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에세이

금비
- 작성일
- 2018.2.28
힐빌리의 노래
- 글쓴이
- J. D. 밴스 저
흐름출판
미국 동부 러스트벨트 지역의 철강도시에서 나고 자란 한 남성의 이야기다. 그는 의무감에 이 책을 썼다. 회고록이라고 하지만 사회학 서적으로 분류해도 손색이 없다. 그는 빨간불이 들어온 가정의 자녀들이 어떤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지, 왜 가난에 허덕이고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지에 대한 분석을 지극히 개인의 삶을 빗대 통계자료를 참고하여 증명한다. 저렇게 놔두어선 안된다고, 개인의 탓이라 하기엔 문제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구조의 탓이라 하기엔 개인의 책임 비중이 크다고 생각한 J.D.밴스 변호사의 위기의식에서 시작된 책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나는 경악했다. 트럼프를 밀었던 계층이 백인 노동차 계층이란 사실을 알고 바로 떠올린 것은 우리나라의 투표 행태였다. 학력이 낮고 저소득층일수록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현상이 미국도 마찬가지구나. 그러한 백인 노동자 계층이 밀집한 곳 중 하나가 러스트벨트 지역이다. 저자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으나 할모(할머니)나 할보(할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가 없었다면 자신은 지금 그곳에서 실업급여이나 타 먹는 약물중독자가 되어있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일명 '복지여왕'들을 혐오한다. 곁에서 봐온 혜택자들의 삶을 알기 때문이다. 단지 돈을 주는 것으로 그들이 변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국의 저소득계층은 흑인이나 히스패닉 계열이라고 생각했다. 가난한 백인은 산업혁명 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사진으로 본 사람들까지라고 생각했다. 내 안에 백인에 대한 완고한 선입견이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이 책속 잭슨가 사람들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영국에서 건너온 순수 백인 혈통의 상류층들이었다. 대가족을 형성하고 가족일을 목숨같이 생각하였다. 마을이 공동체 전통이 짙은 지역적 특색을 가진 이유이다. 이곳에 철강 공장이 생기면서 이들은 한때 안정적인 직업과 경제적 부유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법률보단 전통의 관습, 교양보단 내 가족 우선주의, 목표 설정보단 현실 안주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다. 교육이, 가정의 화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몰랐다. 술과 마약,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은 고스란히 부모의 삶을 닮아갔다. 저자 밴스 역시 그럴 확률이 높았다. 밴스에겐 행운이 있었다. 할모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였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그 역시 고등학교 중퇴를 하고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어떤 대출이 더 나은지도 모른 채 빚쟁이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이렇게 살아선 안된다라는 환경을 제공한 것은 할모였다. "할모와 함께 사는 집이 안겨준 평화로움 덕분에"(252쪽) 그는 공부란 것을 시작했고 "금지목록에 있는 친구와 놀고 있는 꼴을 본다면, 그 즉시 차로 받아버리겠다고 딱 잘라 말"(256쪽)한 할모 덕분에 공부하는 친구들을 주로 사귈 수 있었다.
밴스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것? 아니다. 러스트벨트 지역이라는 개천에서 변호사가 된 것이 용으로 비유될 일인진 모르겠으나 자신의 지독한 노력에 의해 삶이 바뀌었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는 가정의 중요성, 자신의 삶 너머를 볼 수 있는 경험의 중요성, 선택의 순간마다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제도적으로 단지 저소득층이라고 금전적 지원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오히려 그들을 더 게으르게 만들고 지원금을 역이용하여 마약 또는 술, 담배를 사는 데나 쓰인다고 말한다. 노력하고 싶어도 노력하지 않고 안주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다르게 접근하라, 라고 말하고 싶었던 밴스. 자신도 명확한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긴 어렵다. 하지만 러스트벨트 지역에서 밴스 자신의 삶을 대표 삼아 이 지역 사람들에겐 더 세심하고 생활밀착형 방법을 써야한다고 말한다. 세상의 수많은 힐빌리들이 공평하게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여야 한다는 것을 현실주의적 관점으로 설파한 것이다.
읽는 동안 끔찍하기도 했고 웃기기도 했고 양심에 찔리기도 했다. 그러한 자각을 주는 책이기에 호평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 어떤 사회과학서보다 논리적으로, 감정적으로 훅 들어올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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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