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은 뒤 끼적거리다

파란흙
- 작성일
- 2016.9.20
네 멋대로 읽어라
- 글쓴이
- 김지안 저
리더스가이드
제목을 보면서 멋대로 읽는 대신 멋대로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면 너무 멀리 간 건가. 사실 읽기와 쓰기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장단을 맞추는 소리꾼과 고수의 관계처럼 가까운 게 아니겠는가. 이 책 역시 읽기가 자연스러운 쓰기로 이어진 사례다. 독서와 책 주변의 관찰 그리고 그것들과 '나'를 연결하는 생각이 씌어 있다.
일종의 책세이, 즉. 책을 매개로 한 에세이다. 저자의 생각이 자유롭게 여기저기를 넘나드는 건 에세이 특유의 성격이 버무려져서가 아닐까 싶다.
'네 멋대로'라는 말로 표현된 '솔직하고 자유롭다'는 느낌은 평소 저자의 블로그에 올려진 글에서도 늘 느꼈던 것이다. 궁리하고, 써도 되나 마나를 고민하고, 책잡힐 만한 대목이 있나 노심초사하는 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라 부럽기도 했던 글들이 결국 책으로 엮여 나왔다. 저자의 집필 기간 동안 나 역시 가장 힘든 번역을 하는 와중이었기 때문에 두어 차례 전화로 고민을 나누기도 했었는데, 책이 예쁘게 나와서 더 반갑다. 잘 읽히고, 재미있다. 독서를 필생의 일로 삼거나 쓰는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 모두가 할 법한 생각들이 공감을 형성한다.
첫 꼭지는 '독자가 먼저인가? 작가가 먼저인가?'라는 제목이다. 그야말로 '닭과 달걀'의 혈투에 버금가는 녹록치 않은 질문이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김경욱의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된 건 문학 잡지 <악스트> 창간호에서였다. 단편이 실렸기에 별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고기의 오도독뼈를 씹는 맛이라고나 할까?
고기의 오도독뼈라는 표현에 눈길이 머물렀다. 맛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고, 다음으로는 이따금 씹히는 오도독뼈를 내가 맛있어했던가 하는 생각이 뒤따랐다. 딱히 애호하는 먹을거리가 아니었는데, 오랫동안 오도독뼈를 즐겨온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순간 김경욱의 단편을 읽고 싶어지는 느낌이었다.
새삼 나의 독서 취향에 생각이 미쳤다. 초등학교 2학년 때로 뚜렷이 기억나는 독서삼매경의 경험, 그 시작점부터 나는 세계명작에 몰입했고, 지금까지도 고전문학(만)을 지극히 사랑해왔다. 이따금 읽는 현대소설에서는 안타깝게도, 묵직하고 곱씹게 되고, 삶의 어느 지점에서 뒤통수를 때리는 깨달음을 잘 맛보지 못했다. 물론 애호해마지 않는 현대 소설가들이 줄줄이 있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현대소설을 음미할 때는 주로 표현에 경도된다. 문장에서 감칠맛, 톡쏘는 맛이 나면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이다. 오도독뼈도 마찬가지다. 사실 평소 이 저자의 글은 재기발랄한 쪽은 아니었기 때문에 첫 페이지에 등장한 오도독뼈는 일종의 발견이었다. 잘 쓴 단편(꼭 김경욱이 아니어도)과 오도독뼈가 이토록 어울리다니.
저자는 '독서에 있어서 작가가 먼저냐 독자가 먼저냐 하는 하등 필요도 없는 질문에 시간을 빼앗기지 말라. 독서에서 중요한 건 책 자체의 의미인 것이다.'라는 말로 첫 꼭지를 마무리한다. 그저 읽고, 작가와 이어진 느낌에 전율하고, 참을 수 없는 마음으로 뭔가를 끼적거리기만 했지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한 번쯤 해봄직하다는 생각은 든다.
독자, 글쓰기, 만남, 생각의 네 단원으로 나뉘어 있는데, 순서 없이 읽어도 될 듯 싶다. 지인이라는 덕을 본 것인지, 내 이름이 한 줄 나왔다.오래간만에 활자로 표현된 내 이름 나쁘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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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