪽은 빛과 물이 없어 죽어가는 현실로부터 탈피하자는 실은 너무도 늦은 주장인 셈이다.
- "21세기 초반인 현재 (인도) 여성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출산하는데, 그 이유는 불행히도 사방이 칠흑 같은 밤에 병원과 수십 km 떨어진 곳에서 아기를 낳아야 하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 "에너지 혁명이 가져올 기회는 단순히 재앙을 모면하는 수준 너머까지 확장된다. 즉 풍부한 에너지 공급은 오랜 세월 글로벌 사우스의 발목을 잡아온 저개발의 고리를 끊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기술로 인한 에너지, 정보, 자원의 풍요는 이미 예정된 것이다.
그걸 어떻게 폭리 없이 나눌지가 이 책이 주목하는 현안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다른 국가나, 자연, 한 국가 내의 하층계급을 착취하며 자본주의의 배를 불렸지만, 자본주의가 진정한 자본주의로 기능해 왔는지는 미지수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달했을 때, 예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그토록 정부 개입의 최소화를 지지하던 경제 강국들은 저마다 자국의 국내 은행에 긴급 재정을 지원했다. 입맛에 맞을 때만 옹호하는 체제인 셈이다.
그 잔혹한 욕망으로 지구의 자율기후 치료시스템은 망가졌지만, 여전히 풍족한 자연은 우리에게 대체에너지라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우리나라는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놀라운 사실은 인간이 1년에 소비하는 에너지가 20TW에 미치지 못하는데, 대기권에 항상 부딪치는 태양에너지의 양인 약 174PW 중 거의 절반이 지표면에 닿는다는 것이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수천 배 많은 에너지가, 9분이면 지구에 도달한다. 우리나라가 화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며 '기후악당국'이라는 악명을 뒤집어쓰는 동안 선진국들은 이미 재생에너지 비율을 상당 부분 개선해 냈다. 앞서 설명했듯, 기술의 보편화, 정보의 공유화가 기술에 드는 비용을 기하급수적으로 절감시켰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변혁이 어렵지 않은 것이다.
2010년 영국 전체 전력에서 재생에너지 비율은 2%였지만, 2016년 영국 전역의 풍력에너지가 처음으로 화력발전소보다 많은 전기를 만들었고, 2018년 후반에는 재생에너지 비율이 25%로 올랐다. 2017년 9월, 스코틀랜드는 풍력발전으로 국가 전체 전력 수요의 무려 2배에 해당하는 전력을 생산했다.
이 책이 보여준, 클리블랜드나 프레스턴 사례(지역발전)나 GDP 대체 개념인 '풍요 지수' 개념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또한 그 자체로 아름답다.
- "오늘날 인류가 처한 5가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선 지구적 차원의 해결책이 필요하다. (…) 청정에너지란 훨씬 더 저렴한 에너지원이자, 공공의 재산이어야 한다. 번영과 민주주의, 공유 자원은 단순히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서로 완성하는 관계다."
* 5
이 책이 바라보는 시사점에 대한 전력적인 고민이 정말 필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다.
전체적인 내용을 다시 요약하자면, "기술의 발전에 따른 부수적인 사건"이란 산업사회의 자본가가 돈을 벌게 하고, 노동자가 돈을 벌어 소비를 하게 해준 인간 노동력의 희소성을 포함, 과도한 생산력이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희소성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며, 본래 재화(지불)의 가치가 있던 품목들을 대가 없이 자유롭게 사용하고 인구는 줄어듦으로써, 자연히 자본산업의 규모가 축소되대 제공되는 건 역설적으로 더 많아지는, 결코 '부수적'이라 표현할 수 없는 현상을 말하며, 우리는 그 길목에서 이 현상을 골똘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계는 너무 많은 것들을 빠르게 생산할 수 있고, 인터넷으로는 온갖 정보와 소식이 쏟아져 나온다. 이제 재화들은 너무 많아 자체적으로 생산되는 지경이며, 그러함으로 기존의 자신들의 가치를 깎아내린다. 범람으로, 서로가 서로를 상쇄하는 것이다.
이렇게, 에너지의 효율적 기술 적용을 논하는 장에 다다르면, 그제야 왜 이 책의 제목이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인지 알 수가 있다.
이 제목은 너무도 현명하다.
우주산업에서 이미 그 기미가 보이듯이, 정보와 기술이 무한재가 되려 할 때 자본의 논리가 개입해 인위적 희소성을 만들려 할 것이다. 이때, 이를 공공재로서 명확히 기능하게끔 정치가 노력한다면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골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평'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화려함'이다.
차별 없는 보편적 행복. 최소한의 기반.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좋아요
- 6
- 댓글
- 1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