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과학

初步
- 작성일
- 2018.6.17
우리 몸 연대기
- 글쓴이
- 대니얼 리버먼 저
웅진지식하우스
일반적으로 인류의 역사는 야만에서 문명으로
나아가는 진보의 역사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가 반드시 옳지 만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진보라 불리는 인류의 진화가 같은 행성에 사는 여러 종들에게 우호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류의 탄생과 진화를 다룬 많은 저작들이 이러한 우리의 생각에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대표적인 저작이 아닐까 싶다. 하버드대 인간진화 생물학과 교수인
대니얼 리버먼이 쓴 이 책 [우리 몸 연대기]도 처음에는
그러한 책으로 이해하고서 읽기 시작했다. 인류의 진화를 진화생물학자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하는
호기심이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머리말을 읽으면서 이 책이 단순히
내가 생각하는 인류 문명의 진화과정에 대해 쓴 것만은 아니란 걸 알았다. ‘유인원에서 도시인까지, 몸과 문명의 진화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저자는 진화의학이라는
렌즈로 우리 몸과 질병을 바라보고 있다. 현대 들어 새로운 질병들이 새로 생겨나거나, 전부터 있었지만 최근에 더욱 흔해진 질병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이러한 질병들을 예방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그 원인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가장 큰 이유를 우리가 인간의 진화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왜 우리 몸이 지금처럼 되어 있는지, 다시 말해 우리 몸이 무엇에
적응되어 있고, 무엇에 적응되어 있지 않은지를 이해하여야 비로소 그러한 질병들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우리 몸 연대기인 셈이다.
저자는 우리가 질병에 걸리는 이유를 한마디로
인간의 몸이 지금과 매우 다른 조건에 적응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 몸의 많은 특징들이 우리가
진화한 환경에는 적응이었지만, 우리가 만든 현대의 환경에서는 부적응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진화적 불일치가설’이다. 이처럼 저자는 진화생물학을 건강과 질병에 적용하는 진화의학의 핵심인 ‘진화적
불일치가설’을 가지고 우리 몸과 질병의 관계를 알려 주고 있다.
우리 몸은 진화하면서 여러 단계의 큰
변화를 겪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기후변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600만년전 최초의 호미닌이 나무에서 내려와 두발로 보행하는 직립이 이루어진 것도, 400만년전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류가 과일 이외의 다양한 음식을 주식으로 삼은 것도, 그리고 200만년전 수렵과 채집이 시작되고 호모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구세계로 퍼져 나간 것도 모두 기후변화가 원인이었다. 그럴 때마다 인류의 몸은 새로운 변화에 적응되어
갔다. 그 변화들 중 ‘어떤 변화도 필연적이지는 않았지만, 각각의
변화는 새로운 변화를 추가하고 기존의 적응들을 제거함으로써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우리 조상들의 몸을 바꾸었다’고
한다. 두 다리로 직립보행을 하기 위해서는 엉덩이의 모양이나 척추, 발바닥
등이 그에 맞게 변화되어야 했고, 과일 이외의 질기고 단단한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치아와 얼굴의 형태가, 그리고 수렵, 채집을 하기 위해서는 장거리 이동에 필요한 긴 다리,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큰 키와 튀어나온 코 등이 바로 그러한 적응이었다. 이러한
변화들은 때로는 많은 단점들을 노출시키기도 했지만 변화에 따른 이점이 손해를 능가했기에 자연선택 되었다고 한다.
현생인류는 20만년전 아프리카 고인류에서 진화하여, 10만년전
아프리카를 벗어나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그곳에 있던 고인류들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만2000년전 몇몇집단이 영구거주지에 정착해 식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농업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현생인류와 고인류의 가장 큰 차이는 문화적
변혁을 일으키는 능력이라고 한다. 문화가 현생인류와 고인류의 운명을 결정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 역시 유전자처럼 진화한다. 유전자와는 다른 과정을 통해
진화하지만, 문화적 진화는 자연선택보다 더 강력하고 빠르며 인간의 몸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자연선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유기체를 특정 환경조건에 적응시킨다. 그래서
극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수백세대가 걸리며, 또한 자연선택의 우선순위는 건강보다 번식이기 때문에
우리 몸은 건강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농업이 시작된 뒤로 혁신이 가속되면서 우리 몸과
충돌하는 새로운 문화적 관행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식량이 많아진 것은 좋았지만 질과 다양성이 사라짐에
따라 식단이 단조로워지면서 사람들은 덜 건강하고 더 위험해졌다. 결국 농업은 우리 종 전체에는 이익이
되었을 지 몰라도 우리 몸에는 축복인 동시에 저주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 가하면 수백 년 전에 일어난
산업혁명은 우리가 먹고, 일하고, 이동하는 방식, 질병과 싸우고 청결을 유지하는 방식, 심지어는 잠자는 방식까지 송두리째
바꾸었다.
진화적 불일치 가설은 적응이론을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에서 찾는 것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은 주어진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유전자들을 물려 받는다. 그리고 이들 유전자 대부분은 특정 환경조건에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에 몇 백 세대 또는 몇 천 세대에
걸쳐 선택되었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어 변화가 너무 빨랐다면 자연선택이 일어날 시간이 충분하지 않게
된다. 그 결과 몸과 문화가 서로 어긋나게 진화하는 진화적 불일치가 일어난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이 바로 불일치 질환이다. 우리
몸은 아직 구석기 시대의 몸으로 현대의 특정행동과 조건에 충분히 적응되어 있지 않으며, 때로는 부적절하게
대응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질환인 셈이다. 그리고 이런 불일치 질환은 환경이 우리 몸에 주는 자극이 너무
심하거나, 너무 약하거나, 너무 새로운 것일 때 발생한다.
현대의 질환 중에서 비만은 예전에는 드물던
자극이었지만 지금은 너무 많이 얻는 것에서 비롯된 대표적인 질환이라고 한다. 비만과 더불어 2형 당뇨병, 심장마비와 뇌졸증, 그리고
생식기 암이 바로 에너지 과잉에 따른 불일치 질환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반면에 우리 몸은 사용하지 않으면
잃도록 진화해 왔다. 다리 길이나 뇌 크기와 같은 대부분의 특징들은 생후 첫 몇 년간에 겪은 스트레스
단서를 이용하여 성인일 때 최적구조를 예측하여 성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성장과정에서 예측된 스트레스를
겪지 못할 경우 나중에 성인이 되면서 불일치 질환을 유발시키는데, 이러한 예로 저자는 골다공증, 함몰된 사랑니, 알레르기 반응 등을 들고 있다. 또 인간은 안락함이 좋은 것이라 착각하는데, ‘일상적으로 누리는 비정상적인 안락들 가운데 인류에게는 너무도 새로운 것이라서 건강에 나쁠 수 있는 것이 수없이 많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발을 신는 것, 책을 읽는 것,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유발시키는 비정상적인 발, 근시, 요통 등이 그런 것 들이다.
물론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라, 장시간 이루어진 결과로 나타나지만, 이것들은 ‘오늘날 우리가 몸을 사용하는 방식에 우리 몸이 적응되어 있지 않아서 일어나는 진화적 불일치’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한다. 이처럼 진화적 관점은 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풍요가 불일치 질환을 유발시키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창조한 새로운 환경과 우리가 물려받은 몸이 만난 불행한 결과가 바로 불일치 질환임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600만년에 이르는 인류의 역사를 우리 몸을 빌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종의 진화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문화가 아무리 뛰어나도 생물학적 현실을 넘을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몸의 진화이야기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몸의 진화는 끝나지 않았다. 자연선택은 농업이 시작될 때 끝난
것이 아니라, 바뀐 식생활, 세균, 환경에 인간을 적응시켜 왔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문화적 진화의
속도와 힘이 자연선택의 속도와 힘을 크게 능가했음에도 우리가 물려 받은 몸은 아직도 지난 수백 만년간 우리가 진화해온 다양한 환경조건에 적응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주요 불일치 질환들의 치료방법은
모르지만 그러한 병에 걸릴 가능성을 줄이거나 예방하는 방법은 알고 있다고 한다. 또한 문화적 혁신이
많은 불일치 질환을 유발했듯이 또 다른 문화적 혁신은 그것을 예방하는 것을 도울 수 있기에, 왜 우리
몸이 지금과 같은 방식이 되었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것은 우리 몸의 과거는
더 적합한 자의 생존이라는 과정이 만들었지만, 그 몸의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몸을 통한 문명의 진화이야기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모두들 건강하게 그리고 오래 살기를 희망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문명의 이기에 푹 빠져 헤어나지를 못한다. 혁신과
안락의 질환을 해결하는 방법은 현대의 이기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증상만
치료할 때 일어나는 역진화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한층 공감이 간다. 내 몸에 대해, 진화에 대해 다시 한번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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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