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dange
  1. 서평
주간우수

이미지

도서명 표기
벤 버냉키의 21세기 통화 정책
글쓴이
벤 S. 버냉키 저
상상스퀘어
평균
별점8 (45)
gadange

불과 20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경제와 금융에 관한 보통 사람들의 관심이 지금보다 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의 분위기는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고 느낀다. 특히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기 전 유럽을 제외한 많은 국가들이 장기 호황을 누리며 가상 화폐, 주식, 부동산 모두가 고공행진을 벌이던 시기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투자 관련 컨텐츠들과 더불어 경제 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었다. 동학 개미 운동과 젊은 부자들, FIRE, 스타트업 같은 용어들이 미디어를 통해 쏟아졌다. 하지만 실제로 그 많은 경제 소식들을 접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그 소식의 경중을 판단하고 이면에 담긴 내용까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됐을까? 나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익숙한 용어들로 구성된 경제 소식을 들으며 마치 이해한 것처럼 착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무엇보다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통화 정책, 그리고 금리라는 주제에 대해서 그러한 유창함의 착각이 더 심했었음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사실상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내가 알던 FRB에 관한 지식이 거의 전무했음을 더욱 절실히 알게 되었다.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관과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존재에 대해서 무지했던 것이다. 4년 전 독서를 시작한 이후 매년 경제학 관련 서적들을 꾸준히 읽고 있지만, FRB와 통화 정책에 대해서 이렇게 깊게 파고들면서도 평이한 문체로 쓴 책은 본 적이 없다. 문체가 평이하다고 해서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분명 저자인 벤 버냉키는 매우 복잡한 거시경제 이야기를 최대한 쉽게 적으려고 많이 노력한 흔적들이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수많은 인물, 사실 관계, 이론, 연구 결과를 담고 있는 빽빽한 책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미국 정치와 경제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더욱이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 예상된다. 다만 책 내용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없이 매우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일독에 전부 이해가 어렵다면 개념 이해를 보충하면서 재독을 하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1~3부는 1970년대 이후 고전적인 필립스 곡선(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의 상충 관계를 나타내는 곡선), 그리고 케인즈 경제학이 위기를 맞이한 오일 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 사태에서부터 2022년 팬데믹 시기까지 연대순으로 미국 중심의 주요 경제 이슈와 그에 대한 연준과 정치권의 대응을 서술하고 있다. 마지막 4부에서는 그린스펀 이후 연준의 주요 통화정책(QE와 포워드 가이던스)이 효과적이었는지 여러 연구를 통해 검증하고, 비판과 보완점을 저자의 입장에서 제시하고 있다.



 



벤 버냉키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고 있는 개념은 1) 양적 완화(QE), 2) 포워드 가이던스, 3)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4) 연준의 독립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전후 상황을 비롯한 21세기 연준의 통화정책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저명한 경제학 교수로 연구 활동을 하다가 2002년부터 연준 이사, 2006년부터 연준 의장으로 2014년까지 8년간 통화 정책을 진두지휘했다. 이론과 실무 양쪽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역량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버냉키가 아니면 누구도 알려줄 수 없을만한 통찰을 책에서 얻을 수 있다. 앨런 그린스펀의 <격동의 시대>보다 훨씬 더 읽을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 전 개인적으로는 미국의 경제학계에 대한 불신이 높은 편이었다. 예전에 읽은 책들이 신자유주의와 미국 주류 경제계, 금융계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았던 이유도 있고(ex. 나오미 클라인, 장하준, 폴 크루그먼의 저서), 무엇보다도 나심 탈레브의 팬으로서 막연히 현대의 경제 모델이 세상의 복잡계적 통계 성질을 잘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 초반에 앨런 그린스펀에 관한 내용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그러한 나의 불신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저자는 그린스펀의 18년 임기 동안 인플레이션 연착륙을 통해 긴 호황을 이끌었던 것과 의회와 정부의 재정 정책에도 폭넓게 관여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지만, 책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내가 기존에 알던 많은 내용들로 인해 그린스펀에 대한 저자의 평가에 분명 의심의 여지가 있다. 공산 경제가 무너진 후 자유무역의 기치를 내걸고 여러 신흥국 경제를 압박한 것, 금융투자업계에 무분별한 탈규제를 위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 그리고 부동산 투기 과열에 대해 전혀 인정하지 않고 금융 위기 가능성을 일축했던 것에 있어서 면책의 여지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2006년 벤 버냉키가 취임을 앞두고 했던 연설에서도 버냉키조차 부동산 과열과 금융업계(특히 그림자금융 분야)의 규제 부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했음을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취임하여 연준 통화정책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대하고 효과적인 정책을 폄으로써 연준의 독립성까지 지켜낸 것,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 연준 의장들의 역대 정책에 대해 성과와 비판을 솔직하게 종합적으로 평가한 것 등에서 정직한 학자로서의 면모가 충분히 드러났다고 느꼈다. 또한 버냉키가 적극 활용한 후 다른 국가의 중앙은행들도 도입한 통화 정책들의 효용성이 어느 정도 입증되었다는 사실도 책을 통해 납득할 수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들의 잠재 성장률과 자연이자율이 떨어짐으로써 통화 정책의 여지가 줄어든 상황에서 통화 정책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무엇보다 기관과 정책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예전보다 중요해졌고, 새로운 정책의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인플레이션 시기의 연준과 같은 큰 실책없이 잘 실천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저자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연준의 역할과 능력에 대한 신뢰 또한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어떤 이유로든 언급하지 않은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중요성이 떨어졌다고 판단해서 다루지 않은 것인지, 혹은 의도적으로 제외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 세계화와 맞물려 진행된 금융 영역의 과도한 탈규제가 만들어낸 금융 불안과 불확실성(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반복적이고 주기가 짧아진 금융 위기), 금융 여건과 상관없이 끝도 없이 벌어지는 소득 불평등, 금융 위기와 양적 완화로 인해 가속화되는 자산 불평등에 대해서 연준의 역할이 미비했음을 인정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의회와 정부에서 재정 정책과 입법으로 다루어야 할 사안이라고 선을 긋는 모습은 상당히 아쉽다고 느낀다. 연준이라는 기관의 관심사가 통화 정책을 통한 국가 경제의 양적 성장과 실업률 관리라는 것으로 한정짓고 경제 시스템 자체의 질적 향상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전자와 후자는 밀접하게 관계가 있기 때문에 연준이 모두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면 실업률과 불평등에 대해 설명한 부분에 있어서도 더욱 세부적인 지표와 비판에 대해 거의 언급이 없었다. 실업률이 같더라도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그로 인해 소득 격차가 점점 더 극심해지고 있는 현상은 여러 선진국에서 벌어지고 있고, 그러한 현상이 단기적으로는 경제 지표에 반영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그 영향을 고려해야 할 텐데(오래 전부터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는 데 기여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한 부분에 대한 언급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책이 다루고자 하는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일 수도 있기에 저자의 의도를 함부로 판단하긴 어려운 지점이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책의 제목처럼 연준과 21세기 통화 정책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매우 짜임새 있고 탄탄한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그것만으로도 읽을만한 가치가 차고 넘친다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저자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통찰이 많이 담겨있기 때문에 저자만이 쓸 수 있는 전무후무한 책이라는 점은 이 책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다만 경제는 너무나 복잡해서 다양한 관점을 종합해 공부해야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므로 책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들은 다른 경제학 서적들을 통해 보완한다면 이번 기회에 거시경제를 이해하는 눈이 엄청나게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꼼꼼히 읽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려 만만치 않았지만 읽는 와중에 여러 번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연준과 통화 정책을 알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읽어보길 추천한다.


좋아요
댓글
7
작성일
2023.04.26

댓글 7

  1. 대표사진

    syh309

    작성일
    2023. 6. 30.

  2. 대표사진

    ok0157

    작성일
    2023. 7. 3.

  3. 대표사진

    고독한선택

    작성일
    2023. 7. 4.

  4. 대표사진

    sangkyu

    작성일
    2023. 7. 4.

  5. 대표사진

    슈퍼맨아빠

    작성일
    2023. 12. 18.

gadange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25.1.5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1.5
  2. 작성일
    2025.1.5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1.5
  3. 작성일
    2025.1.5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1.5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01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8
    좋아요
    댓글
    60
    작성일
    2025.5.8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18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