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심리/여행

初步
- 작성일
- 2020.7.10
코끼리를 쏘다
- 글쓴이
- 조지 오웰 저
반니
조지오웰은 우리에게 [동물농장]이나 [1984]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를 최고의 작가로 만든 이런 소설을 발표하기 전에도 오웰은 많은 글을 썼다. 한때는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던 오웰의 글은 소설보다 산문에서 더 재능을 발휘했다고도 한다. 그런 그의 글쓰기에 대해서는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으면서 실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막상 오웰의 삶과 사유를 담고 있는 산문은 읽어보지 못한지라, 기대를 안고 이 책을 읽었다.
이 책 [코끼리를 쏘다]에는 표제작을 포함하여 7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이르게는 1936년부터 늦게는 1952년에 발표된 글들이다. 오웰이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 1950년이니 1952년에 발표된 글은 그의 사후에 실린 글이 아닐까 싶다.
오웰이 살았던 시대는 전쟁으로 평화가 무너지는 시기였다. 그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을 보면서 제국주의나 전체주의에 대해 극도로 혐오감을 갖게 된다. 또한 어린 시절 상류층 아이들과 심한 차별을 맛보았고, 장학생으로 들어간 이튼스쿨에서도 계급 차이를 실감했다.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산문에서 ‘글의 주제는 작가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되기 마련이다. (……) 작가는 글쓰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특정한 정서적 태도를 갖게 되고, 거기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124쪽)고 말한다. 결국 오웰이 살았던 시대와 성장배경이 그로 하여금 계급의식 등 당시의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글을 쓰게 했지 싶다. 그는 산문을 쓰는 동기는 허영심과 같은 자기중심주의,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미학적 열정, 현재의 일을 기록한다는 역사적 충동, 그리고 정치적 목적이라는 네 가지가 있지만, 자신이 글을 쓰는 가장 강력한 동기는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사회적 민주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정치적 목적에 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는 ‘내가 무기력한 책을 쓰고, 미사여구와 의미 없는 문장과 장식적 형용사와 객소리에 빠졌을 때는 예외 없이 내게 정치적 목적이 결여됐던 때’(134쪽)였다며, ‘예술은 정치와 완전히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정치적인 태도’라고 단언한다. 그만큼 글쓰기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고,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고 오웰이 맹목적으로 사회주의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그는 <사회주의자는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글에서 ‘사회주의의 진정한 목표는 행복이 아니라, 인류애’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처절한 정치 투쟁에 삶을 바치고, 내전에서 죽임을 당하고, 게슈타포의 비밀감옥에서 고문당하는 것은, 중앙난방과 냉방장치와 형광등이 있는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류가 서로를 착취하고 죽이는 대신 서로를 사랑하는 세상을 원해서다’(168쪽)라는 그의 글은, 오늘날 좌나 우 어느 진영을 막론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더구나 요즘과 같이 코로나 팬데믹 쇼크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과연 인류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너무나 즐겁던 시절>은 장문의 산문으로, 오웰이 어렸을 때 다닌 예비학교 세인트 시프리언스 시절을 회고하는 글이다. 8살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예비학교를 다니면서 그는 상류층 아이들과 학교의 교장부부에게 심한 차별을 당한다. 명문학교에 장학생으로 선발될 가능성이 있어 학교의 이름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로 학비감면을 받았기에 입학이 가능했던 오웰이지만, 교장부부에게는 그저 자신들이 선심을 베푸는 하나의 증거일 뿐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쓸 때에는 늘 과장과 자기연민을 경계해야 한다’(47쪽)고 말하는 오웰은, 세인트 시프리언스 시절의 회고를 통해 신분 차이에 따른 차별, 입시에 필요한 것만을 외우고 머리에 집어넣도록 닦달하며 체벌도 서슴치 않는 교육환경 등 당시의 사회적 모순에 대해 쓰고 있다. 산문의 제목인 <너무나 즐겁던 시절>은 역설적 표현이다.
이밖에도 책에는 오웰이 제국주의 모순과 한계를 느낀 미얀마에서 영국의 경찰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인 <코끼리를 쏘다>, 헌책방에서 근무할 때 그곳에 드나들던 사람들에 대해 쓴 <책방의 추억>, 상업적 서평을 쓰는 서평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어느 서평가의 고백> 등이 실려있다.
오웰의 산문을 읽으면서 어쩌면 우리는 오웰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오웰을 작가로써, 저널리스트로써 단지 그가 발표한 글을 보고서 평가할 뿐이다. 그래서 작가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작가에 대한 이해가 먼저여야 한다고 했지 싶다. 작품에 쓰여 있는 글만을 읽은 것과 작가가 살아온 시대와 성장배경을 제대로 이해하고서 읽은 것은 작품의 이해에 커다란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오웰의 글들을 적지 않게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서 또 다른 그의 글들, 특히 그가 초기에 썼던 작품들을 더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래저래 내가 읽어야 할 작가가 또 한 명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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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