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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을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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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저명한 세균학자 브렛 핀레이는 딸인 제시카 핀레이와 함께 쓴 마이크로바이옴에 관한 개괄서인 마이크로바이옴, 건강과 노화의 비밀에서 베리 마샬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의 발견을 전형적인 무명 선수의 성공담이라고 평하고 있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위가 pH2에 달하는 강한 산성 조건이기 때문에 어떤 생물도 살 수도 없다는 걸 굳게 믿었다. 물론 종종 위에서 세균 모양의 것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있어오긴 했다. 1875년 독일어로 쓰인 한 논문에서 위에 세균이 존재한다고 보고했지만, 배양에는 실패해서 곧 잊혔고, 1893년에는 이탈리아에서, 1895년에는 폴란드에서 비슷한 보고가 있었다. 물론 분명한 증거를 내놓지 못했고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50년대에 이르러 미국에서 광범위한 위조직 검사가 시행되었다. 하지만 19세기 말 관찰했다고 드문드문 보고되었던 세균의 존재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위에는 세균이 존재하지 않는, 무균(sterile) 상태라는 게 패러다임처럼 내려왔다. 그게 1980년대 목전까지의 상황이었다.



 



1979년에 이르러서야 과학의 변두리라고 할 수도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과학자들에 의해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었다. 왕립퍼스병원(Royal Perth Hospital)의 병리학자 로빈 워렌(Robin Warren)은 위장병 전문의였다. 그도 19세기 말의 독일이나 이탈리아, 폴란드의 과학자처럼 우연히 위에서 나선형의 생명체를 관찰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할 것을 다시 확인할 것을 자신이 운영하는 연구실의 내과 전공의였던 베리 마샬(Barry Marshall)에게 제안했고, 마샬은 흔쾌히 받아들여 공동 연구가 시작되었다(나중에 보겠지만, 이들의 연구가 성공을 거두자 이 연구를 누가 주도했는지에 대한, 과학사의 흔한 마찰이 생겼다).



 



마샬은 지도교수 워렌와 위에서 발견되는 나선형의 세균이 위궤양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배양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부활절 휴가를 다녀오고 나서 마치 플레밍이 겪은(혹은 겪었다고 알려진) 경험을 하게 된다. 그는 세균을 배양을 시도하던 배지를 부주의하게 실험실 벤치에 두고 휴가를 가버렸는데, 휴가에서 돌아와서 보니 오랫동안 배양이 잘 되지 않던 그 세균이 배지에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1982년 마샬은 워렌과 함께 이 발견을 발표했다. 그러나 다른 과학자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2005년 마샬이 워렌과 함께 노벨상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는데, 그 이듬해 마샬이 대구에서 열린 한국미생물학회 정기학술대회에 참석해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도 강연장을 빽빽이 채우는 데 일조했는데, 마샬이 위 속의 세균에 대해 발표하려고 어느 학술대회에 초록을 냈는데, 학술대회 조직위원회로부터 받은 거절의 편지를 보관하고 그것을 첫 부분 슬라이드에 보여주었던 게 지금도 기억난다.



 



위 속에 세균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경로로 증명이 되었지만, 가장 극적인 증명은 1984년 마샬이 스스로를 실험 대상로 삼으면서 이루어졌고, 이는 과학사의 또 하나의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일단 마샬은 위내시경을 통해 자신의 위에 헬리코박터균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그가 과학자로서 상당히 이성적으로 이 실험을 수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하지만 이런 실험을 한다는 걸 워렌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위궤양 환자로부터 분리해서 배양한 헬리코박터균을 모았다. 그러고 나서 또다시 중요한 단계를 거친다. 이 세균이 항생제로 죽일 수 있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역시 주도면밀한 계획하에 이뤄진 실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다음 헬리코박터균이 들어 있는 물을 들이마셨다. 마샬은 증세가 나타나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단 5일 만에 현기증과 구토 등이 나며 전형적인 위궤양 증세가 나타났다. 그는 위내시경을 다시 자신의 위에 넣었고, 자신이 위염에 걸린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헬리코박터가 원래 깨끗했던 자신의 위에서 득실거리고 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항생제 치료를 받았고, 마샬은 회복되었다. 그러고 마샬은 헬리코박터균이 위궤양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끗이 증명해냈다고 선언하게 된다.



 





 



 



물론 이 자기희생 실험으로 비판가들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퍼스라고 하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변두리에 위치한 지역의 무명의 젊은 과학자가 한 발견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마샬은 나중에 회상하기를, “다행히도 저는 피부가 두꺼워요. 퍼스에 고립되었던 것도 이점이었지요. 발견을 얼마나 심하게 반대하는지 잘 알지 못했거든요.”



 



마샬을 기니피그 의사(guinea pig doctor)’로 불리게 한 이 실험은 오래되지도 않았지만 과학사의 신화처럼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마샬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환자 관찰을 통해서는 헬리코박터균이 위궤양의 원인이라는 것을 거의 확신할 수 있었지만, 직접적인 증거는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숱한 동물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래서 논문도 계속 출판이 거절당했고, 심사를 통해 수락된 논문마저도 인쇄가 지연되고 있었다. 좌절 끝에 자신이 실험 대상이 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실험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은 연구 윤리 측면에서 보면,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엄격한 기준에서 허락된다. 특히 자신이나 실험에 직접적 관련이 있는 사람은 실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는 병원의 윤리위원회에 허락은커녕 알리지도 않았으며, 부인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헬리코박터균에 의한 급성 위염으로 고생할 때 부인은 매우 놀랐다고 회상했으며, 이에 대해 허락보다 용서를 구하는 것이 더 쉽다고 했다. 많은 어린이요 과학 만화나 교양 서적에 이 일화를 대단한 결단으로 소개하곤 하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뿐만 아니라 당시의 기준으로도 절대 권하거나 추앙할 만한 연구는 아닌 것이다.



 



또 한 가지 미스터리한 면도 있다. 이에 관해서는 헬리코박터균에 관한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마틴 블레이저(Martin Blaser)인간은 왜 세균과 공존해야 하는가에서 밝히고 있다. 블레이저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위염이나 위궤양의 원인은 맞지만 마샬의 실험이 실제로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위염이나 위궤양 등의 원인이라는 것을 밝힌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단 마샬의 위염은 단지 며칠 동안 지속되었는데, 이런 급성 위염은 헬리코박터균 보균자들이 주로 겪는 만성 위염과는 달랐다. 그리고 마샬이 복용한 항생제는 현재 단독으로 복용했을 때 헬리코박터균 제거에 효과가 없다고 알려진 항생제라고 지적한다. 블레이저는 마샬의 감염과 염증이 자발적으로 사라졌고, 위궤양에 걸렸던 것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이런 면을 봤을 때 마샬의 실험은 매우 극적이고, 또 이를 통해 헬리코박터균에 대해 받아들이게 된 계기가 되었지만, 그 의미와 관련해서는 진실이 아닐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신화는 신화로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신화는 세부적인 진실을 요구하지 않는다. 효과적인 선전 효과를 가지면 그만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효과적으로 알리는 데 신화는 필요한데, 과학에서도 이게 필요할 때가 있다.



 



 












마이크로바이옴, 건강과 노화의 비밀



브렛 핀레이,제시카 핀레이 저/김규원 역

파라북스 | 2022년 10월





 












인간은 왜 세균과 공존해야 하는가



마틴 블레이저 저/서자영 역

처음북스(CheomBooks)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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