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에세이

sarah
- 작성일
- 2024.12.1
바람이 분다, 가라
- 글쓴이
- 한강 저
문학과지성사

함부로 요약하지 마라. 함부로 지껄이지 마.
그 빌어먹을 사랑으로 떨리는 입술을 닥쳐.
바람이 분다, 가라/ 41쪽
친한 벗, 인주가 죽은 지 2년, 이정희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친구 서인주의 죽음을 자살로 판단하고 친구의 지난 그림을 평론하는 강석원 평론가. 절친했던 친구의 죽음을 자살로 명명하는 강석원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어디서 감히 친구의 죽음을 자살로 말한단 말인가. 친구 서인주에 대한 평전을 쓰고 있고 유고전을 기획하는 정석원. 그의 계획에 반박하기 위해 이정희는 눈 쌓인 미시령에서 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친구 서인주의 죽음의 진실을 추적해간다.
누구보다 친구 서인주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진실을 알기 위해 다시 그림을 들여보며 서인주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자세히 들여다본다.
『바람이 분다, 가라』는 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이자 한강 작가답지 않은 추리 형식의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은 전반적으로 서인주의 죽음이 과연 자살인가 아니면 타살인가라는 질문으로 읽는 이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
서인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기 위해서 이정희는 인주와 처음 만났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다.
경양식을 운영하며 홀로 가장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던 정희의 엄마,
피가 멈추지 않는 불치병 때문에 집에서 먹그림을 그려야 했던 연약하지만 깊은 인주의 삼촌 이동주.
그리고 인주의 전남편과 아이 민서 등등...
그런데 책을 읽어나갈수록 드러나는 건 모든 인물들의 '달의 뒷면'들이다.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하지만 언제나 같은 쪽을 향해 공전하기에 지구는 달의 뒷면까지는 보지 못한다. 늘 지구 곁에 맴돌지만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인주와 정희, 그리고 둘의 가족들의 뒷면들을 보여주며 그들이 각자 통과해왔던 시간들을 비춰진다.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 조차 하지 못했던 정희의 엄마, 살기 위해서 아이와 함께 죽겠다며 위협하는 인주, 술로 남은 생애를 버텨야 했던 인주의 엄마, 그리고 인주의 엄마를 불행하게 만든 원인 제공자들까지...
정상적인 사람들, 강석원과 서인주의 남편같은 부류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알게 된다. 인주의 삼촌이 꾼 꿈 속에서 수많은 조약돌 중에서 파란 빛이 도는 돌을 줍고 싶기 위해 버텨야만 했던 삶이었다는 걸...
아프지만 아프다고 말하지조차 못했던 뒷면. 그 뒷면을 홀로 감당하며 삼촌의 표현대로 살아야 하지만 겁이 나서 울만큼 힘들었다. 끝내 그 푸른 돌을 잡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끝까지 살아냈음을 이 소설은 말해준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인주의 죽음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나는 그 죽음의 진실을 인주가 정희와 했던 전화통화에서 찾는다.
다시 시작하는 게 가능하다면 …… 정말 가능하다면 말이야.
뭔가를 되살리는 게 아니라, 복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부서야 하는 것 같아.
아니, 그건 달라.
끝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부서야 하는 거야.
<바람이 분다, 가라> 324P
다시 살기 위해선 있는 것들을 부서야 하기에 더 부스는 삶.
그걸 죽음, 자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건 더 강력한 삶의 의지가 아닐까?
더 부서지는 아픔을 통해서라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희망, 이보다 더 강력한 희망이 있을까?
한 겨울 죽어 있는 듯 보이는 창밖의 나무 껍질들 아래 수액이 흐르고 있듯, 죽은 것들을 뚫고 산 것들이 올라온다. 그러므로 서인주의 죽음은 살고 싶다는 의지가 맞다.
고등학교 시절 장대 높이뛰기 선수였던 인주에게 바람은 중요한 영향이다.
인주가 말한 '꼭 이만큼의 바람'
그 바람은 선수를 뒤로 넘어가지 않고 앞으로 기울여 바를 넘게 한다.
《바람이 분다, 가라》는 고통 속에서 이만큼의 바람을 찾아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짙은 어둠 속에서 삼촌이 푸른 돌을 잡으려고 용기를 내듯,
벼랑 끝에 내몰린 버스 안에서 비친 한 줄기 빛이듯,
인주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 바람을 찾아 버티어 가는 이야기.
그래서 기어이 부풀어 오른 팔로 기어이 파란 돌을 건져 올리게 하고 무릎이 짓이겨진 채 뜨거운 배바로 바닥을 밀고 가며 살도록 하는 지독한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군가가 부풀어 오른 팔로 물속에서
파란 돌을 건져 올린다.
누군가가 무릎이 짓이겨진 채
뜨거운 배로 바닥을 밀고 간다.
<바람이 분다, 가라> 386,387P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