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정치

初步
- 작성일
- 2020.12.3
풍요중독사회
- 글쓴이
- 김태형 저
한겨레출판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정의나 불평등의 문제를 떠나 단순히 물질적인 면만 놓고 볼 때 지금껏 살아온 시대 중에서 가장 풍요로운 세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현대인의 심리상태는 불안하기만 하다. 왜 불안한지, 무엇이 불안한지는 사람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다. 물질이 넘쳐나는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우리는 왜, 그리고 무엇을 불안해하는 걸까?
사회심리학자 김태형이 쓴 이 책 [풍요중독사회]는 끝이 없는 위계 속에서 불안을 벗어나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풍요중독자가 되어버린 우리와 우리사회에 대해 쓴 사회비평서이다. 그는 지금 우리사회는 각종 불화와 혐오심리에 시달리는 풍요-불화사회라고 진단하며, 여기서 벗어나 물질과 정신건강이 보장된 풍요-화목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는 먼저 사회를 물질과 심리라는 측면에서 살펴본다. 물질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가난과 풍요를, 심리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불화와 화목을 선택하고 이들의 조합에 따라 사회를 네 가지로 분류한다. 인류가 살아오기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리는 물질의 풍요는 경제체제가 자본주의로 바뀌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는 분명 가난한 사회이다. 또한 계급이 존재하는 신분제 사회라면 계급 간 불화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자는 자본주의 이전의 계급사회를 가난-불화사회, 계급이 생겨나기 전인 원시공동체를 가난-화목사회라고 말한다. 이에 반해 풍요-화목사회와 풍요-불화사회는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도입으로 풍요해진 물질을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에 따라 구분한다. 풍요한 물질의 대부분을 극소수가 독차지하고 남은 것을 두고서 나머지 사람들이 싸우는 사회를 불화사회, 대부분의 사람이 고루 차지하는 사회를 화목사회라 보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선진국 대부분은 풍요-불화사회이고, 풍요-화목사회는 이상적인 사회일 뿐 등장한 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상대적인 기준으로 볼 때 북유럽국가들의 일부가 풍요-화목사회에 속하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1990년대 이전의 한국사회는 비록 물질적으로 가난했지만 국민 대부분이 동일계급이었고 그 계급 내에서는 화목한, 상대적으로 가난-화목사회였지만 지금은 대표적인 풍요-불화사회라고 주장한다. 가난-불화사회의 불화가 권력과 생산수단을 소유한 지배집단과 민중간의 계급적 불화였다면 지금의 불화는 계급간은 물론 계급내부 간 불화도 포함된다고 한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위계를 결정짓는 것은 돈이며, 경제적 불평등에 따라 다층적 위계가 만들어졌고, 동일한 위계 내에서도 학력, 출신 등 여러 이유로 다양한 위계가 생겨났다고 말한다. 거기에 더하여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인한 개인 경쟁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개인단위로 위계가 만들어졌다. 위계사이의 불화는 말할 것도 없지만 위계내의 불화는 위계상승욕구가 큰 영향을 끼친다. 자신의 위계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으며 따라서 자신의 위계를 부정하는 사람이 같은 위계 사람들과 불화하는 것은 필연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다층적 위계는 고소득자에게 우월주의, 차별주의, 편견을 저소득자에게는 자기혐오심리를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하며, 모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권위주의 성향을 띠게 만든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갑질문화는 바로 이 때문이며 그렇게 볼 때 다층적 위계사회에서 사람들 모두는 승자인 동시에 패자가 되는 셈이다.
이어서 저자는 풍요-불화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불안을 살펴본다. 가난한 사회에서 가장 큰 불안은 생존불안이고 이런 불안을 가감시키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고 한다. 풍요-불화사회 역시 생존불안이 전형적인 불안이다. 다만 가난한 사회가 육체적 생존에 대한 것이라면 풍요-불화사회의 그것은 사회적 생존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기본 인프라가 위협을 받을 때 발생하며, 일반적으로 풍요-불화사회에서는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정상적인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상호존중이다. 존중받지 못하거나 존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고 이것은 자존감을 상실하는 자기존중불안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상실된 자존감은 타인 혹은 사회로부터의 평가에 연연하게 되는 평가불안, 낮은 위계 혹은 위계추락에 공포를 갖는 위계불안, 대인관계나 공동체참여마저 기피하는 사회불안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이 절대적 빈곤보다 상대적 빈곤을 더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존중불안으로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풍요사회라 할 수 있는 한국사회가 자살률이 높고, 출산율이 최저이고, 행복수준이 떨어지며 정신건강이 나날이 악화되는 것은 바로 불화사회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사회는 위계간 불화와 위계내 불화로 거의 모든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정신건강 악화와 도덕적 타락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불안이 극심해지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불안을 방어하려는 욕구가 전면에 나서게 된다. 한국사회의 위계는 특히 경제적으로 결정되기에, 더 많은 돈은 더 많은 존중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람들의 돈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게 된다.
저자는 풍요-불화사회는 지속 불가능한 사회라고 단언한다. 풍요-불화사회에서는 개인의 생존을 개인이 책임진다는 철학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우리는 불안을 방어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돈을 욕망하며, 그 결과 초라한 개인주의 사회로 전락했다고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오로지 개인적인 이익과 이권만을 추구하게 하여 불신사회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분노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량과 활력을 상실했으며, 심지어 능력주의라는 부자들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불평등마저 용인하는 태도가 공존하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희망을 잃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도덕적 평가는 감정, 정서적 평가라고 한다. 도덕이란 사람들이 사회와 집단, 그리고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자각적으로 지켜야 할 행동규범을 말한다. 정의나 부정의에 대한 판단은 도덕적 평가에 기초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정의에 분노하게 된다. 집단주의 심리가 강한 사회일수록 불평등과 부정의로 인한 고통이 크고 심각하며, 평등과 정의에 대한 요구가 더 높다고 한다. 저자는 최근 들어 우리사회에 평등과 정의에 대한 열망이 커진 것은 우리들의 강한 집단주의 성격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는 집단전체에 가해지는 위험에 대해서는 집단주의적으로 대응해온 수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사회가 비로소 풍요보다는 화목, 즉 평등과 정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본 것이다.
풍요롭고 화목한 사회는 인류가 꿈꿔온 이상사회이다. 한국사회가 절대적인 기준으로는 불가능할지라도 상대적으로나마 풍요-화목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사회변혁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를 위해 우리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불안해소, 기본소득제, 조직민주주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네 가지를 들고 있다. 그는 세부적으로 무상의료나 저렴한 임대주택 확대, 노동의 의미에 대한 재정의, 노동자 경영참여, 색깔론이나 종북몰이 타파와 같은 방법들을 제시한다. 물론 이러한 방법들만으로 한국사회를 변혁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사회는 풍요-불화사회의 폐해가 그 어느 나라보다도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의 진단과 처방은 지금의 우리사회가 풍요-불화사회임을 인식하게 만들어주고 있으며, 이대로는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풍요중독자가 된 것은 불안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돈과 물질적 풍요에 의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화목은 그 사회의 평등수준이 높을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사회의 극단적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하고 근본적인 방법이 필요하고 이는 대단히 어렵고 힘들 수밖에 없다. 저자의 제안으로 다소나마 생존불안과 존중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큰 변혁을 위해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어떤 사회경제체제이어야 하는지를 떠나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느끼는 생존불안이 우리사회의 불평등으로부터 야기되었다고 믿는다면, 이 책은 그 원인과 대안에 대해 스스로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게 만들기 충분하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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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