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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글쓴이
성해나 저
창비
평균
별점8.9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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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란 무엇인가, 진짜와 가짜를 가름하는 시대 속에서 분투하는 화자들!





  상충하는 ‘진짜’의 문제들로 들끓는 세계. 이것이 내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쉬이 감별해내기 어려워진 시대, 때로는 진짜가 자신이 진짜임을 보다 치열하게 증명해야만 하는 세계. 진짜란 무엇인가, 진짜와 가짜를 가름하는 시대 속에서 분투하는 화자들을 다룬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를 읽으며 나는 우리 시대에 가장 절실한 이야기가 등장했다고 생각했다.










진짜, 라는 신화







  맞은편에 새로운 신당을 차린 신애기가 제 부모와 함께 인사 차 문수의 신당을 방문한 것이 얄궂은 인연의 시작이었다. 올해로 신을 받은 지 삼십년 차가 된 박수무당 문수는 어찌된 영문인지 그간 정성을 다해 모셨던 장수할멈이 최근 들어 좀처럼 화답을 해주지 않아 찜찜하던 차였다. 문수가 건넨 보이차를 시큰둥한 표정으로 밀쳐내기에 신애기의 몸에 애기동자가 들어 섰겠거니 하고 달콤한 사탕 하나 건네려는 찰나에, 신애기가 느닷없이 살기 어린 조소를 날린다. 신빨이 다했다더니 진짠가보네. 할멈이 나한테 온 줄도 모르고.









  소설 「혼모노」는 소위 신빨이 다한 박수무당 문수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그저 번아웃이 왔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집에 신당을 차린 신애기에게 할멈이 옮겨가 “흉내만 내는 놈”이란 소릴 듣고 나니 마음이 착잡해진다. 더 이상 장수할멈과 접신할 수 없는 이 몸은 ‘가짜’일 뿐이란 말인가. 그럼 여기에 존재하는 나는 누구란 말인가. 마침 문수에게 굿을 부탁한 황보 의원이 이를 철회하고 돌연 신애기에게 맡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문수의 이러한 고뇌는 정점에 달한다. 결국 문수는 신애기가 주도하는 굿판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자신만의 굿판을 펼치기 위해 잔뜩 벼린 칼날 위에 오른다. 더 이상 진짜냐, 가짜냐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곳에 있음을, ‘나’로서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므로.









유튜브를 보며 접신 연습을 한다. 과장되게 눈을 뒤집고 몸을 부르르 떨다 자괴감을 느끼고 그만두길 몇차례. 도대체 그동안은 어떻게 했던 걸까. 신의 출입이 어찌 그리 자연스러울 수 있었던 걸까. 모형 작두와 칼은 주문해놓은 지 오래다. 이제 연습만이 살길이다. 해원경을 크게 틀어두고 주악에 맞춰 칼춤을 춘다. / 「혼모노」 중에서 141p







신애기가 두 손을 입을 틀어막고 웃는다. 큭큭큭큭, 큭큭큭. 손가락 사이로 기분 나쁜 웃음이 새어나온다. 온몸의 피가 머리로 쏠린다. 종아리가 풀리고 손이 저려온다. 모르겠다. 지금 나를 향해 조소하는 것이 할멈인지 저 애인지, 허깨비인지 인간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 「혼모노」 중에서 145p













  ‘진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들은 또 다른 작품 속에서도 계속된다. 그 중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의 화자인 ‘나’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김곤 감독의 열렬한 팬으로, 그를 추종하는 팬클럽 길티 클럽의 멤버다. ‘나’는 한순간의 불미스러운 일로 감독이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자, 진짜 팬이라면 당연히 그를 믿어야 한다며 진실을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토록 필사적으로 추앙했던 진짜를 향한 마음이 허무해지는 순간, ‘나’는 깨달았던 것 같다. 보다 중요한 것은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일이 아니라, 진실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겠느냐고.









어떻게 작품을 본 적도 없으면서 ‘안 봐도 비디오’ 따위의 평을 내리는 걸까. 어째서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나락으로 떨구려 그토록 안간힘 쓰는 걸까. 도대체 왜 사실관계도 명확하지 않은 사건을 멋대로 공론화하고 거짓말까지 덧붙여 온갖 데로 퍼 나르는 걸까. /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중에서 14p







실수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인데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근데 그래도 되는 건가. 실수라고 해도 일곱 살 난 아이에게 그럴 수 있는 걸까. 친구들의 말처럼 만약 그게 내 아이의 일이었대도 김곤의 영화를 몇 번씩 관람하고 굿즈를 소비할 수 있었을까. /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중에서 28p









  이쯤 되면 진짜는 어쩌면 신화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반드시 성취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우리 인생이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될 이상향이기라도 한 것처럼 왜 우리는 이토록 진짜에 진심인 것일까. 때문에 진짜는 무엇인지, 진짜라고 ‘믿는 것’들을 끊임없이 욕망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계속해서 진지한 물음을 건네야만 한다. 성해나의 소설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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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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