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동양고전

初步
- 작성일
- 2019.1.21
노자 도덕경
- 글쓴이
- 노자 저
휴머니스트
우리가 동양고전을 접하면서 흔히 범하는
오류가 있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체계를 묶어서 일반적으로 노장사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들 사상을 도교와 연결 지어 생각하면서 현실도피적이고 염세주의적인 사상으로 알고 있다. 아마 학교 다닐 때 제자백가에 대해 배우면서 책이나 선생님들이 간략하게 소개해준 것이 그런 생각을 굳히게 해
주었을 것이다. 하긴 사마천도 [사기]에서 노자와 장자를 하나로 묶어 통칭하고 후대의 사가들도 그것을 충실히 따랐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들의 사상을 새롭게 조명한 많은 책들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오해였음을 이해했다고 하지만, 사실 노자와 장자의 차이를 분명하게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쉽지가 않다. 또한 장자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자들이 서로 자신이 생각하는 장자의 사상에 대해 얘기하지만,
노자에 대해서는 그러한 서적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우리가 노자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싶다.
일전에 어느 책에선가 노자와 장자의 차이를
설명한 글을 본적이 있다. 노자가 무위(無爲)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려 한 것은 무위지치(無爲之治)이고, 장자는 무위를 언급하였지만 이는 무위지치가 아니라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것이다. 즉, 노자사상의 본령은 통치에 있는 입세간(入世間)의 입장이고, 장자사상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소요(逍遙) 할 것을 설파한 출세간(出世間)의 입장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노자와 장자를 명확하게 구별하라면
그리 쉽지만은 않다. 노자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노자의 저작으로 알려진 [도덕경]을 읽는 것이 우선이겠다 싶어 고민 끝에 이 책을 골랐다.
노자는 생몰년이 확인되지 않지만 춘추시대
말기 공자와 동시대의 사람으로 보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욕망 앞에서 광분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道)와 덕(德)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저작이 바로 [도덕경]이다. [도덕경]은 상편 37장, 하편
44장, 총 81장으로
이루어졌으며 기원전 2세기경 한경제때 경서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도덕경]이란 말은 후대에 상편 1장의 시작인 ‘道可道 非常道’의 道와, 하편
1장의 시작인 ‘上德不德’의
德을 합쳐 만든 명칭으로, 경이란 말이 붙은 것을 보아서는 경서로 분류된 한경제 이후의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이런 [도덕경]을 번역한 책이다. 저자는
[도덕경]이 5000자에
불과한 짧은 글이지만 여기에 담긴 사유는 심오하기 그지없다고 말한다. 그는 각 장 별로 번역문에 이어
원문을 싣고, 해설과 각주를 다는 형식으로 완역했으며, 해설에는
사상적이고 철학적인 해석보다는 원전이 말하는 바를 그대로 옮기고자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으면서
노자의 사상을 확실하게 알겠다는 꿈도 사실상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오로지 번역문을 참고삼아 자신이
찾아가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노자의 사상을 제대로 알아가기 위해 스스로 사유를
해야 하니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읽고 또
읽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노자는 어떤 특정한 가치와 방향을 유일하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가 중요함을 말한다. 따라서 자연과 사회의 상반되는 성질 중에 어느
하나만을 기준으로 삼아 다른 모든 것이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서로 상반되는 성질이
의존하고 맛 물려 있다고 본 것이다. 노자사상의 핵심 중 하나인 無를 놓고 볼 때, 노자가 말하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은
有와 無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의존한다는 것을 뜻한다. 세상의 만물은 모두 有에서 생기고 또
有는 無에서 생겨나듯 만물은 늘 서로 의존하며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道 역시 마찬가지이다. 노자는 道를 모든 존재가 따라야 하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덕(德)으로 나타나는 작용이며 그 기저에 자연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기에
그가 주장하는 무위(無爲)는 태고의 자연을 가리키며, 무욕(無欲)은 만족할
줄 모르며, 그칠 줄도 모르고 질주하는 욕망을 경계하는 말이지 싶다.
[도덕경] 44장에 나오는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지족불욕(知足不辱) 지지불태(知止不殆)는 내가 늘 생각하는 글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도덕경]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노자가
상대적인 차이를 갖는 어느 한가지에 갇히지 않고 전체를 보는 시선을 갖도록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경계에 갇히지 않고 기존의 시선에서 벗어난 사고, 즉 존재 자체인 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노자가 살았던 시기는 패권을 향해 질주하던 춘추시대였다. 그 시대는
특정한 가치만을 수용하고 다른 가치를 부정하는 극단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런 시대현상을 단지 상대적인
차이밖에 지니지 않는 有들의 경쟁과 대립이라는 병적인 현상으로 본 노자. 그래서 노자의 사상은 비주류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얽매임이라는 有의 세계를 넘어 無의 세계로 나아가는 자유의 사상가가 될 수 있었을
게다.
지금의 세상 역시 온갖 有들이 서로 맛
부딪치는 세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특정한 자신의 가치만을 수용하도록 요구하는 극단의 세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때, [도덕경]은
존재 자체인 나에 대해 생각하도록 화두를 던져주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내가 노자에 대해 좀 더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다시 [도덕경]을 읽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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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