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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1. 문학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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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구운몽
글쓴이
최인훈 저
문학과지성사
평균
별점8.8 (92)
나날이

저자의 타계로 이 작품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오랜 시간 이 작품을 마음에 담고 살아왔는데, 요즘은 잊고 있었던 작품이다. 아니 내 내면에 피가 되고 살이 되어 흐르고 있는 한 작품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남북의 관계가 얘기될 때마다 이 작품이 마음 저변에서 그림자처럼 비쳐 나왔으니까?

 

남북정상이 만나는 시간들이 요즘 더러 일어나고 있다. 반공을 국시로 하고 있던 시간들 속에서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그 만남으로 많은 부분 변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그 만남의 현장이 날카로운 적대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웃음으로, 기대감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목도하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 얘기하고 마음을 나누면 대화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물론 모든 것을 내어놓고, 국가의 이익까지 팽개치고 관계만 이루어나가는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의 이익을 나누고, 민족의 동질감을 회복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그 출발점으로 그렇게 만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 책의 생각들은 당시의 상황에서는 특별하다. 남북이 경직되어 있던 마당에 남북 어느 쪽도 손을 들어주지 않는 이 작품은 남북의 위정자들에게는 황당한 생각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남쪽을 방종의 자유가 흐르는 곳이라 지칭하고 북쪽을 선택하여 넘어가게 만든 생각과 북쪽을 허울 좋은 이름만 있고 구속과 억압만이 가득한 공간으로 제시하면서 결국은 벗어나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그려나간다. 남쪽을 부패한 밀실만 가득한 공간으로 북쪽을 이름뿐인 광장만 존재하는 공간으로 저자는 표현한다. 그러기에 반공포로석방 시 주인공 명준이 남북 어느 쪽도 택하지 않게 하고 중립국을 선택하게 한다.

 

이 글은 명준이 중립국으로 가는 선상에서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지나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그의 뇌리에 흘러간다. 그리고 낱낱이 그 장면들이 재생되어 자신에게 다가온다. 남쪽에서 철학도로 열심히 살고자 했으나 부모의 이력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고통을 당한 일, 남쪽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북쪽으로 올라가야 했던 일, 북쪽에서 혜택을 누리는 생활을 했지만 자유를 잃은 속에 하는 일들이 모두 가식으로 느껴져 흡수되지 못하고 빙빙 돌던 일 등이 떠오른다. 그리고 전투에 참가해 낙동강 전선에서 사랑하던 여인을 만났던 일, 사로잡혀 포로가 된 일, 그리고 포로수용소에서 선택을 강요받던 일 등을 떠오른다. 그리고 결국 선상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명준은 민족을 사랑했지만 민족의 나라 어느 곳도 선택할 수 없었다. 그가 꿈꾸는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도피의 장소로 중립국을 선택한다. 그것은 명준의 생각 속에서 많은 자괴감으로 자란다. 그것이 사랑하는 여인과 그 뱃속에서 죽어간 자신의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연결되고, 뱃머리에서 갈매기와 물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그를 몰아간다. 하지만 작가는 그 명준의 마음을 자신의 생각을 다듬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명준은 자살을 선택한다. 아니 저자는 명준을 죽인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해나간다. 도피적인 삶이 얼마나 자신의 삶이 되랴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그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한다. 아마 저자는 명준에게 이런 말이 하고 싶지 않았으랴 생각해 본다. 타국에서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는 일이 무엇이 기쁨이 되고 마음에 충족감을 주랴? 그래도 자신의 민족과 함께하는 삶이 되어야 하지 않으랴? 어느 쪽이든 선택해서 오늘 우리가 이룩한 촛불의 참여 마음으로 주체가 되어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으랴? 비록 부서지고 고통을 당하는 그런 입장이 될지언정 도피보다는 낫지 않으랴? 그런 생활이 축적되고, 그런 삶이 가치가 될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 있지 않을 것인가? 무엇이든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느냐? 그냥 두면 정체되어 있는 것이 씨를 뿌림으로 싹이 트고 나무가 되어 자라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들이 자라 오늘의 남쪽이 되고 있다. 많은 생각을 바꾼 명준들이 이 땅 위에서 투쟁을 하고 피를 뿌림으로 촛불을 이끌어 내었고, 오늘의 우리들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념은 변하는 것이다. 삶은 바꾸어지는 것이다. 가치 있는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우리의 세계는 변화할 수가 있다. 소설가의 의무가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 선구자의 역할이라면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충분히 가치 있는 생각들을 이 책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의 안전에 저자의 그림이 그려진다. 이제 모든 생각을 접고 쉬고 계신 분의 무덤 앞에 우리가 만든 촛불을 선물로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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