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步
  1. 에세이/심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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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유럽 도시 기행 1
글쓴이
유시민 저
생각의길
평균
별점8.5 (256)
初步


유럽은 몇 번 가보았지만 차분하게 여행을 해 본적은 없다. 유럽에 갈 때마다 항상 일에 쫓겨 다닌지라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한다는 생각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일전에 작은 아이가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로마를 근 한 달에 걸쳐 돌아보며 자신이 가서 본 곳의 사진들을 보내왔을 땐 같이 가자고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물론 같이 가잔다고 아이가 선뜻 같이 갈리는 만무했겠지만 말이다. 낯선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 도시에 대해 알아가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고 느낀다는 것, 생각만으로도 가슴 설레게 만들기 충분하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이 출간되자 선뜻 구매한 것은 유시민의 책을 좋아한 이유도 있겠지만 유럽의 도시들에 대한 나의 기대감이 반영된 까닭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유럽의 수많은 도시들, 그 중에서도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는 모든 여행객이 선망하는 도시가 아닐까 싶다. 물론 선망하는 것과 꼭 가보고 싶다는 것의 괴리는 있겠지만 우리가 익숙해지도록 듣고 읽었던 도시라는 데는 모두가 공감하지 않을까. 그런 도시들을 둘러보면서 자신이 듣고, 읽었던 곳들을 찾아보고, 그곳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몸은 이미 그곳으로 가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이 책이 여행과 관련한 그 무엇도 아니면서 조금씩은 그 모두이기도 한, 도시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낯선 도시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좋아서 여행을 한다는 그는, 각기 다른 시대 유럽의 문화수도 역할을 했던 네 개의 도시 공간을 찾아, 그 도시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그가 전하는 네 개의 도시 중 아테네와 로마, 그리고 이스탄불은 하나의 역사 속에서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바로 고대 로마의 역사이다. 서구문명의 빅뱅이 일어난 현장인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와 그 자체로 제국을 상징했던 로마, 그리고 마지막까지 로마제국을 이어간 비잔틴 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은 도시 이름만으로도 우리를 서구문명의 시원으로 데려가 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저자가 그 도시들을 둘러보면서 보았던 것도 결국 그런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과, 흔적을 남긴 사람들의 발자취였다. 그러기에 저자가 전하는 세 개의 도시이야기는 우리가 많이 읽어온 역사이야기이기도 하다. 세 도시에 대한 저자의 평가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철학과 과학과 민주주의가 탄생한 고대도시, 1500년 망각의 세월을 건너 국민국가 그리스의 수도로 부활한 아테네는 비록 기운이 떨어지고 색은 바랬지만 내면의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 남부러울 것 없었던 어제의 미소년이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은 끝에 주름진 얼굴을 가진 철학자가 되었다고 할까.’ (87쪽)

 



‘서구의 문명은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빅뱅을 일으켰고 로마제국에서 가속팽창을 했다. 로마는 서구문명의 가속팽창 흔적을 지닌 도시답게, 고대부터 현대까지 문명의 발전양상을 압축해 보여준다.’ (93쪽)

 



‘역사가 무려 2700년이나 되는 이스탄불의 최초 이름은 비잔티움이었고, 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이 바뀐 4세기부터 15세기까지는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제국의 수도였으며, 그 다음 500년은 오스만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이었다. 오랜 세월 경제적 문화적 번영을 누렸던 이 도시는 20세기에 터키공화국의 영토가 된 후 국제도시의 면모를 거의 다 잃고 말았다. 고대 그리스, 로마제국, 비잔틴제국의 역사와 문화는 실종되었고, 그때 만든 몇몇 건축물만 박제당한 공룡처럼 덩그러니 남아 있다. (170쪽)

 



고대 로마제국이라는 역사의 축에 선후로 연결된 세 도시 중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는 이스탄불이다. 물론 역사의 유적이나 유물은 사라지고 그 문화마저도 실종되었다고 저자는 말하지만, 그동안 책에서 읽고 들은 이야기들이 어느 구석에서는 그 향기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더욱이 이스탄불에서 그리스 로마제국의 그것은 실종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런 문명을 자신들의 문명과 융합시킨 오스만제국의 그것은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왠지 모를 신비감을 주는 도시 이름과 함께 나에게 한번 와보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마지막으로 전하는 도시는 유럽의 정중앙에 위치한 파리이다. 파리는 14세기까지만 해도 보잘것없는 변방의 도시였지만 지금은 문명의 최전선이 되어 세계의 문화수도로까지 불리고 있다. 그런 파리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평가한다. ‘프랑스공화국의 수도인 파리는 앞에서 만났던 세 도시와 달리 역사의 공간과 시민의 생활공간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지 않으며, 오래된 건축물도 모두 살아 숨을 쉰다. 베르사유 궁전을 제외하면, 시민들의 일상과 떨어져 관광객의 볼거리로만 쓰이는 공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246쪽) 그만큼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향기를 맛볼 수 있다는 말 일게다.

 

파리는 이 책에서 소개되는 네 도시 중 유일하게 내가 가 본 도시이기도 하다. 아니 가보았다기 보다는 잠시 들렀다는 게 맞을 것이다. 20년도 더 훨씬 전의 일이지만 드골공항에서 환승을 하는데 무언가 잘못되어 15시간이 넘게 시간이 남았다. 그 시간을 이용하여 에펠탑과 개선문을 보고, 한 식당에서 밥을 먹은 것이 내가 본 파리의 전부였다.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던지라 그것만으로도 횡재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저자가 소개하는 네 개의 도시에 관한 글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의 평가처럼 역사공간과 시민의 생활공간이 나누어지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글을 따라 파리를 읽으면서 언젠가 내가 그곳을 여행하게 된다면 이십 몇 년 전 그 때의 기억도 더듬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행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여행을 하게 되면 그저 이름난 곳,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을 둘러보는 여행은 가능하면 사절한다. 비록 어느 한 곳 일망정 여행하는 시간 대부분을 머무르며 그곳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느끼는 것이 더 좋다. 그래서인지 요즘 많은 여행서적들이 범람하지만 대부분을 여행지에 대한 소개로 채우고 있는 책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저자 나름대로의 이야기가 있는 책이 마음에 든다. 그렇게 볼 때 이 책은 분명 전자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부가 다 후자인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저자는 유럽의 오래된 도시 네 곳을 여행하면서 그 도시들이 지닌 내밀한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그러나 그곳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도시가 지닌 역사이야기에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물론 이들 도시가 역사도시이기에 역사를 빼놓고서는 그 도시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우리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 대한 역사서, 혹은 그리스로마 신화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최소한으로 그치고, 차라리 파리처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저자의 유럽 도시 기행은 이제 시작이니 앞으로 더 많은 도시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줄 것이다. 그 도시들의 이야기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좀 더 많이 느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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