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읽은 책들

책읽는엄마곰
- 작성일
- 2018.7.24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 글쓴이
- 최인훈 저
종합출판범우
장군과 나 사이에 있는 그 안타까움을,
서먹함을 거둬버리기 위하여
서로가 꿈을 기억해주지 못하는
그 미안스러움을 메우기 위해서..
우리가 더불어 하는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안타까움이 그 미안스러움이 덜어지기나 할 것처럼.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 사이에는 남이 들어왔지.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대본 중에서
같은 제목의 유화 김환기 作
최인훈. 우리는 그의 이름이나 얼굴은 몰라도 작품은 많이 알고 있다.
광장. 구운몽... 등.
사실 우리가 그의 작품을 알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작품들을 모르고서는 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 점수를 획득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렇다보니 오히려 이 책의 내용을 알아서 안다기보다는
수능참고서에서 간추려놓은,
주인공들의 심리상태나 마음상태, 처한 상황 등을 “암기”하여 안다.
아마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최인훈의 작품을 알 것이고
나 역시 처음에는 그의 글들을 그렇게 만났었다.
어느 날, 서점에서 선 채 읽은 그의 책에서
인간의 육체는 대단한 조직체이나, 어떠한 사회나 세상도 그럴 수 없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뒤, 나는 그의 글들을 찾아 읽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날 나는 그의 글을 읽은 뒤
남들이 부러워하지만 감옥 같았던 직장을 그만 둘 용기가 생겼고,
그 직장을 그만 두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삶을 살고 있다.
그 이후 오히려 마음 편히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나는
광장의 전문을, 구운몽을 읽었고,
두만강이나 크리스마스캐럴 등도 읽었다.
때로는 이해할 수 있었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책들을 읽을수록
그가 왜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거장인지
왜 그가 노벨문학상에 종종 거론되는 작가인지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그런데, 내가 그의 책을 다 읽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광장으로 떠났다.
죽은 후에 받게 되는 금관문화헌장 보다는,
그 글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의 감상이 어쩌면 더 행복하리라 생각된다.
나 역시 예스에서 그의 책을 리뷰하는 글을 응모한다는 말을 보았을 때,
유명한 것들은 다 읽었기에 한번 써볼까.. 생각했지만
정작 광장 등에 대한 리뷰는 다섯줄도 써내리기 힘들었다.
난 어쩌면 이명준의 마음을 여전히 다 이해하지 못했음이라.
대신 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를 쓰기로 했다.
같은 제목으로 유명한 시가 있고,
유명한 그림이 있으며, 유명한 노래가 있다. 그리고 이 작품도 있다.
아마도 이 글과, 그 시와, 그 그림은
앞으로도 우리가 종종 보거나 만나게 될 것이다.
음악으로 들을 것이고, 연극으로 보게 될지도 모르고..
다른 미술작품으로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 제목을 가진 고인의 작품은 희극으로 쓰였으며,
우리가 너무나 익히 알고 있는 온달과 평강공주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대신 조금 더 견고하고, 조금 더 비장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공주도 죽고, 온달의 엄마만이 눈 위에서 그를 기다린다.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참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온달설화의 내용이야 워낙 유명한 이야기이므로
이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그가 남긴 광장이나 구운몽 등 역시,
꾸준히 시험문제로 남아 학생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내 딸아이 역시 그의 글을 읽을 것이고
이명준의 마음을, 이명준에게 광장과 밀실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암기하고 문제를 풀고.. 그렇게 시험을 위한 학습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처럼 학창시절을 지난 후에야 그의 글들을 읽을지도 모르고,
평생 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시험을 볼 수 있는 것에 만족하고 그칠지도 모르고,
문학이라는 과목에서 그의 글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아이가 부디-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나 애절함만큼은
암기를 통해 학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작품만큼은 글로든 연극으로든 스스로 감상하기를 바래본다.
공주의 세력을 등에 업고 살다보니,
그 주변 경쟁자들에게 암살을 당한 온달.
그럼에도 공주에게 사랑의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온달.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말은,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없기에 틀린 말이라던 고인의 글이지만
온달이 남기는 메시지는 관객을, 독자를 절절하게 울리는 것이다.
이제 이렇게 죽어서야
비로소 그 예전에 곰 때려잡고
여우 잡으러 다녔던 자유를 누립니다.
죽은 다음에야 알았지만 공주 당신은 나의 하늘이었습니다.
그 하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일자 무식쟁이에다
숲 속에서 곰이나 잡았던 나 바보 온달이
이제는 벼슬아치로 변하고, 궁전에 들어가서
정치적인 음모와 권력잡기 게임에 휘말리느라
제대로 사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정말 사랑했던 나는 답답했습니다.
죽어서야 비로소 당신을
예전과 똑같이 얽매이지 않는 마음으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유명하지만 감옥같이 느껴졌던 직장을 탈출한 새내기가
길을 헤매다 결국 갈 곳은 서점뿐이었던 새내기가,
서점 한 귀퉁이에 서서 읽었던 문장들,
그 문장을 읽으며 사표 쓸 용기를 얻었던 이해할 수 없던 순간들.
그리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삶을 살게 된 한 새내기는
그가 남긴 글을 읽으며
이제는 아이의 교육을 걱정하고,
훗날 아이가 시험으로 그의 글을 읽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가 되었다.
최인훈.
당신은 이제 다시 여우를 잡으러 다니던 철부지 때의 자유를 얻으셨습니까.
한번도 직접 만나보지 못한 당신이지만
당신은 나를 한번도 직접 보지않은 사람이지만,
세상은 육체보다 온전하지 않다는 말로, 나에게 사표 쓸 용기를 주었지요.
온전한 육체를 지녔는데, 다시 무엇을 못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이제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내 지인들은 그때 그만둔 그 직장을 왜 그만두었냐는 말을 하기도 하고,
삶이 고단하다 느낄 때 그 직장을 왜 그만두었냐 싶은 마음이 종종 들기도 하지만은
지금의 삶이 오히려 숲 속에서 곰이나 잡는 온달같습니다.
음모와 권력이 아닌, 숲을 사는 사람같습니다.
당신도 이제 다시, 여유를 누리는 영혼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똑같이, 얽매이지 않는 마음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