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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h
- 작성일
- 2022.3.6
번역하는 마음
- 글쓴이
- 서라미 저
제철소
나는 번역가에 대한 동경이 있다. 외국어 원문을 마치 우리 작가가 쓴 것 마냥 자연스럽게 한글 작품으로 풀어내기까지의 고뇌, 마침내 작품으로 출간되었을 때의 희열, 지식노동임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번역가의 생활. 내가 존경하는 수많은 번역가들은 수입의 불안정을 솔직하게 밝힌다.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말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왜 이 일을 계속 하느냐고 물으면 모두 한 마음으로 말한다. "번역이 좋아서."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번역을 한다.
<번역하는 마음>의 저자 서라미 작가도 번역가이다. 작가이자 번역가이기도 한 저자는 열 명의 번역가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그들이 생각하는 번역에 대해 묻는다.
먼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번역을 단순히 출판 번역과 영상 번역 두 가지 종류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번역의 세계는 생각보다 많이 다양했다. 출판번역과 영화번역은 기본이고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 번역과 한국어- 미얀마어 번역, 법률 통번역, 여자 배구 통역사까지. 통,번역의 세계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책 속에 소개되는 번역의 현장은 현장만큼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사의 경우 장애인의 현장을 생각하고 함께 누리기 위해 일정 부분 개입이 필요하다. 그들의 불리한 상황을 단지 통역만으로 그치지 않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함께 하게 된다. 프로그램 하나를 보더라도 청각 장애인이 일반 청인 사람들과 공감을 누리며 볼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동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법률 통번역을 하는 현장은 번역가의 개입을 금한다. 기업간 국제 소송, 외국인 재판 통역 등 자신의 번역이 남의 인생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므로 관사 하나 하나에도 민감하며 정확도를 가한다.
그럼에도 공통되는 것이 있다면 <기생충> 봉준호 감독의 통역으로 유명한 샤론 최의 인터뷰이다.
통역이나 번역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글쓴이의 의도에 공감하고 글쓴이가 느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 다음
그의 무의식까지 파악해야겠죠.
글쓴이에게 공감하지 않고서는
조악한 번역만 가능하니까요.
통,번역하는 대상을 철저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그래서 이지언 여자 배구 통역사는 GS칼텍스 구단과 함께 생활하며 외국인 선수들이 감독의 코치를 하나라도 정확히 전달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언젠가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안현모 통역사가 통역일정에 나서기 전 해당 관련 서적을 사서 공부하며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한다.
"통역하는 사람은 더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해."
단지 언어만 옮기는 게 아닌 독자에게 원저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역할이라고 말하는 김효근 편집자의 말은 우리에게 번역이 언어만 알면 되는 게 아닌 하나의 세상을 소개하는 엄중한 작업이 수반되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번역이 좋지만 번역으로만 지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출판의 경우 자신이 원하는 기획을 출판사가 채택하는 행운을 100% 기대할 수 없고 출판사의 연락을 받아야만 밥벌이가 생긴다는 불안정도 있다. 때로는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한다. 자신의 영역에만 갇혀 있지 않기 위해 김영현 번역가는 자신이 아내와 함께 출판사를 차려 원하는 책을 번역하여 출간하고 정다혜 법률 통역사는 더 나은 통역을 위해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했음에도 일반대학원 법학과에서 국제법을 공부하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나간다. 미얀마어 통번역가인 강선우 번역가는 미얀마어 사전의 필요성을 체감하며 스스로 단어들을 모으며 자신만의 작업을 해 나간다. 한가지 일을 열심히 하지만 그 안에서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그들을 보며 나는 과연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책 속에 소개된 번역가들은 모두 자신이 최고의 번역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역의 두려움을 안고 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해 조심조심 두 언어 사이의 다리를 건넌다. 이들의 마음이 결코 번역가로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영역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열심히 살아가보자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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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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