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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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
글쓴이
모리미 토미히코 저
비채
평균
별점9.6 (33)
하나비
기발하면서도 예스럽고 신나는 소동극 같으면서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세계를 그린 듯한 로맨스 판타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이하 ‘밤은 짧아~’)를 읽고 모리미 토미히코의 팬이 됐지만 그 후에 읽은 ‘야행’과 ‘열대’는 살짝 난해했던 데다 제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래선지 2024년에 개정판이 나온 ‘유정천 가족’에 눈길이 끌렸으면서도 끝내 읽지 않았는데,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를 덮어놓고 장바구니에 담은 건 왠지 ‘밤은 짧아~’의 분위기와 닮은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풋풋한 대학 신입생이던 2년 전, ‘나’는 장밋빛 캠퍼스 라이프를 꿈꾸며 마음에 드는 동아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나’의 눈길을 끈 건 영화 동아리 ‘계’, ‘제자 구함’이라는 기상천외한 전단을 돌린 정체불명의 동아리, 소프트볼 동아리 ‘포그니’, 그리고 자칭 비밀기관인 ‘복묘반점’ 등 네 곳이었습니다. ‘나’는 마치 평행세계를 살 듯 이 네 곳의 동아리를 모두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나’는 어느 동아리에도 제대로 녹아들지 못했고, 달콤하고 행복했던 일보다는 쓰고 맵싸했던 일만 기억나는, 그래서 결국엔 후회와 한탄만 남는 시간을 보내고 맙니다.
“대학 3학년 봄까지 2년간, 실익 있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노라고 단언해두련다. 만약 (신입생이던) 그때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나는 지금과는 다른 2년간을 보냈을 것이다. 환상의 지보(至寶)라 불리는 ‘장밋빛 캠퍼스 라이프’를 이 손에 거머쥘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수록된 네 편의 단편은 네 곳의 동아리에서 보낸 ‘나’의 2년간의 우당탕탕 희비극을 다루는데,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자 흥미로운 점은 마치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이라는 바람을 구현한 듯 ‘나’라는 인물이 겪은 ‘네 번의 2년’을 평행세계 SF물처럼 그렸다는 점입니다. 첫 수록작에서 하잘 것 없는 삶을 살며 사랑의 훼방꾼 노릇에만 몰두하다가 끝내 영화 동아리에서도 쫓겨난 ‘나’는 2년 전의 선택을 후회하며 “그때 다른 동아리에 들어갔더라면...”이라는 바람을 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록작에선 다른 동아리를 선택한 ‘나’의 2년이 그려집니다. 나머지 수록작에선 기괴한 스승의 제자가 되어 뜻밖의 대리전쟁에 나서게 된 이야기, 갑자기 세 여자 사이에 끼인 채 혼란을 겪다가 뒤통수를 맞는 이야기, 어느 날 깨어 보니 외부세계는 사라지고 다다미 넉 장 반인 자신의 방만 무한 반복되는 기이한 상황에 처한 이야기 등 그야말로 ‘골 때리는’ 롤러코스터 판타지가 이어지며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나’의 주변에 포진한 개성 강한 조연들도 매 수록작에 함께 등장하는데, 이름과 캐릭터는 같지만 ‘나’와의 관계라든가 역할은 수록작마다 조금씩 바뀝니다. ‘나’의 유일한 친구이자 원수인 오즈, ‘나’의 로맨스의 상대인 검은머리의 후배 아카시, 감색 유카타를 입은 괴인 같은 존재 히구치, 수수께끼 같은 치위생사이자 애주가 하누키 등이 그들인데, 이들이 벌이는 기상천외한 행동들은 ‘나’의 엉망진창 희비극 못잖게 웃음과 흥미를 자극합니다.
특히 이들 가운데 히구치와 하누키는 ‘밤은 짧아~’에도 등장했던 인물로 2013년에 제가 쓴 서평엔 각각 ‘도도한 여장부이자 말술 캐릭터’와 ‘텐구(天狗)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유카타 사나이’라고 묘사돼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의 주 무대 역시 ‘밤은 짧아~’와 마찬가지로 시모가모 신사, 기야마치, 폰토초 등 교토 일대로 설정돼있어서 ‘교토 청춘 판타지 시리즈’로 불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의태어와 의성어라든가 고풍스러우면서도 황당무계한 표현들은 안 그래도 특이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더욱 맛깔나게 만드는데, 그런 대목들마다 얼마나 번역이 중요한지를 여러 번 깨달았습니다. 번역자는 다르지만 ‘밤은 짧아~’와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를 모두 재미있게 읽은 저로서는 만약 조금이라도 경직되거나 점잖은 문장들로 번역됐다면 이 두 작품의 묘미는 절반도 살아나지 못했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워낙 특이한 소재와 형식과 이야기로 포장된 작품이라 독자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습니다. 또 다 읽은 뒤엔 잠시 멍해지며 이 작품의 미덕이나 주제가 뭘까, 라는 궁금증에 사로잡힐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론 출판사 소개글 가운데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답을 염두에 두고 다시 한 번 읽는다면 좀더 진한 재미와 페이소스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청춘소설 같기도 하고, 평행우주론 SF 같기도 하고, 여러 얼간이의 한바탕 소동극 같기도 한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를 한두 문장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을까? 독자는 그저 천부적이고 독보적인 이야기꾼이 벌여놓은 ‘이상한 이야기’를 마음껏 웃고 즐기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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