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선조 임금의 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국문(鞠問)을 당하고 있는 이순신의 처참한 모습으로부터 시작 되지만 선조나 그 당시 신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무능했던 왕이나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의 위기 앞에서 자신의 이익만을 찾았던 신하들이 한 일이라고는 이순신과 같은 충신을 고문한 것뿐이라는 냉소를 첫 장면에서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영화 ‘명량’속에는 익히 알려진 유성룡이나 이항복과 같은 충성스러운 신하들의 이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가난과 고통, 죽음 이라는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 이순신과 함께 나라를 지켰던 군인과 백성들의 모습으로 장면을 가득 채운다. 거기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순신의 모습이 부각됨으로 관객들은 전쟁이라는 극한상황 속에서 두려움과 고뇌를 극복하고 승리하는 인간 이순신을 통해 감동을 얻는다.

 

 

명량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KBS에서 2008년 5월에 방영한 3부작 ‘ 난중일기 인간 이순신의 기록’을 다시 봤다. 난중일기를 중심으로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그렸는데 하나의 키워드로 정의한다면 ‘줄일 축(縮)’이다. ‘오그라들다, 웅크리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단어는 난중일기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 중 하나라고 한다. 명량해전 13일전에 쓰인 일기를 보면 ‘정유년 9월 3일 - 비가 뿌렸다. 배의 뜸(거적지붕) 아래에서 머리를 웅크리고 앉아있으니 그 심사가 어떠하겠는가?’ 또한 명량 해전을 불과 4일 앞두고도 이순신은 그의 일기에 ‘배의 뜸 아래에서 심회를 걷잡을 수가 없었다‘고 기록해 놓았다. 그도 두려웠다. 그는 장수로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백의종군하며 남쪽으로 내려올 때 어머님의 죽음을 들은 순신은 ‘차라리 일찍 죽어 버리는 것만 못하리라’고 절규했다. 자신이 4년에 걸쳐 만들었던 조선 수군은 칠천량 해전에서 괴멸을 당했고 순간순간 찾아드는 고질병(곽란)으로 인해 이순신은 좌절하고 고뇌한다. 어리석은 왕 선조는 이런 위기상황 속에서 이순신을 다시 3군수군통제사로 임명하지만 그의 앞에는 배 한척 없고 군사들은 이미 패배 의식에 젖어있었다. 더군다나 활과 화살도 없었기에 이순신도 웅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자신을 보고 울부짖는 군사와 백성들을 보며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나라를 위해 싸운다는 것은 거창한 명분일 수 있다. 그러나 이순신은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기에 전투에 나가기에 앞서 결연한 마음을 군사들에게 보여준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이 영화를 관람한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영화 속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궁금하다.

 

 

순박하고 착한 백성들을 왜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순신과 그의 수군들은 명량으로 향한다.  순신의 배는 12척, 왜적의 배는 300척이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이순신의 지휘아래 11척의 배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이 해전에 임한 줄 알았다. 그런데 이순신 혼자 적진으로 향하고 나머지 11척의 배들은 눈치만 보고 있다. 영화를 보며 분노하지만 막상 현실이라면 자신도 도망치기에 바쁜 군사 중 하나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마음먹는다고 당장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 평상시에 반복된 훈련이다. 이 영화의 절반에 해당되는 해상 전투신을 통해 관객들은 이순신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어렸을 때부터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읽고 자랐기에 우리는 그를 가리켜 ‘성웅, 영웅’이란 이름으로 불렀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영웅이 되기까지의 고뇌와 고통을 간과하기 쉽고 잘 알지 못한다. 자신도 현충사는 몇 번 탐방하며 이순신 장군에 대한 흠모는 있었지만 난중일기를 읽지 않았기에 그의 내면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김한빈 감독은 ‘명량’을 연출한 이유에 대해 “이순신의 고뇌, 그리고 60분이 넘는 전투신을 통해 그 전쟁이 얼마나 불리한 전쟁이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 어디에 있었는지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화석화된 영웅으로서의 이순신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이순신을 보여주고자 했기에 60분 이상의 해상 전투신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 영화가 감동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이순신을 중심으로 전투가 이루어지기에 그가 중심에 있지만 더 큰 감동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감당하는 백성들의 모습이다. 살생을 금지하는 승려들은 칼로 왜적을 살상하고 농민들은 농기구를 가지고 적들과 싸운다. 군사들은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왜적과 백병전을 벌리고 격군들은 생명을 걸고 노를 저었기에 양손은 피범벅이 되었다. 섬에서 왜적과의 전투 장면을 보고 있는 백성들은 옷을 벗어 위험성을 군사들에게 알려준다. 이 영화의 감동은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름 없는 군사와 백성들의 모습이다. 그 백성 중에 자신도 한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눈물이 양볼을 타고 흐른다. 특히 실존 인물로 알려진 임준영(진구)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치마를 펄럭이며 오열하는 정씨여인(이정현)의 애틋한 모습을 보며 주책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더군다나 그녀는 왜군들에 의해 가족을 잃고 혀까지 잃었다는 것을 기사를 통해 후에 알았기에 더욱 여운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이순신은 아들 이회에게 “백성이 나를 끌어준 것이 천행인지, 회오리가 몰아친 것이 천행인지 생각해 보거라" 라는 말을 던지며 백성들이 자신에게 천행이었음을 말한다. 전투의 공도 백성들에게 돌릴 만큼 이순신은 그들을 사랑했고 자신의 목숨을 줄 수 있었다. 웅크리고 앉아 있었던 이순신을 일으켜 세운 힘 그것이 백성인데 이유는 지도자의 모습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중학교  때 학교에서 영화를 단체 관람했던 때를 기억했다. 그때 ‘명량’이 상영되었다면 학교는 무조건 단체관람을 했을 것이다. 이런 시도가 없어졌기에 아쉬움이 있지만 이 영화를 가장 많이 보러 오는 관객이 40대라고 한다. 이유는 민족의 영웅인 이순신 이야기고 아이들 교육에 좋을 것 같아 함께 영화를 보러 온다고 한다. 영화 속에는 아이들이 알아야 할 역사적인 교훈이 있다. 그 교훈을 기억하며 자라는 것이 이 영화가 주는 강한 메시지란 생각을 한다. 이참에 영화 시작하기전 기립해 애국가를 함께 부르는 것은 어떨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